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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죽음의 조, 선순환의 계기되길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ABC마트 MSL 조지명식을 통해 탄생한 죽음의 조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화승 오즈 이제동과 KT 롤스터 이영호, SK텔레콤 T1 김택용에 MBC게임 히어로 염보성까지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 MSL 32강에서 이 선수들이 한 조에 속하면서 "32강에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조합"이라는 의견부터 이 조를 만들어낸 하이트 엔투스 신동원과 삼성전자 칸 차명환에 대한 비난 또는 칭찬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MSL이 이 조편성 덕에 기대를 모으겠다는 찬사부터 '택염리쌍' 가운데 두 명이 떨어져야 하니 망했다는 혹평까지 다양한 예상도 수반되고 있다.

이번 조지명식을 보면서 신동원과 차명환이 없었더라면 최악이 됐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지루했다. 1시간 가까이 투자한 입장 세리머니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세리머니를 준비해온 선수는 MBC게임 고석현, 하이트 신상문, 장윤철, 폭스 신노열 정도다. 28명의 선수는 '그냥' 입장했다.

지명하는 과정에서도 특이한 내용을 밝힌 선수도 없었다. 입장하면서 이름을 붙이는 자격을 갖고 있는 17번부터 32번까지의 선수들은 '언젠가는 내 자리가 바뀌겠지'라며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붙였다.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9번부터 16번 선수들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3번부터 8번까지의 선수들은 직접 나서기 보다는 권한이 없는 선수들에게 위임하거나 권한 행사를 포기하고 그 조에 주저 앉았다.

오후 6시부터 9시30분까지 세 시간 30분 가량 진행되는 동안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일은 고석현의 '취객 세리머니'와 공군 김경모의 '민찬기 병장 구하기'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번 시드를 받아 두 번의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삼성전자 차명환의 선택부터 장내가 들썩였다. 팀 후배 김기현이 있던 자리에 김택용을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옆 자리는 D조의 시드권자 이제동이 놓여 있었기에 '택동록'이 완성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두 번째 권한은 C조에 있던 염보성을 또 한 명의 팀 후배 유병준의 대전 상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어 1번 시드인 하이트 신동원이 삼성전자 유병준을 들어내고 KT 이영호를 앉히면서 죽음의 조가 완성됐다. 여기에 염보성을 넣느냐 정명훈을 넣느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신동원은 염보성과 김택용의 이름을 교체하면서 '택동록'이 아니라 '택호록'을 만들면서 조지명식을 마무리지었다.

차명환과 신동원의 지명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MSL이 조지명식 제도를 시행하면서 스틸 드래프트를 도입했고 1번 시드와 2번 시드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기 시작한 지 벌써 5년 가까이 된다. MSL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두 이 방식을 알고 있고 따르기로 합의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움직였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동이 속한 조에 김택용, 염보성, 이영호를 차례로 집어 넣었을 때 팬들은 동요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네 명의 선수를 응원하는 팬이 반대의 입장을 표했다. 또 MSL의 번성을 응원하는 팬들이 이런 상황을 우려했다. 다른 팬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32강에서 구현된 적이 없는 대진이기에 반겼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010년에 펼쳐진 세 번의 MSL은 이영호와 이제동이 1, 2번 시드를 장악하면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지난 피디팝 MSL에서 이영호가 32강에서 탈락했고 이제동이 4강에서 떨어지면서 가능성이 발생했다. 여기에 김택용까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면서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해 봄직한 상황이 마련됐다. 신동원과 차명환은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죽음의 조를 이끌어냈을 뿐이다.

절차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논란의 여지는 없다.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 조지명식에서 주어지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했고 제반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자기 힘으로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 만들어지는데 시행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응원하는 선수가 32강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이 낳은 심정적인 아쉬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죽음의 조를 만들어낸 신동원과 차명환에게 감정 섞인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죽음의 조를 만들려면 자기들이 속한 A, B조에서 형성할 것이지 '비겁하게' 다른 조에 몰아 넣어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재미만 보려는 속셈이라는 논리다.

돌려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는 선수들이 우승 또는 준우승하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현장에서 응원하고, 방송으로 시청하고, 뉴스를 통해 응원하자. 응원하는 선수가 최고의 자리에 서도록 파이팅을 북돋워주자. 그리고 차기 MSL 조지명식에서 신동원과 차명환이 한 조에 속하도록 조가 짜여지는 모습을 기원하자. '4월7일 조지명식에서 있던 일을 그대로 갚아주자'는 마음으로 응원하자.

신동원과 차명환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난 대회 우승, 준우승을 나눠가진 선수로서, 조지명식에서 역대 MSL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오래도록 살아남자.

체면과 책임감, 자존심을 건 경쟁을 통해 경기력은 나아질 것이고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팬들의 응원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고 선수들 사이에 스토리도 생겨날 것이다. 4월7일 신동원과 차명환이 만들어낸 죽음의 조가 ABC마트 MSL이 끝나고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때까지 회자된다면 MSL이라는 대회의 질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32강에서 떨어진 선수에게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붐이 일어날 수도 있는 계기임에는 틀림 없다.

신동원과 차명환의 시도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건전한 선순환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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