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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최연성의 나비효과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오랜만에 e스포츠 업계가 들썩였다. 잠잠하던 스타크래프트 관련 커뮤티니는 온통 그 이야기로 도배되다 시피했다. 관계자들도 모이면 그 이야기였다. 모든 사람들의 눈은 15일 오후 1시 MBC게임이 중계한 경기로 향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집중감과 열기였다. 이 모든 사건은 e스포츠 영원한 라이벌 SK텔레콤과 KT 경기가 펼쳐지기 전 SK텔레콤 최연성 코치의 미니홈피로부터 시작됐다.

최연성 코치는 미니홈피 대문에 1위인 SK텔레콤과 그 당시 최하위였던 10위 KT의 순위표에 동그라미 친 뒤 ‘ㅋㅋㅋㅋ’를 남발하는 글을 게시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스타크래프트 관련 커뮤니티로 빠르게 번져갔고 많은 사람들은 최연성 코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현명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는 지적으로, KT 팬들은 분노했고 SK텔레콤 팬들마저도 ‘너무 심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대부분 사람들은 최연성 코치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최연성 코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바로 최연성이 원하던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사실을 접한 기자 역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재미 없고 밋밋한 e스포츠 업계를 드디어 들썩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포츠에서 대결구도가 없다면 그 스포츠는 죽은 스포츠다. 농구가 가장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연세대와 고려대라는 최고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연세대 농구팀을 좋아했던 기자는 당시 고려대를 응원한 친구와 농구 경기가 있을 때는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서로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는 비장함이 일반 팬들 사이에서도 형성됐다. 선수들은 당연히 죽어라 뛰었고 명경기가 속출했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 농구 대잔치는 현재 프로 농구를 뛰어넘을 정도의 열기를 내뿜었고 역대 최대의 흥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스포츠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SK텔레콤과 KT다. 정확히 말해야겠다. ‘있는’것이 아니라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2007년까지 두 팀의 선수들, 코칭 스태프 심지어는 팬들마저도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두 팀이 붙게 되면 정규리그 경기라 할지라도 비장했다. 팬들은 열광했고 항상 최고의 매치와 경기로 e스포츠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높은 곳에서 만난다 해도 예전만 못하다. 두 팀의 라이벌 구도는 그저 습관처럼 나오는 말뿐이었다. 어디에서도 비장함은 느껴지지 않았고 최고의 라이벌 매치라는 주목도는 예전보다 떨어지는 상황이다. e스포츠 전체를 보더라도 이것은 결코 좋지 못한 현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연성 코치가 불을 질렀다. 사실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e스포츠는 아직 세련된 스포츠가 아니다. 도발하는 방법도, 받아들이는 상대도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최연성 코치의 도발은 분명 e스포츠를 흔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 가치가 있다.

누가 조용하고 이슈 없는 스포츠에 열광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최연성 코치의 도발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SK텔레콤과 KT전을 앞두고 사람들의 눈을 경기에 쏠리게 했다. 그리고 결승전보다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결국 ‘이슈화’에 성공한 것이다.

최연성 코치의 도발은 KT가 분발하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사실 KT는 이번 시즌 최악의 경기력으로 최하위에 쳐져 있었지만 SK텔레콤전에서 보여준 KT의 집중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정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연성 코치님의 도발을 본 뒤 절대로 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최연성의 도발이 결국은 KT를 살린 것이다.

최연성 코치의 도발을 받아준 강도경 코치의 리액션도 분명이 의미가 있다. 만약 최연성 코치 혼자 북치고 장구 쳤다면 얼마나 재미 없었겠는가. 하지만 강도경 코치는 재치 있게 도토리 100개를 주는 세리머니로 최연성 코치의 도발을 맞받아쳤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렸지만 흥미로운 반응을 통해 e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경기 내적으로도 KT가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승리했고 SK텔레콤 독주 체제로 갈 것 같았던 이번 시즌은 대격변을 겪고 있다. 리그가 점점 재미 있어지고 흥미진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팬들은 KT와 SK텔레콤이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이는 기우다. 이들은 프로다. 경기 안에서는 이렇게 도발하고 서로 죽일 듯 덤비지만 사석에서 이들은 e스포츠를 이끄는 라이벌이자 동반자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아낀다. 그러니 팬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최연성 코치의 도발을 욕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세련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그가 욕먹을 각오 하고 던진 도발 하나로 e스포츠 흐름이 바뀌고 있다. KT와 SK텔레콤이 맞붙었던 프로리그는 공중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4위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광안리 결승 때도 이뤄내지 못한 이슈와 최고의 경기, 그리고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15일의 열기는 다음 날인 16일 MSL로 이어졌다. KT 이영호가 15일 프로리그 경기 이후 최연성 코치의 도발을 의식한 듯 "SK텔레콤 최호선과 16일 MSL에서 맞붙는데 '마패 관광' 당할 각오 하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사실 이영호와 최호선의 맞대결은 선수들의 이름으로만 보면 별 관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경기였지만 전날 경기로 KT와 SK텔레콤 팬들은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TV를 켤 수밖에 없었다.

16일 이영호는 거짓말처럼 최호선에게 패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이 무너진 것이다. 전날 경기에서 패한 SK텔레콤 코치진들과 선수들이 모든 기를 최호선에게 불어넣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프로리그 시너지 효과가 개인리그로 이어졌고 결국 MSL 개막전은 13~25세 남성 시청률에서 동시간대 지상파 포함 시청률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최연성의 도발 하나가 e스포츠 전체에 가져온 상승 효과는 어찌보면 긍정적인 '나비효과'는 아니었을까?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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