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트' 김혁규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서사를 보고 다시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웠다는 최기명은 김대호 감독의 혹독한 피드백과 함께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아직 프로게이머가 된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최기명은 우상 김혁규를 만나게 될 kt 롤스터와의 시즌 첫 경기에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최기명은 팀원들과 함께 서머를 넘어 롤드컵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데프트' 보며 다시 살아난 프로게이머 꿈
2000년생의 최기명은 한국 나이 25살로 다소 늦은 나이에 프로게이머 데뷔를 앞두고 있다. 그런 그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지핀 이는 김혁규라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게이머가 꿈이었지만, 나이가 차면서 점점 멀어졌었다"며 "그런데 '데프트'가 롤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봤다. 또, 그렇게 나이가 있는 선수들이 리그에서 꾸준히 잘하다 보니까 '나도 늦었지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씨맥' 형이 먼저 연락을 줬다"고 프로게이머 데뷔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이는 김대호 감독이었다. 최기명은 "처음 테스트 보는데 제가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씨맥' 형한테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그런데 '너 할 수 있다. 너 된다. 데이터 쌓으면 무조건 되는 아이다'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형 믿고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씨맥' 형도 리스크를 가지고 저를 기용한 거니까,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LCK 서머 개막 미디어데이에 나섰던 김대호 감독에 따르면, 최기명은 LCK 원거리 딜러들을 맞아 혹독한 스크림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최기명은 "사실 나이도 좀 있는 편이고 늦게 시작했다 보니까 자신감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피지컬이나 게임 보는 눈 등은 괜찮은 것 같은데, 게임할 때 자신감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좋아지고는 있다"고 덧붙였다.
수준 높은 LCK의 원거리 딜러와 연습하는 최기명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기명은 "'구마유시' 이민형, '페이즈' 김수환, '바이퍼' 박도현, '데프트' 김혁규 등 솔직히 LCK 원거리 딜러 전부 다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크림할 때마다 재밌다"며 "스크림하면서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정말 많이 배웠다"고 웃으며 말했다.
▶형에서 감독으로…든든한 버팀목 '씨맥' 김대호 감독
프로게이머 데뷔를 앞두고 모든 게 낯설 수밖에 없는 최기명에게 가장 큰 힘이 돼 주는 이는 역시 김대호 감독이다.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부터 최기명과 친분을 유지해 온 김대호 감독은 프로게이머의 삶을 시작한 최기명에게 때로는 좋은 형으로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때로는 엄한 감독으로서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다.
최기명은 "LCK 원거리 딜러 풀이 엄청 좋다고 생각한다. 베테랑 선수가 많아서 제가 약간 눌려 있다"며 "그래서 엄청 혼났다. '씨맥' 형이 '너는 사자인데, 왜 하이에나처럼 하느냐. 사자는 사자답게 해야 하는데 하이에나처럼 한다'면서 화를 많이 냈다. 저도 고치려고 한다"고 말하며 피드백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어서 최기명은 "'씨맥' 형이 '난 감독이 아니다. 난 그냥 너희 친구다'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나를 이겨봐라 다이아한테 챌린저가 지면 안 되지 않냐. 날 감독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친구라 생각하고 말 편하게 해도 상관없으니까 나를 이겨봐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다들 말도 편하게 하지만, 확실히 피드백할 때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최기명은 감독-선수 관계로 함께 생활하며 게임에 대한 김대호 감독의 진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게임에 진심이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수가 있구나를 느꼈다. 그동안 저도 게임에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넓고 나보다 더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화를 낼 때는 그럴 만한 상황이어서 기분 나쁘지 않다. 엄마에게 잔소리 듣는 느낌이다. 사실 남을 위해서 화내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절 위해서 화내는 걸 알아서 괜찮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간극을 좁히는 과정
최고 수준의 원거리 딜러들과의 스크림, 김대호 감독의 피드백 등을 통해 최기명은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다. 최기명은 프로와 아마추어 간 가장 큰 차이를 묻는 질문에 '턴 개념'을 꼽았다. 그는 "솔로 랭크는 교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팀 게임은 턴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근거 싸움이 많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배운 바를 설명하기도 했다.
최기명은 스트리머 시절 미드, 정글, 원거리 딜러 등 다양한 포지션을 하며 솔로 랭크 챌린저 티어를 찍었다. 그때 쌓은 포지션별 다양한 경험은 프로게이머로 시즌을 준비하면서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독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독이 되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면 원거리 딜러인데 포지션을 미드나 정글처럼 잡는다든지, 쓸데없이 다른 라인 백업을 가는 등의 행동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부분도 거의 고쳤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시절 습관을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는 최기명. 그럼에도 준비 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서머 스플릿 들어가서는 기존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기명은 자신의 무기로 한타 능력을 꼽았다. 그러면서 기존 LCK 원거리 딜러 중에서는 젠지e스포츠의 '페이즈' 김수환과 가장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최기명은 "일단 한타는 많이 자신 있다. 그래서 '안딜' 문관빈이나 '불독' 이태영과도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굳이 따지면 '페이즈' 김수환과 스타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한타의 강점이 있는 것 같다"며 "물론 김수환은 라인전까지 정말 잘한다. 그런데 아직 저는 라인전 데이터가 많이 부족해서 쌓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우상이었던 '데프트'와 치를 운명적인 프로 데뷔전
최기명의 소환사명 '리퍼(Leaper)'는 곡예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인전 종료 후 한타 단계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원거리 딜러의 특성을 살려 지은 소환사명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누빈 솔로 랭크 속 소환사의 협곡이 아닌, LCK 속 소환사의 협곡에서의 줄타기 곡예가 기대되는 최기명의 목표는 서머를 넘어 롤드컵까지 닿아있었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기명은 "일단 저희 팀 전체가 롤드컵 진출을 목표로 두고 있다. 서머 우승은 물론이고 롤드컵 우승도 하기 위해 다들 노력 중이다. 팀적인 목표는 어떤 대회를 나가든 우승하는 것이다"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어서 그는 "개인적인 목표는 경기 승패를 떠나서 피드백 때 나왔던 내용을 다 고치는 것이다"라고 바람을 보이기도 했다.
광동의 서머 첫 경기 상대는 kt 롤스터다. 최기명은 프로게이머의 꿈에 다시 키운 계기였던 김혁규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것이다. 그는 "(김)혁규 형과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잘할 거라고 해주면서도 '넌 내 아래에 있다'는 말투여서 꼭 이기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그는 "어쨌든 '데프트' 덕분에 다시 마음이 돌아서기도 했는데, 운명처럼 첫 경기가 kt다. 또 '표식' 홍창현도 있으니까 꼭 이기고 싶다. 재밌을 것 같고, 제 우상이던 사람과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기명은 팬들을 향한 인사 역시 잊지 않았다. 최기명은 "제가 서머에 급하게 들어와서 연습 시간도 길지 않고 데이터도 많이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상황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부족한 점 다 고쳐서 '나 광동 팬이다. 광동 응원하고 있다'라고 했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강윤식 기자 (skywalker@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