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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자이언트 킬링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최근 기자는 뒤늦게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들었다.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스포츠 분야를 파들어가고 있다. '원아웃', '크게 휘두르며', 'H2' 등의 야구 관련 애니메이션을 파다가 얼마 전부터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축구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해서 단 사흘 만에 시청을 완료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스트 도쿄 유니이티드(애니메이션에서는 ETU라고 부른다) 출신 선수로 활약하던 타츠미 타케시는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은 뒤 소리 소문 없이 유럽으로 건너간다. 축구의 본고장인 잉글랜드로 넘어간 타츠미는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 팀의 감독을 맡아 FA컵에서 강호를 연파한다. 공로를 인정받은 타츠미는 35세의 나이에 고국 일본으로 돌아와 하위권에 처진 ETU의 지휘봉을 잡고 강팀들을 잡아내는 특이한 팀 컬러를 형성한다.

ETU는 모래알 같은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타츠미의 지도 하에 연승, 또는 무패 행진을 달리던 팀을 맞이할 때면 뜬금 없는 승리를 쟁취한다.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타츠미와 ETU의 선수들, 서포터즈, 프런트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 간다. 리그 우승까지는 애니메이션이 나오지 않아서 결과는 모르겠지만 26편까지는 그럭저럭 5할의 승률을 맞춘 것으로 정리됐다.

얼마전 e스포츠의 대표 리그인 프로리그에서도 '자이언트 킬링'이 일어났다.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되는 위너스리그에서 13전 전승을 달리던 KT 롤스터가 에이스 이재호가 이적하면서 약체로 분류된 MBC게임 히어로에게 일격을 맞았고 프로리그 16연패, 위너스리그 15연패를 이어가던 공군 에이스가 MBC게임 히어로를 꺾으며 연패에서 탈출했다.

MBC게임은 시즌 중에 이재호를 웅진 스타즈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10-11 시즌 6명의 주전으로 팀을 이끌어 오던 상황에서 이재호를 다른 팀으로 보낸 것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돈에 눈이 멀었다느니, 성적 하락이 눈에 보듯 뻔한 상황에서 에이스를 보내는 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MBC게임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은 단결했고 누구도 이기지 못했던 KT 롤스터라는 거인을 쓰러뜨렸다.

위너스리그에서의 공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 2라운드에서 7승을 따내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고참들이 시즌 중에 전역하면서 핵심 인재가 빠져나간 공군은 알 수 없는 연패에 빠지면서 위너스리그 전패를 당했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의 패배까지 더하면 무려 16연패였다. 09-10 시즌 18연패를 재현하는 듯했다. 무기력하게 무너질 듯했던 공군은 15, 16연패 때에는 최종전까지 끌고 가면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MBC게임을 상대로 4대1로 승리하면서 연패에서 벗어났다.

이 두 팀의 공통점은 누가 봐도 약팀이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는 전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MBC게임은 10-11 시즌 내내 6명의 엔트리로 프로리그에 나서면서도 1, 2, 3라운드 내내 중위권을 지켜냈다. 4라운드 초반 부진한 상황에서 이재호까지 전력에서 빠지면서 연패가 예상됐지만 KT 롤스터를 제압하면서 여전히 가능성을 갖고 있는 팀임을 증명했다.

공군은 군인 팀이라는 특수성만으로도 하위권으로 분류된다. 한물 간 선수들이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입대하는 곳이라는 불명예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각 팀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든 선수들이 자원하면서 실력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되는 위너스리그에서는 다른 팀을 제압할 만한 에이스가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기업 게임단을 잡아내며 연패에서 벗어났다.

'자이언트 킬링'은 말 그대로 거인을 잡는 일을 뜻한다. 약팀이 리그 상위권에 올라 있는 강한 팀을 잡아 가면서 서서히 자이언트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즐기는 자는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괴짜 감독인 타츠미는 부임하자마자 구상하고 있던 컬러와 맞는 선수들로 1군을 재편성했다. 30m 달리기를 10회 이상 시킨 기록을 보면서 시작과 끝의 성적이 비슷한 선수를 1군에 올리고 잠재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상비군으로 편성하는 등 특별한 방식으로 팀을 꾸렸다. 기존 선수들과의 불화가 있기도 했지만 주전들도 승리를 통해 팀과 함께 변화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였다.

변화의 시발점은 선수들이 바뀌면서 자기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 돈을 받고 뛰는 프로의 세계이지만 개인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되고 팀이 승리하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찾아 간다.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선수들이 즐겁게 경기를 전개하자 서포터즈들도 동참하게 되고 지역 주민들도 팀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서포터즈로 동화되어 간다.

MBC게임과 공군에게 이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팀 사정이 어렵고 승리보다 패배가 많은 상황에 지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처한 상황을 즐기고 그 안에서 긍정의 힘을 뽑아낸다면 4라운드에서 보여준 '자이언트 킬링'이 일어난다. 여러분이 만든 기적은 팀을 활기차게 변화시키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나아가 e스포츠 전반에 긍정의 모멘텀을 제공한다.

'자이언트 킬링'의 마지막 회에서 감독인 타츠미는 구단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11명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리그에서 오랫동안 싸울 수가 없다. 선수단, 프런트, 서포터즈, 지역주민 등 클럽과 관계된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봐야 한다. 그게 가능해야만 팀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약팀이 강팀을 꺾는 기적이 단순히 기적에 그치지 않고 e스포츠 업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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