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도 모른 채 맞은 란돌 경비대장은 거의 한 바퀴 구르다시피 뒤로 넘어간다.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몇 번의 주먹질이 오간다.“정말 네 자식이 몰라서 물어?”란돌 경비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양팔을 경비대원한테 잡힌 채 두 눈만 동그랗게 뜬다.“네놈은 닉스 연방 최고의 수치야.”“무슨…….”“몰라서 물어?”“이게 너의 죄목이다.”종이 하나를 란돌 경비 대장한테 꺼내 보인다.“너 같은 녀석이랑 같은 군문에 있다는 게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또다시 란돌 경비대장을 발로 가격한다. 란돌 경비대장의 허리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활처럼 휜다.“란돌 보나드 소령. 군번 NHAGU-08742. 민간인 뇌물
2019-07-15
“그럼 무전기 찾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무전기를 찾게 되면 아마 저희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미하일 중위가 수첩을 가리킨다.“여기 이렇게 반란군의 이동 경로를 보면 중복되는 것도 있고 엉켜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걸 보면 저쪽의 지휘체계가 일사불란한 건 아니라는 거죠. 아마 인편으로 명령이 전달되는 거 같아요. 아마 그 무전기가 공용통신을 하는 기지국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장거리 통신도 가능하고요. 아마 그 무전기를 반란군이 찾게 되면 저희에 대한 추적이 더 심해질 거 같아요.”“그럼 뭐 어쩌자는 거야?”란돌 대장이 짜증을 낸다.“저희가 먼저 찾아야죠. 어서 움직이죠.”미하일 중위가 방향을 잡
란돌 대장은 꼬박 2년을 페이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페이는 란돌 대장에게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약혼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란돌은 개의치 않았다. 페이가 외면하면 할수록 란돌의 페이를 향한 집요한 구애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페이에게 사다 준 목걸이와 팔찌 같은 다양한 선물을 다 합친다면 아마도 군용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렇게 거의 2년 치 월급을 모두 페이에게 쏟아부었건만 페이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보내 주는 선물을 족족 다 받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난 아이딘의 석방 건으로 페이
예리엘은 섭섭하다는 생각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거 알아? 미하일 중위 훈장도 받는데…….”“그러면 뭐 해. 죽은 다음에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야. 미하일 중위만 아깝지.”“모든 게 덜떨어진 경비대 윗대가리 녀석들 때문이지 뭐.”그때 한 부류의 경비대원들이 몰려왔다. 잭슨과 호퍼는 그들이 자신들의 대화를 엿들었을까 바짝 긴장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경비대원들이 공손히 예리엘을 찾았다. 그리고는 경비대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품안에 있던 포장 하나를 꺼내 예리엘 앞에 풀었다.“미하일 중령의 유품입니다. 미하일 중령이 매번 여기에 맡겼다고 해서요. 마지막으로 손봐 주셨으면 해서요.”예리엘은
게다가 루드 의원에 대한 테러 문제가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의 또 다른 테러로 모두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상황이었다. 전쟁이 남의 얘기 같았던 노만 마을 사람들 또한 비로소 심각한 전쟁의 분위기를 느끼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연방의 군용트럭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자벨과 예리엘은 이제 너무 울어 더 울 힘도 없었다. 남겨 놓고 온 아이딘이 걱정이 돼서 서로가 부둥켜안고 몇 시간을 함께 울었다. 예리엘과 칼레 위원장의 일행이 마을에 돌아온 즉시 아이딘과 미하일 중위를 찾기 위한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피투성이가 된 아
이리저리 부상자를 수습하는 미하일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네.”“미하일 중위. 저 차에서 아직 칼레 위원장님이 나오시질 못했네.”“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그 차량은 공교롭게도 아까 두 번째로 세게 들이박아 몇 번을 굴렀던 차량이었다.“그건 모르겠네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차 안에서 나오지 않고 계시네.”“네. 아마 차 안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렇게 창문에 셔터가 내려져서 밖의 상황을 알 수도 없고요.”“어찌되었건 칼레 위원장님을 두고 갈 수는 없네. 밖에서 아무리 얘기를 해도 차 안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네.”“네. 방법이 있을 겁니다.”미하일은 즉시 호퍼를 불러 전기톱
“이건 뭐야?”“아까 저놈들이 이거 들고 뛰던 거잖아?”문득 마지막에 도망치던 병사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왠지 모르게 중요한 물건인 듯싶었다.호퍼가 바닥에 앉아 물건의 이곳저곳을 살펴본다.“이거 전기톱 같은데? 이거 이렇게 끼면 되는 거 같은데?”호퍼가 물건을 만지작거리면서 부품을 이리저리 끼어 맞추었다. 그리고 시동 로프를 당기자 거친 기계음과 함께 작동되기 시작한다.“봐. 맞지?”호퍼가 전기톱의 톱날을 신기한 듯 위로 아래로 열심히 휘두른다.“이걸 왜 갖고 있는 거지?”“뭐…… 자를 게 있나 보지?”“뭘 잘라. 나무하러 온 것도 아니고?”“와…… 이거 봐라. 돌도 잘려 나가는데.”호퍼가 바위에다 전기톱을 갖다
그런데다가 미하일의 심정을 모르는 중앙군의 대위는 다짜고짜 명령조로 그에게 지시를 내리더니 일행과 멀리 떨어져 경계근무를 서라고 했다. 최악이었다. 귀여운 이자벨 그리고 약간 어울리지는 않지만 나름 정감 가는 세 녀석과 맛난 것을 먹으며 시시덕거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이미 환상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자신이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예리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조차 잃게 되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오후 내내 들판에서 경계근무만 서야 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물론 예리엘이 틈틈이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했지만 중앙군 대위의 쏟아지는 눈치에 먹는 둥
“이자벨. 그렇게 기분이 좋니?”루드 의원이 늘 그렇듯이 따뜻한 목소리로 이자벨에게 묻는다.“네. 아빠.”활짝 웃는 이자벨의 얼굴에 루드 의원의 얼굴도 화사해진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병색이 완연했던 그녀의 얼굴은 이제 활짝 피어오른 유월의 장미처럼 싱그럽고 활기차기 그지없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딘 덕택이다. 루드 의원과 이자벨의 생명을 되찾아 준 것은 물론 이렇게 이자벨에게 생기까지 불어넣어 주었다. 앞으로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을 진 느낌이다.오늘 휴일을 맞아 아이딘이 이자벨과 함께 피크닉을 하러 간다고 했다. 추모를 위한 휴일이고 선약도 있어 약간 망설이기도 했지만 아이딘은 이날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
예리엘이 신이 난 듯 폴짝폴짝 뛴다. 아이딘이 이곳에 온 지도 거의 두 달이 넘어간다. 예리엘은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런 휴일에 피크닉이 마냥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두 덩치 녀석도 덩달아 신이 나는 듯 방긋방긋이다.“우리 이자벨도, 그리고 미쉘도 데려갈까?”“페이 언니도?”“음, 너무 좋아.”잭슨은 아주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신이 났다.독수리의 눈물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그들 모두에게 오늘은 무척 재미있는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알트마이어는 아침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오늘 오전에 통령 대리이자 과학부 부장, 국방부 부장인 에바가
그녀 역시 닉스와 함께 대재앙 이전의 많은 과학기술들을 복원시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지금의 이 자리에 섰다. 닉스를 닉스 연방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닉스 연방의 어머니는 바로 에바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닉스에 버금가는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여러 능력 면에서 오히려 닉스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항상 닉스의 뒤에서 그를 보좌하며 닉스와 함께 닉스 연방을 이끄는 영명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답이 결국 이 회의의 결론을 의미할 것이었다.에바가 특유의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저는 기가스 사령관님과 의견을 같이합니다.”하바로프의 칼레 랑베르 위원장이 조금은 격
“미련한 덩치, 아니 호퍼…… 정말 린을 사랑했니?”“네.”“그리고 린도 호퍼를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거야?”“네.”“그럼. 기다려 봐.”“뭘 기다리라고…….”“린을 기다리라고.“그렇지만…….”“뭘 걱정해. 서로 사랑한다면서…… 린이 호퍼가 말한 대로 진심으로 대했다면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그렇지 않다면.”“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린이 호퍼를 이용한 거잖아. 그리고 사랑하고 믿는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호퍼도 린을 진심으로 대한 게 아니잖아.”“그렇긴 한데…….”“그럼 끝! 린의 사랑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제, 제가요? 아뇨! 그럴 리가요!”“그럼 기다려 봐.”페이가 마치 문제를 푸는
아이딘은 서서히 목을 돌리며 녀석들의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때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네가 아이딘이냐?’ 이 느낌은 이전 이자벨과 텔레파시가 통했을 때와 동일한 느낌이다. 아이딘이 곧바로 반응한다.‘어라. 넌 누구냐?’‘난 마에다 다케시. 여기 야쿠자의 보스다.’‘너도 텔레파시를 하는구나?’‘그래.’‘그런데 나를 어떻게 알고 있지?’‘노만 마을에서 너의 활약은 익히 들었다.’‘활약이랄 것까지야.’ 이런 느낌이 전송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좋아, 너는 어디 소속이었냐?”다시 텔레파시가 온다.‘소속?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그래.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텐데?’‘숨기는 게 아니고 정말 모르겠어. 무
아이딘은 또한 TDS의 사장인 시로의 일화들을 들으며 그 사람과 TDS라는 회사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여하튼 아이딘은 루드 의원을 만남으로써 돈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들었다.술에 취한 란돌 대장을 장시간에 설득한 후에서야 아이딘과 잭슨은 마음 편하게 걸어서 원샷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덧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계절상 여름이라 그런지 공기는 살짝 더운 기운이 느껴졌으며 이름 모를 곤충이 우는 소리가 멀리 숲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저 멀리 은하수에 사람이 가는 날이 오려나.”잭슨이 중얼거렸다.“하아, 그놈의 우주정거장만 떨어지지 않았다면 세상이 달라졌을까?”잭슨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던
복잡한 여러 생각들이 줄을 잇자 아이딘은 또다시 심한 두통을 느꼈다. 이 두통 또한 아무래도 멎지 않는 코피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연관되는 듯싶어 당분간은 이런 골치 아픈 주제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며칠 동안 자리를 비워 고생했을 예리엘이 떠올라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부터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세월 좋은 잭슨이 설렁설렁 문을 열고 들어선다.“아, 아이딘. 오늘은 컨디션 괜찮아?” “어. 그래.”아이딘이 바닥을 쓸던 빗자루를 잭슨에게 던져 준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렵하게 받아 든 잭슨이 바닥을 쓴다. 아이딘이 그 모습을 보며 작업대 위에 걸터앉는다. 예리엘은 작업대에 걸터앉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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