'쾌활하고 통통 튀는 e스포츠인'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던 그녀.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는지 알게 됐습니다. 진심을 보기 보다는 그저 보여지는 이미지만 봐왔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의 진심을 아는 시점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게 자신의 꿈과 게임, e스포츠를 향한 진심을 털어놓은 '허스토리' 주인공은 바로 캐스터 레나입니다. 자신을 '변두리 방송인'이라고 소개했지만 게임과 e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떤 방송인보다 크고 넓은 레나. 큰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도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진심을 가리는 아킬레스 건...목소리
레나의 목소리는 한 번 들은 사람은 잊기 힘듭니다. 통통 튀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이죠. 물론 캐주얼 게임 행사장 등 야외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주목을 끌 수 있는 매력을 지녔지만 진지한 진행이 필요한 리그 중계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정말 많이 받았죠. e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겠어요(웃음). '너한테는 가벼운 방송밖에 못 맡기겠어', '목소리가 그러니 캐주얼 게임 리그 외에는 욕심내지 마', '그냥 옆에서 잘 웃어주기만 하면 돼' 등 방송인이라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많은 평가들을 지금까지도 듣고 있어요."
그녀는 목소리를 바꿔보기 위해 성우 학원을 다니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목소리를 굵게 내기 위해 성대를 긁다가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기도 했죠.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메인 리그 중계를 할 수 있을 만큼 굵어지지 않았죠.
"심지어는 해설을 해보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웃음). 이제는 제 목소리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들어오는 일도 매번 같았고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가 끝이구나' 생각했죠."
◆그녀의 눈물...진심과 꿈
우리에게 항상 즐거움을 주던 레나. 하지만 자신의 꿈과 진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녀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느껴지더군요. 그녀의 목소리를 폄하하고 '넌 안 된다'고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레나가 흘린 눈물은 이루다 말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사람인걸요. 많이 울었어요. 상처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뒤에서는 피눈물을 흘렸어요. 그런데 또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서 있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남들은 자존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심장이 요동치고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거든요."
레나는 캐스터를 꿈 꿨습니다. 그녀의 꿈은 정소림 캐스터처럼 멋진 여성 캐스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캐스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누구도 그녀를 메인 게임 캐스터로 쓰지 않았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벽에 부딪힌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겠죠. 왜 계속 될 것 같지 않은 꿈에 도전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큰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제 꿈과 제 열정과 제 진심을 모두 게임과 e스포츠에 묻었어요. 진심으로 저는 이곳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이 이곳인걸요. 모두가 안된다고 해도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 제 모든 것을 게임과 e스포츠에 줬기 때문인지 이제는 다른 곳에 마음을 줄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요."
여자로서 듣기 힘든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그녀. 예쁘지 않다고,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인신공격성 말을 들으면서도 그녀가 이 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어가는 것은 게임과 e스포츠를 아끼고 사랑하는 '진심' 때문입니다. 그냥 그렇게 내뱉는 단어가 아닌 '진짜' 마음 말입니다.
항상 웃기만 하던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게임과 e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 그들을 대하는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했고 너무나 꿈 꿨기에 힘들어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던 그녀는 그렇게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노력과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feat VSL)
진심은 통한다고 했습니다. 레나의 꿈과 진심을 알아봐준 VSL 스튜디오와 트위치 관계자들 덕분에 그녀는 최근 트위치 VSL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중계하는 캐스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녀는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캐스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레나는 현재 VSL 스튜디오 소속 캐스터입니다. 변두리 방송인인 그녀에게도 드디어 소속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중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VSL 스튜디오는 은퇴를 생각했던 그녀가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은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감히, 정말 감히 작년에 은퇴를 결심했어요. 사실 은퇴라는 거창한 단어조차도 어울리지 않았죠. 제 한계가 느껴지고 나를 찾는 곳이 줄어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을 밟고 팬들에게서 잊혀지게 되는 거죠. 시기를 정해놓고 은퇴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왠지 내년부터는 자연스럽게 은퇴의 길로 접어들 것 같다는 불안감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녀에게는 전부였던 게임과 e스포츠 일을 놓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그녀가 흘렸던 눈물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죠. 모든 것을 걸었던 그녀였기에 스스로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흘렸던 땀방울이 어떤 결실조차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겠죠.
한없이 무너져 내리던 그녀에게 VSL 스튜디오는 기회를 줬습니다. 그것도 스타크래프트2 리그 메인 캐스터를 맡아달라는 어려운 미션과 함께 말입니다. 그녀는 다시 가슴이 뛰었고 피가 끓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고 결국 여성 캐스터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습니다.
"댓글을 꼼꼼하게 보는 편인데 팬들이 '레나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할 때 정말 힘이 나요. 그래도 알아주는 분들이 있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보려고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헤어질 때는 아닌가봐요(웃음)."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던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혹자는 그녀에게 '너의 이미지를 다 소모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그녀에게 '너는 이게 한계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꿈이 서려있는 게임과 e스포츠에 모든 것을 마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캐스터 레나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그녀가 꾸는 아름다운 꿈을 응원합니다.
글=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