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가족'이라는 말은 낯설게 들립니다. 짧은 e스포츠 역사 속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의 한 팀은 시선을 끕니다. 배틀리카에는 감독인 아버지와 사무국에서 일하는 큰 아들, 선수로 뛰고 있는 작은 아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보기 드문 e스포츠 부자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 같습니다. 둘째 아들인 '멜론' 신정호 선수의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위해 아버지인 신동오 씨와 첫째 아들인 신경호 씨가 모두 모여 게임단을 만든 것입니다. 덕분에 e스포츠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아버지도,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한편에 접어뒀던 형도 배틀리카라는 팀에서 만나게 되었죠.
이들의 여정은 지난 3주차 컨텐더스에서 주차 우승이라는 값진 결실을 얻어내며 가슴 따뜻한 미담을 넘어 배틀리카라는 팀이 앞으로 써내려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배틀리카의 e스포츠 부자, 신동오 감독과 '멜론' 신정호 선수, 신경호 씨가 들려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DES=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멜론' 신정호=안녕하세요, 배틀리카의 메인 탱커를 맡고 있는 '멜론' 신정호입니다.
A 신동오 감독=감독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선수들 관리하고 하면서 단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팀의 명목상 게임단주인 상황이에요.
A 신경호=오즈 게이밍 사무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동생이 팀에 있다 보니 케어 좀 해달라고 하셔서 이렇게 사무국에서 일을 하게 됐죠.
DES=형제 게이머는 봤어도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팀에 있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됐나요?
A 신동오 감독=다 작은 아들 때문이죠. 천생 모르는 e스포츠를 하게 된지가 벌써 한 4년쯤 됐네요. 정호가 처음에는 서든 어택 선수를 했는데 집에서 반대가 컸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다 같이 경주로 여행을 갔는데 큰아들인 경호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정호가 서든 어택에서 선수로 뽑히데 됐는데 반대 때문에 못 나갔었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포기했다"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부모가 돼서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막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지더라고요. 요즘은 뭐하냐고 물어보니 오버워치라는 게임을 한다는데, 잘 한다고 해서 '한 번 해봐라'하고 e스포츠 팀 운영을 시작했죠. 체크 메이트부터 EXL 게이밍을 거쳐서, X6 게이밍의 시드권을 사면서 서울로 올라와서 팀을 운영하게 됐어요.
DES=어떻게 보면 형이 그때 말하지 않았으면 이 이야기가 시작이 안 될 수도 있었네요. 동생이 고민하는 걸 보며 마음이 안 좋으셨나 봐요.
A 신경호=그때 이야기했을 때는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동생이 서든 어택을 했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제게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됐죠. 되게 간절한 것 같은데 어떻게든 말씀을 드려봐야겠다 싶어서 용기를 냈어요. 정호가 선수의 꿈이 정말 크다고 말씀드렸더니 이해해주셨어요. 진심이 닿았던 거죠.
A '멜론‘ 신정호=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을 무서워해서 형이 뜬금없이 말했을 때 많이 당황했어요(웃음).
A 신동오 감독=경주에 간 게 신의 한 수가 된 거죠. 아들들과 같이 술 한 잔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어요. 정호가 꿈을 접었단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죠.
DES=신정호 선수는 원래부터 프로게이머가 꿈이셨던 거예요?
A '멜론' 신정호=어렸을 때는 오히려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요리를 하면서 워낙 다쳐서 어머니께서 반대를 하셨어요. 서든 어택은 프로 대회를 나가려면 부모님 동의서도 필요하고 해서 그 정도는 아니었고 PC방 대회 같은 데 나가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카메라 감독을 반년 넘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프로게이머가 다시 하고 싶었더라고요. 그때 막 나왔던 오버워치를 처음에는 재미로 하다가 상위권에 올라가니까 이번에는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DES=정말 파란만장했네요.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다 쏟아 붓는 스타일 같아요.
A 멜론=저는 무조건 직진이에요(웃음). 취미든 꿈이든요. 요리는 지금도 취미라 전에는 숙소에서 직접 애들한테 밥도 해 먹였죠. 지금이야 그럴 필요가 없는 환경이 됐지만요.
DES=신경호 씨도 그럼 동생 때문에 게임단에서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A 신경호=네, 저도 서든 어택 때는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회도 나가고 했는데 e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동생의 꿈을 지지해주게 됐어요. 정호를 아니까 정호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걱정이 돼서 매니저를 시작했다가 이렇게 계속 해오게 됐죠(웃음). 팀 매니저로 일하다가 오즈 PC방 대회 등을 나가면서 오즈 게이밍과 인연이 닿았어요.
DES=아들 덕분에 정말 생소한 e스포츠란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신 거잖아요. 처음에는 분명히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A 신동오 감독=어휴, 말도 못하죠. 게임을 모르다보니 운영 과정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당해도 봤고 e스포츠 판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죠. 서울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금전적인 부담이 크다보니 운영이 어려운 지경까지 놓였는데 그때 오즈의 이개성 대표님을 만나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됐어요.
DES=이개성 대표님은 정말 여러 분야에서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신 것 같아요(웃음).
A 신동오 감독=정말 그 분이 안 계셨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배틀리카의 우승도 이 대표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고요. 팀 운영이 불가능해졌을 때 대표님께서 선뜻 운영을 해보겠다고 하셔서 정호와 '카달리스' 라영환 두 친구가 선수를 모집하면서 배틀리카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 대표님께는 항상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요.
DES=보통 부모님들이 게임을 싫어하시잖아요.
A 신동오 감독=그런데 아들들이 게임을 하는 데는 제 영향도 확실히 있어요. 옛날에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같은 게임 할 때 정호를 무릎에 앉혀두고 하다가 한번 해보라 하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내에게 그것 때문에 잔소리도 많이 들었죠(웃음).
DES=게임단을 하는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겠어요.
A '멜론' 신정호=지금은 어머니께서도 응원 많이 해주시고 대회 하는 것도 꾸준히 봐주셔요. 대신 게임하는데 건강이나 멘탈이 안 좋아지면 '차라리 그만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하시죠. 항상 경호 형한테 동생 좀 챙기라고 하세요(웃음). 매번 영양제를 보내시고는 일주일 뒤에 또 새로운 영양제를 주시면서 왜 저번에 준 건 안 먹었냐고 하신다니까요(웃음).
A 신동오 감독=같이 게임단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하면서 허물도 많이 없어졌죠. 게임단 처음 하면서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아빠가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은 안 들을 거라 생각해요.
DES=가족이 이렇게 함께 게임단을 하는 일이 거의 전무하잖아요.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멜론' 신정호=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장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기 껄끄럽거나 설명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가족들은 항상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준다는 점이에요. 단점은 사람들의 시선이죠. 좋게 보시는 분도 있지만 안 좋게 보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낙하산이라든가 실력이 없는데 남아있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래도 악플에는 신경을 하나도 안 써서 그런데 상처 받지는 않아요.
A 신동오 감독=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계속 경기에 나갔으면 좋겠지만 코치진 입장에서는 선수를 빼야할 때도 있잖아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지금은 그런 부분에는 손을 뗐으니 아들들이 각자 분야에 맞게끔 하는 것만 지켜보는 입장이에요.
DES=그래도 역시 가족들과 함께 하니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A '멜론' 신정호=당연히 그만큼 동기 부여도 돼요. 부모님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셨고 지원해주셨으니 거기서 오는 간절함이 다른 선수들보다 더 큰 것 같아요.
A 신동오 감독=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걸 하다가 까먹었으면 진짜 돈이 아깝고 힘들었겠지만 자식들에게 투자하면서 할 만큼 했으니 상쇄가 되는 것 같아요. 남이 아닌 자식들을 위해 투자한 거니까요.
A 신경호=동생을 보다 보니 저도 게임만 잘했으면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이제는 프로게이머라는 꿈보다 사무직 일을 하면서 팀이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죠(웃음).
DES=지난 컨텐더스 3주차에 우승을 차지했어요. 정말 뿌듯하고 값진 일이었을 것 같아요.
A '멜론' 신정호=그때 제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반은 이겨서 행복하고 반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선수들은 엄청 좋아했죠. 저희가 바로 프로팀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서로의 성향도 모르는 상황에서 코치도 없이 이렇게까지 해냈으니까요 선수들끼리 서로 고마워했어요.
A 신동오 감독=이번에 성적을 내서 그동안 투자했던 부분이 많이 매워진 기분이에요.
DES=그냥 우승도 아니고 쟁쟁한 강팀들을 꺾고 우승한 거라 더 의미가 있었겠네요.
A '멜론' 신정호=여운이 오래 갔죠. 솔직히 O2 블라스트를 못이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본 싸움에서는 저희가 약한데 템포나 궁극기 싸움에서는 이기니까 우승 하겠구나 생각했죠. 추가 시간 메타라고 하잖아요, 저희가 평소에는 실수가 많이 나오다가 추가시간이 되면 아이큐가 80에서 150으로 올라가더라고요(웃음). 집중력이 엄청 좋아지고 물어야 되는 대상도 일치하고 거점 관리도 딱 되고요.
A 신경호=다들 유독 3주차 컨텐더스가 재밌었다고들 하더라고요. 4강 시작 전에 다른 팀에서 이 조는 너무 쉬웠다, 이 팀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냐는 말이 있었는데 O2를 이겼더니 조용해졌어요. 떳떳하게 이겨서 저희의 실력을 증명하고 응원해주시는 팬들도 많아져서 기뻤어요.
DES=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됐어요. 플레이오프 진출을 예상 하셨나요?
A '멜론' 신정호=시즌 시작 전에는 정말 '1도' 안했어요. 오프라인 대회만 한 번 나가보자는 마인드였는데 해볼 만하니까 '플레이오프 가보자' 하면서 점수를 계산했죠(웃음). 솔직히 플레이오프는 영웅 제한이 없으니까 더 걱정이 되긴 해요.
A 신경호=코치가 있으면 빨리빨리 정해져서 연습을 하는데 저희는 직접 플레이를 파면서 파악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죠.
DES=플레이오프 목표는 무엇인가요?
A '멜론' 신정호=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에요.
A 신경호=우승을 한 번 해보면 다음 목표는 또 우승을 하는 거예요. 좋은 성적을 내고 건틀렛에 나가서 선수들이 실력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해요.
DES=앞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신경호=저는 사무국에 있으니 팀을 잘 꾸리는 게 목표고 컨텐더스 팀이니까 선수들을 오버워치 리그에 보내는 게 목표에요. 그러려면 컨텐더스 우승을 하고 성적을 유지해야겠죠. 계속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게 잘 서포트 해주고 싶어요.
A '멜론' 신정호=저는 목표는 항상 크게 잡아요. 리그에 가서 계속 우승을 해내고 싶어요.
A 신동오 감독=솔직하게 말해서, 즐기라고 팀을 만들었는데 성적을 내버리니 고민이 정말 많아요. 저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이다 보니 더 그렇죠. 제 자신에 대한 것보다 아들들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됐으면 좋겠고 어딜 가서도 잘했으면 해요.
DES=어떻게 보면 다들 신정호 선수로 인해 여기 뛰어들게 된 거잖아요. 어느 정도 부담감도 있겠어요.
A '멜론' 신정호=이런 경우는 프로팀을 다 합쳐서 처음일거예요. 제가 잘돼야 아빠도 형도 다 잘 되는 거긴 하죠.
A 신경호=물론 정호가 리그에 가는 게 큰 목표겠지만 가도 상관없이 저는 제 일에 집중해야죠(웃음). 사무국에서 일을 하면서 아직도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DES=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인터뷰를 마치도록 할까요.
A '멜론' 신정호=아버지께는 성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또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그때는 아버지께 손 벌리지 않고 효도하면서 가족들과 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전하고 싶고요. 형에게는 저 때문에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계속해서 형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해요.
A 신경호=아버지께 계속 게임단을 키우면서 효도해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릴게요. 정호는 지금 잘 해주고 있어서 지금처럼만 하자고 말해주고 싶네요.
A 신동오 감독=나중에 제가 떠났을 때 '아빠, 인생 잘 사셨어요'라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듣고 싶어요.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떳떳하게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해요. 경호와 정호, 항상 부모 말 따라줘서 고맙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잘 됐으면 좋겠다.
김현유 기자 hyou0611@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