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폰은 코를 후비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삼문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뭔가를 느끼려 했다.
“아무 느낌도 없는데?”
안드레멜은 말없이 삼문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아직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백억은 받을 수 없……!”
갑자기 삼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쩍 벌어진 입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핏줄기는 삼문의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커어어억!”
피는 계속해서 나왔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삼문이 진작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죽지 않는 것에 의아할 정도였다.
“치사량은 진작 넘어섰고, 신체에 있는 피를 거의 다 토했어.”
아틀라스는 몸서리를 치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삼문이 토하는 피의 양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멎었다.
그리고 피를 다 토한 삼문은 앞으로 쓰러졌다.
“역시 극약이었나?”
조르조는 형제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동생들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형제는 허리춤에 찬 리볼버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여차하면 빼 들 준비를 했다.
“허억!”
앞으로 고꾸라졌던 삼문의 상체가 뒤로 90도 꺾이며 일으켜졌다.
그의 기괴한 움직임에 합격자들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헉, 헉, 헉…….”
삼문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뒤로 벌떡 몸을 튕겼다.
그러자 마치 림보를 하듯 그의 허리가 굽혀진 채 똑바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런 다음, 그의 몸이 꼿꼿이 펴졌다.
“후우.”
입가심과 같은 한숨.
삼문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스탯!”
안드레멜과 건기는 외눈을 통해 가만히 삼문의 스탯을 확인했다.
***
[등급 : A]
[근력 : A] [순발력 : A]
[지구력 : B] [지력 : C]
[스킬 : 슬래쉬]
***
지력을 제외한 스탯이 상승.
거기에 스킬까지 생성.
각성자에게 있어 최고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꽝이군.”
안드레멜은 차갑게 삼문의 변화를 평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삼문은 다급히 물었다.
“이게 꽝이라고? 이게?”
“다음.”
안드레멜은 삼문을 외면한 채 다른 합격자들을 가리켰다.
다른 합격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삼문에게 물었다.
“괜찮아?”
“아주 좋아!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지금이라면 S급과 싸워도 이길 수 있겠어!”
삼문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씩씩하게 밖으로 나갔다.
미키와 조직원들은 어이가 없어서 안드레멜에게 물었다.
“정말 저희는 안 되는 겁니까?”
안드레멜은 끈질긴 그의 질문에 처음으로 히죽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본 미키는 목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 닥치고 있겠습니다.”
“다음.”
이번엔 폰이 앞으로 나섰다.
그를 본 안드레멜은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 약을 먹으면 강해질 수 있는 건가?”
“그래.”
폰은 안드레멜에게서 알약을 받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삼문처럼 그도 픽 앞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삼문과 달리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가치조차 없군.”
삼문과 달리 사망.
안드레멜은 미키를 보면서 죽은 폰을 가리켰다.
“치워.”
“네, 넵!”
안드레멜은 다른 합격자들에게 계속 알약을 권했다.
“다음.”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
합격자들은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을 우리 차롄가?”
조르조 삼형제와 벤은 안드레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아틀라스는 거부.
건기는 조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할래?”
“난 자연산이 좋아.”
조도 완곡히 거부.
알약을 거부한 자들은 의외로 순순히 건물을 나올 수 있었다.
다만, 건기가 방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안드레멜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흠칫.
건기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됐다.
안드레멜은 건기의 어깨를 꽉 움켜쥐면서 천천히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이 모든 건 널 없애기 위해서야. 이, 건, 기.”
건기는 곁눈질로 안드레멜을 흘겨봤다.
안드레멜의 말 덕분에,
그는 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비정상적인 효력의 알약.
정체불명의 청년.
그는 안드레멜의 배후에 마왕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사실 그는 회귀 후,
계속 건기를 미행한 장본인.
그러나 건기가 거기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건기와 안드레멜.
둘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안드레멜은 선전포고 후,
더 이상 건기를 붙잡지 않았다.
그가 어깨를 놓아 주자,
건기는 지체 없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젠장. 돈벌이 좀 해 볼까 했더니, 완전 재수 옴 붙었네.”
아틀라스는 투덜거리며 함께 건물을 나온 다른 합격자들을 향해 말했다.
“괜찮으면 나랑 같이 길드 창고라도 털지 않겠어? 성공하면 꽤 짭짤할 텐데?”
건기는 아직 눈에 끼고 있는 외눈으로 함께 나온 아틀라스와 조의 스탯을 확인했다.
먼저 아틀라스.
***
[등급 : C]
[근력 : C] [순발력 : C]
[지구력 : C] [지력 : D]
[스킬 : 마스크]
***
다음은 조.
***
[등급 : C]
[근력 : C] [순발력 : D]
[지구력 : C] [지력 : C]
[스킬 : 없음]
***
건기는 아틀라스에게 물었다.
“‘마스크’란 스킬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지?”
“내가 그런 걸 순순히 알려 줄 바보로 보여? 가면 속에 외눈이라도 끼고 있나 본데, 목적이 뭐야?”
“그냥 네 스킬이 알고 싶은 것뿐이야. 스킬은 이름만 봐선 확실하게 효과를 알 수 없으니까.”
실제로 서로 다른 각성자끼리 같은 이름의 스킬을 지닌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만 이름이 같다고 해서 능력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파이어볼’이란 스킬을 지닌 두 각성자가 있을 때,
한 명의 파이어볼은 단순히 손에서 불꽃의 구체를 만들어 내 폭파시키는 능력이라면,
다른 한 명의 파이어볼은 자신의 시야가 닿는 범위 내에서 불꽃을 만들어 내 원격으로 조종하는 능력으로,
이름은 같더라도 완전히 다른 능력임을 알 수 있었다.
“흥, 내가 아주 호구로 보…….”
“5백만 원.”
건기는 아틀라스의 말을 툭 끊으며 말했다.
“능력을 알려 주면, 5백만 원을 주지. 일단 백만 원을 선금으로 준 다음에, 능력을 보여 주면 나머지 4백만 원을 주겠어.”
무법자를 다룰 땐 돈이 최고.
실제로 아틀라스는 건기의 입에서 나온 액수에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며 고민했다.
“내 능력을 알고 싶다면서 고작 5백만 원? 적어도 천만 원은 줘야지.”
아틀라스는 건기와 흥정할 생각으로 두 배의 가격을 불렀다.
그러나 건기는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럼 천만으로 하지. 하지만 선금은 2백만 이상 줄 수 없어.”
“2, 2백?”
아틀라스는 선금을 조금 더 달라고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자칫 욕심을 부리다간 천만 원이 2백만 원으로 깎일 위험이 있었다.
“조, 좋아. 그걸로 하지.”
건기는 조와 헤어져 아틀라스와 함께 길드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예금액 십억 중 1억을 찾아서 인벤토리에 넣었다.
“자, 여기 2백만 원.”
아틀라스는 건기가 내민 돈에 덥석 손을 뻗었다.
하지만 가면의 눈구멍으로 보이는 건기의 눈빛을 보자,
선뜻 돈을 집을 수 없었다.
‘시발, 이건 분명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징조 같은데……. 그냥 돈만 들고 튈까?’
돈은 갖고,
엮이기는 싫다.
지극히 무법자다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건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아틀라스의 숨통을 조였다.
도박사 아틀라스.
사실 그는 진지한 도박보단 사기로 먹고 사는 부류였다.
그런 사기꾼의 필수 능력은 상대를 가늠하는 것.
그렇기에 더욱 아틀라스는 건기를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젠장!”
결국 직감보단 현실.
마침 아틀라스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못했다.
아틀라스는 돈을 받아 들고는 건기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갔다.
가급적이면 남들에게 스킬 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스킬을 보여 주면, 나머지 8백도 꼭 주는 거겠지?”
“물론.”
마지막으로 약속을 확인.
아틀라스는 한숨을 쉬며 스킬을 외쳤다.
“마스크!”
아틀라스의 외침에 그의 얼굴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골격과 근육은 애벌레가 기어가듯 서로 얽히면서 점점 본래 형태를 잃어 갔다.
“후후후.”
아틀라스의 얼굴은 골격이 둥글넓적해지면서 조의 얼굴과 똑같이 변했다.
“완성!”
조의 얼굴이 된 아틀라스는 건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8백만 원마저 내놔.”
“얼굴을 복사할 때 특별한 조건이 있나?”
건기는 인벤토리에서 2백만 원을 꺼내 아틀라스의 손에 건넸다.
돈다발을 받은 아틀라스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왜 돈이 이것뿐이지?”
“걱정하지 마. 나머지 6백도 줄 거야. 그 전에 대답부터 해. 특별한 조건이 있나?”
아틀라스는 건기의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추가 요구 조건.
무법자에게는 흔한 상황.
이럴 땐 선택지가 두 가지다.
조금 더 상대 요구에 따라 주거나,
그냥 판을 엎어 버리거나.
아틀라스는 건기가 쥐여 준 2백만 원을 믿기로 했다.
“내가 복사할 상대의 얼굴과 목소리를 알면, 딱히 제한은 없어.
조건은 얼굴과 목소리.
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틀라스에게 2백만 원을 건네며 또 질문을 했다.
“얼굴은 언제까지 유…….”
아틀라스는 건기의 말을 자르며 빠르게 대답했다.
“컨디션에 따라 달라. 몸 상태가 좋으면 1시간까지 버티고, 안 좋을 땐 5분도 못 버텨.”
최소 5분, 최대 1시간.
건기는 또 2백만 원을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만약 너와 네 능력이 필요해지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마탑의 다양한 층을 떠도는 무법자의 특성상, 본거지로 삼는 특정 장소가 있기 마련이었다.
만약 아니라면, 적어도 길드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날 찾고 싶다면, 내 계좌인 ‘아틀라스짱짱’으로 메시지를 보내. 연락을 받으면 마탑 어디든 2주 안에 도착하도록 하지.”
아틀라스는 순순히 대답했다.
건기는 마지막 2백만 원을 그에게 건넸다.
“며칠 후에 큰 건수 하나가 있을 예정이야.”
“당연히 위험한 일이겠지?”
“위험하지만, 1인당 큰 거 열 장은 벌 수 있지.”
“1인당?”
“1인당.”
아틀라스는 건기가 준 2백만 원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위험해도 괜찮겠지.”
두 사람은 골목을 나왔다.
그리고 북적한 인파 사이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건기는 그 길로 여관 주점에 돌아가는 대신, 어느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사흘 전 무기점 주인이 알려 준 마약 거래처였다.
***
마탑 내 합법적인 의료 시설은 모두 MGF 산하.
약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하얀 타일이 깔린 바닥.
새하얗게 칠해진 벽과 천장.
새하얀 가구와 약봉지.
약사는 활짝 웃으며 손님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딸랑딸랑.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
약사는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친절과 봉사.
그것이 약사의 신조였다.
그는 미소를 유지하며 손님을 대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허름한 여행자 복장.
누가 봐도 수상쩍은 가면.
거기에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 중 이런 부류가 찾는 물건은 뻔했다.
그러나 짐짓 판단하기보단 차분히 손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은 조용히 말했다.
“국민은 개돼지다.”
“예? 국민이 왜 개돼지죠? 국민은 버러지 아닌가요? 개돼지를 너무 무시하시네요.”
“선동 당하는 대중은 위험하다.”
“자꾸 무슨 소리 하시는 건가요? 대중의 관심이 언론의 관심이 되는 게 아니라 언론의 관심이 대중의 관심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그것은 거래하는 이들 사이의 비밀 암호.
두 사람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약사는 고개를 까딱여서 창구 옆 작은 문을 가리켰다.
손님은 그 문을 열고 창구 안으로 들어와 가림막 뒤에 섰다.
“따라와.”
약사는 방금 전까지 보여 주던 웃음을 싹 거두었다.
그는 창구 뒤쪽 문을 통해 손님을 작은 방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문을 잠근 후 물었다.
“얼마치 줄까?”
손님은 말없이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 다섯 개를 보여 줬다.
개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