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특별했냐, 항상 열리는 개인리그 결승전 아니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 정도로 특별했던 점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기를 끝나고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2개월 가량 휴식기에 돌입한다는 것과 경기 내용이 너무나도 좋았고 선수들의 열정이 느껴졌다는 점, 아직도 e스포츠가 만들어내는 스토리에 열광하고 선수들의 경기에 환호하는 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희망을 던져준 대회였기에 특별했다.
진에어 스타리그는 우여곡절 끝에 태어났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 결승전을 2월초에 마친 온게임넷은 스타리그를 바로 이어가지 못했다. 아마추어 시장을 개척하겠다면서 마이스타리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방의 숨은 고수를 찾아다녔다. 지방 예선을 통해 찾아낸 선수들을 용산 경기장에서 토너먼트까지 치르게 했고 프로게이머와 함께 예선을 참가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2~3개월이 소요됐다. 애석하게도 마이스타리그 소속 선수는 한 명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3개월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온게임넷의 시도가 의미 없지만은 않았다. 마이스타리그를 통해 찾아낸 몇 명의 선수가 프로게임단에 입단했고 지난 드래프트를 통해 정식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었다. 숫자가 줄어가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들이 열정을 갖고 참가할 무대를 만들어줌으로써 기반이 탄탄함을 알 수 있었다.
진에어 스타리그가 진행되는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다. 2010년 숱한 이슈를 만들어냈던 대한항공 스타리그에 이어 또 다시 항공사가 후원을 시작했다는 점부터 신선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계열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항공사가 꾸준히 후원으로 나서면서 스타리그의 콘텐츠 파워를 재확인했다.
선수들의 스토리텔링 능력도 매우 좋았다. 지난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삼성전자 송병구를 완파하고 우승한 정명훈이 스타리그 2연패에 나섰다. 2001년 임요환이 2연속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테란 종족으로는 정명훈이 유일하게 도전장을 던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또 상대가 지난 시즌 정명훈이 우승할 때 제압했던 송병구와 같은 팀인 허영무라는 사실, 2위 자리에 유독 많이 앉았던 선수들간의 연이은 결승전이라는 점 등 이야기거리가 무척 많았다.
또 삼성전자 허영무가 만들어낸 특이한 스토리는 앞으로 3~4년은 더 인구에 회자될 수 있을 만한 재미와 감동을 줬다. 오프라인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지난 시즌 16강 진출자의 은퇴로 인해 만들어진 와일드 카드전을 통해 올라왔고 16강에서 2패를 당하며 탈락의 위기에 처했으나 재경기가 성사되면서 8강에 진출한 허영무는 이영호, 어윤수를 연파했고 결승전에서 지난 시즌 우승자 정명훈을 꺾으며 준우승만 차지하던 자신의 커리어에 우승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또 스타리그는 3년만에 가을 시즌에 프로토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가을의 전설'이라는 트렌드를 이어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허영무가 걸어온 역경의 역사가 '가을의 전설'로 승화되면서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를 형성됐지만 결승전 자체만으로도 초대박을 터뜨렸다. 허영무와 정명훈이 치고 받는 과정만 보면 역대 스타리그 결승전 사상 최고의 경기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을 찾은 팬들도 장면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했고 한 세트, 한 세트 흘러갈 때마다 경기를 평가하고 다음 세트에 대해 예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직 시청률이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역대 최고의 시청률이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매치업이었다.
'3년만에 성사되는 프로토스의 가을의 전설'과 '테란의 10년만의 2연속 스타리그 제패'라는 스토리가 깔려 있었지만 결승전 현장을 찾은 팬들의 열렬한 환호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소문이 돌고 있는 좋지 않은 일들을 정면돌파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정명훈과 허영무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현장을 찾은 팬들은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려 입장했고 세 시간 넘도록 진행된 결승전에 시선을 떼지 않고 관전했다.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함께 흥분하고 환호했다. e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가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대회 진행도 원활했다. 간간히 일어나던 PC 오류가 없었기에 선수들이나 팬들의 집중력이 유지될 수 있었고 초대 가수로 나온 박완규가 정명훈과 허영무의 이름을 연호하게 유도하면서 사전 분위기를 띄운 것도 이례적이었다. 하늘도 팬들과 e스포츠 관계자들의 열정에 감동했는지 경기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았고 허영무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소나기가 내리는 등 날씨까지도 도움을 줬다.
모든 요소가 맞아 떨어진 이번 진에어 스타리그는 e스포츠가 갖고 있는 저력을 재확인하는 장이었다. 좋지 않은 이슈들이 발생하면서 한국의 e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휘청이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e스포츠가 건재하고, 앞으로 더욱 흥할 콘텐츠임을 만방에 알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진에어 스타리그를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2개월 가량 휴식기에 들어가지만 e스포츠 관계자들에게는 시즌 기간보다 더욱 바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을 닫는 게임단 소속 선수들을 위한 일자리를 찾아주고 11-12 시즌에 대한 운영 방안과 비전을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한 과정이 계속되겠지만 프로리그 결승전과 스타리그 결승전을 통해 팬들이 보여준 관심과 사랑, 선수들이 갖고 있는 열정, 게임단이 보여준 팀워크 등을 영양제로 삼아 주어진 과제를 슬기롭게 헤쳐가길 바란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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