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임요환은 개인리그 결승전에 오를 때마다 아쉬움이 담긴 한 마디를 했다. 꿈은 30대가 넘어서도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언제 군에 입대하라고 영장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현실을 토로했다.
2004년 에버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제자' 최연성과의 경기에서 아쉽게 2대3으로 패한 뒤에 임요환이 흘린 눈물에 담겨 있는 의미는 군 입대에 대한 불안감이라기 보다는 프로게이머로서의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는 경기에서 패했다는 회한이었다.
2005년 오영종과의 So1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임요환은 눈물을 아꼈다. 군에 프로게임단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크게 동요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6개월이 지난 뒤 공군에서 프로게임단을 만들었다. 지금은 당당히 e스포츠 병과가 따로 있어 프로게이머를 선발하지만 당시만해도 전산특기병 자격으로 선수를 뽑았다. 강도경과 조형근, 최인규가 처음으로 프로게이머 자격으로 공군에 입대했고 임요환은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입대 관련 에피소드
사실 임요환은 공군 에이스의 선수로 뽑히기 전 두 차례 가량 육군 훈련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사령탑을 맡은 SK텔레콤 주훈 감독이 밝힌 내용이다. 임요환이 육군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았고 실제로 훈련소에 입소하기도 했지만 디스크 증상이 발견되면서 입대가 연기된 것. 임요환의 팬들은 눈치챘겠지만 짧은 머리를 싫어하는 임요환이 팬들의 호칭처럼 '레고 머리'로 경기장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임요환은 우여곡절을 모두 극복하고 공군에 입대 원서를 냈다. 합격은 당연한 일. 그래도 임요환은 방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팬들에게 한 경기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프링글스 MSL 시즌2에 임했다.
임요환은 2006년 9월 진행된 프링글스 MSL 시즌2에서 숙적인 강민을 제압했고 16강전 승자전에서 심소명을 꺾으며 8강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더 이상 SK텔레콤 T1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입대일이 다가왔고 곧 공군 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리그 막판까지 선전한 임요환은 다음 대회에 출전할 자격까지 따내는 근성을 선보였다.
임요환은 2006년 10월9일 입대했다. 당시 취재진과 팬 등 100여 명이 임요환의 입대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진주까지 동행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임요환이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는 기간을 활용하기 위해 MBC게임은 프링글스 MSL 시즌2의 결승전을 진주 교육 사령부 연병장에서 진행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마재윤과 심소명이 결승전을 치렀지만 취재진의 관심은 연병장에서 후배들의 결승전을 지켜보는 임요환을 찾는데 모아졌다. 결국 임요환을 가장 먼저 찾은 사진 기자는 대박을 터뜨렸다.
◆공군 에이스의 에이스
임요환은 공군 에이스에서 에이스로 활동했다. 임요환의 뒤를 이어 입대한 성학승과 김환중, 이재훈, 김선기까지 8명의 라인업이 갖춰졌고 공군은 에이스라는 이름의 팀을 만들어 2007년 전기리그부터 프로리그에서 활약을 펼쳤다.
공군 유니폼을 입은 임요환의 데뷔전은 얄궂게도 친정팀인 SK텔레콤 T1이었다. 상대는 전상욱. 한솥밥을 먹던 시절에도 묘한 경쟁 관계를 갖고 있던 임요환은 전상욱에게 패하면서 팀플레이로 전향했다. 선임병인 강도경과 두 번의 경기를 치렀지만 첫 승은 멀고도 험했다.
그러던 임요환에게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스트로와의 경기에서 저그를 만난 것. 팀플레이와 개인전을 오가던 저그 김원기를 상대한 임요환은 특기인 저그전 스킬을 발휘하면서 첫 승을 따냈다. 당시 임요환은 에이스 카드를 팬들에게 뿌리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임요환은 바로 다음 경기인 MBC게임 히어로와의 경기에도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 김택용과 경기를 펼쳤다. 4세트에서 최인규가 고스트의 록다운을 선보이며 김택용을 꺾었고 임요환은 절묘한 타이밍 러시를 통해 김택용의 숨통을 조이며 승리했다. 에이스 결정전에서 처음으로 승리했고 이스트로전에 이어 2연승을 달성했다.
임요환은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했다. 선임병인 조형근이 팀플레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26승이나 달성했고 후임 이주영이 입대 이후 빼어난 개인전 능력을 앞세워 30승을 넘어섰지만 임요환은 공군 소속 테란 사상 가장 많은 승수를 쌓으면서 에이스임을 확고히 했다.
개인리그에 출전한 경험도 있다. 예선을 통과해 출전한 11차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임요환은 STX 김윤환과 은퇴한 김민구를 제압하면서 MSL 출전권을 얻어냈고 본선 32강에서 1차전 강민을 꺾었지만 승자전에서 삼성전자 이성은에게 패했고 최종전에서 강민에게 무너지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벤트전도 많이 치렀다. 공군 유니폼을 입기 전 임요환은 라이벌 홍진호, 잠재적 라이벌인 마재윤과 수퍼파이트에서 맞대결을 펼쳤고 신병 훈련소에서 나온 뒤에는 게임 음악회에서 이윤열과 맞붙어 승리하기도 했다.
이후 도너스 캠프와 함께하는 드림 매치를 마재윤과 치렀고 e스타즈 월드 토너먼트 256강 대회에도 나섰다.
◆제대하자마자 스캔들
임요환은 2008년 12월21일 제대했다. 군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임요환은 공군 에이스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병역을 해결했고 숙원인 30대 프로게이머의 꿈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성공 신화이기 이전에 스캔들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탤런트 김가연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고 임요환이 제대하자 마자 가진 인터뷰 내용과 오버랩되면서 소문이 커졌다. 임요환은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게임을 잘 이해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김가연과의 사진이 나간 이후 "조건이 딱 들어맞는다"며 열애설이 터졌다.
임요환과 김가연은 스캔들을 부정했고 일말의 사태는 '설'로 끝을 맺었다.
◆전략성은 살아 있다
임요환은 2009년 1월17일 공군 에이스와의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8-09에서 SK텔레콤 T1의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뒤 첫 경기를 치렀다. 제대하기 직전에 입대한 '새카만' 후배이자 So1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선물한 오영종과의 경기였다.
임요환은 특기인 드롭십을 선보이면서 오영종과 정면 승부를 펼쳤지만 병장 시절 실전을 자주 치르지 않았던 한계를 드러내면서 패했다.
이후 임요환은 프로리그에 한 번도 나서지 않았고 예선 통과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임요환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전략성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선수의 이미지는 굳게 지켰다. 손놀림이나 판단에서는 한창 때의 선수들보다 뒤지지만 약점을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면에서는 현역에게 절대로 뒤처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 광안리 결승전 무대에서 드러났다. 7일 화승 오즈를 4대0으로 가볍게 제압한 SK텔레콤은 8일 경기에서 애를 먹었다. 이제동을 박재혁이 잡아냈지만 고인규와 도재욱 등이 무너지면서 에이스 결정전까지 치른 것. 화승에서 이제동을 내놓을 것을 알고 있는 SK텔레콤은 정명훈으로 맞불을 놓았고 정명훈은 특이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제동을 잡아냈다.
우승 이후 인터뷰에서 정명훈은 "임요환 선배가 알려준 전략"임을 밝혔고 임요환은 "연습 경기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코칭스태프와 함께 최종전에 걸맞도록 수정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요환의 진가를 팬들이 인정했음은 당연지사다.
◆30대 프로게이머의 꿈
실제로 임요환은 현역으로서의 활동 가능성도 보여줬다. e스타즈 스타크래프트 해리티지 매치에서 전략과 전술 뿐만 아니라 생산력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약점으로 꼽혔던 부분이 보완되었다는 사실은 임요환의 기량이 서서히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뜻한다.
임요환은 얼마전 3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30대 프로게이머가 됐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팬들과 함께한 약속이자 자신에게 약속한 성공 모델을 보여주는 일뿐이다.
임요환은 군에 입대하기 전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 이런 내용을 물어온 적이 있다.
"야구 선수 이승엽 선수가 받는 연봉이 얼마나 될까요?"
"20억원은 훌쩍 넘겠죠. 일본의 야구 연봉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세니까요."
"그러면 제 목표는 이승엽 선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는 걸로 해야겠네요. e스포츠도 성장하고 저도 계속 성장해야 하니까요."
30대 프로게이머라는 목표를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걸음마다 e스포츠의 미래라는 발자국이 남는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임요환 자신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