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는 생전 처음 방문한 로펌이라 공기가 다소 무겁고 낯설게 느껴졌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 시선에서는 이내 친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4명의 변호사가 국민 맵 '헌터'에서 2대2 스타크래프트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법무법인 비트 소속의 변호사 4인방(최성호, 백승철, 안일운, 안형서)으로 최근 키앤파트너스라는 e스포츠 전문 에이전시를 설립한 주인공들이다.
대중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최근 프로게이머들의 해외 진출이 잦아지면서 e스포츠 전문 에이전시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키앤파트너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탄생한 회사다.
단순히 사업성만 바라보고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4인의 변호사 모두 게임과 e스포츠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키앤파트너스의 최성호 CEO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지내던 시절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 사법고시를 떨어질 뻔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게임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최 대표는 키앤파트너스를 '덕업일치'를 이룬 회사라고 설명했다.
최성호 대표를 비롯한 키앤파트너스 직원들은 국제e스포츠연맹(IeSF)과 콩두 컴퍼니의 법률 자문을 맡으면서 e스포츠와 연을 쌓았다. 최성호 대표는 현재 게임문화재단 감사도 겸하고 있다. 게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최성호 대표는 "우리가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게임은 사회악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번듯하게 잘 큰 변호사들이 게임에 대해 어필하면 인식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어릴 때 게임한다고 구박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게임과 공부 실력이 동등하게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이전시는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 변호사는 신뢰가 담보된 사람들이다. 어린 프로게이머들에게 안정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부분 게임밖에 모르는 어린 선수들이다. 로펌을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들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고 키앤파트너스를 설립한 이유를 밝혔다.
안일운 변호사는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트들 중에는 변호사들이 많다. 미국이 최대 시장이다 보니 게임도 자연스럽게 미국 스포츠 업계를 따라가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여기까지 결론이 도달했다"고 부연했다.
키앤파트너스의 첫 목표는 '시장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국내 프로게이머들의 해외 진출이 잦아지면서 계약과 관련한 잡음들이 종종 들려오는데,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계약을 가볍게 여겼다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심각한 경우엔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사례도 있다. 키앤파트너스는 자사가 가진 능력을 무기삼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급하게 가지는 않을 계획이다. 올해는 고객 확보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변호사가 주는 무거운 이미지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최성호 대표는 "그래서 로펌이 아닌 에이전시로 접근하게 됐다. 그래야 게이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변호사들이다보니 어린 게이머들에게 신뢰를 주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백승철 변호사도 웃으면서 "복장은 딱딱하지만 우리와 만나서 게임 얘기를 하다보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키앤파트너스는 e스포츠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 중심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국내 프로게이머들과 선수 발굴 시스템이 있었다. 안일운 변호사는 "최근 오버워치도 그렇고 배틀그라운드도 그렇고, 한국 선수들은 어떤 종목이든 잘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든 잘하는 선수를 발굴하는 인프라가 있고, 이러한 시스템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게임 업계에 부침이 있더라도 프로게이머 수요는 꾸준할 것이라 본다. 시장은 확장될 거라 확신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형서 변호사 역시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됐고 올림픽에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임은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라는 한계가 있지만 e스포츠를 통해 커가는 과정에 있다.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키앤파트너스는 자신들로 인해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변화하길 희망했다. 기성세대 사이에는 '변호사가 한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정서가 깔려있으니 말이다. 이 같은 시각은 변호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고. 안일운 변호사는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게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게임 전문 법조인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의 최정점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키앤파트너스는 이제 막 닻을 올린 회사다. 키앤파트너스는 앞으로 어떤 모습의 회사가 될까 궁금했다. 백승철 변호사는 "여러 분야에서 영역을 넓혀왔는데, 앞으로는 그 인프라를 활용해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제시해주고 싶다"며 어린 선수들의 '가이드'가 되길 자처했다.
최성호 대표는 메이저 리그에서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된 박찬호와 그의 에이전트였던 스캇 보라스를 예로 들었다. 최 대표는 "박찬호가 스캇 보라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명성은 없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더 많은 박찬호를 만들고 싶다. 게임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게 안정적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