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전문 기자로서 MBC게임의 채널 전환 과정을 보면서 속이 쓰린 감정을 지울 수 없다. 2001년 geMBC 때부터 시청자의 한 명으로 재미있게 방송을 지켜봤고 기자일을 시작하면서 온게임넷과 함께 e스포츠의 발전을 이끌어온 주축이 무너진 느낌이다.
MBC게임은 e스포츠 팬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남겼다. 임요환, 김동수,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TPZ'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크래프트라는 어려운 게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자체 개인리그인 MSL은 '본좌 라인'을 탄생시키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 대회를 통해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 김택용, 이영호 등 3회 우승자들이 탄생하며 최고의 프로게이머라는 찬사를 받았고 성학승, 강민, 박태민, 조용호, 박성균, 이제동, 박찬수, 김윤환, 신동원 등이 우승자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된 팀리그나 스쿨리그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탄탄한 근간을 다지는 데 공을 세웠다. 2002년 방송 리그로 만들어진 최초의 단체전인 팀리그는 프로게임단의 기업화에 공을 세웠고 프로리그로 통합된 이후에도 위너스리그라는 리그 속의 리그 형태로 자리잡으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쿨리그는 학교 대항전으로 진행되면서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다. 이를 통해 전태양, 이경민 등이 발굴됐고 프로게임단이 팜 시스템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MBC게임은 스타크래프트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스페셜포스가 프로리그가 되기 전 꾸준히 리그를 꾸렸고 철권은 MBC게임만의 독자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으면서 e스포츠 정식 종목으로 뿌리를 내렸다. 또 겟앰프드나 리얼 사커와 같은 국산 게임 또한 MBC게임을 통해 e스포츠 리그용 게임으로서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에피소드도 수두룩하다. 2005년 해운대에서 결승전을 치렀던 우주 MSL은 태풍 속에서 진행되면서 명승부를 연출했다. 서바이버 토너먼트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에는 2개월에 한 번씩 지방 투어를 다니면서 기자들의 진을 뺐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잊고 싶은 기억도 있다. 워크래프트3 리그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 중계진 가운데 한 명이 밸런스를 맞히겠다며 유닛의 기본 공격력을 건드려 조작설이 제기되기도 했고 이영호와 이제동의 네이트 MSL 결승전은 '리쌍록'이 아니라 '정전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아름다울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는 모든 기억들이 MBC게임이 문을 닫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자는 지난 18일 '아듀, MBC게임'이라는 프로그램 녹화를 끝으로 더 이상 제작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MBC게임이 개국할 때부터 함께했던 김철민 캐스터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자와 김철민 캐스터는 쓴 웃음만 지었다. 만약 소주가 있었다면 말 한 마디 없이 서너잔을 들이킨 뒤에 이야기를 나눴을 분위기였다. 추억조차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김 캐스터의 '배신감'은 컸다.
김철민 캐스터만이 갖고 있는 배신감은 아닐 것이다. 기자이기 이전에 MBC게임을 즐겨 보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기자는 물론, 수많은 팬들에게 MBC게임의 폐국은 씁쓸함만을 남긴다.
e스포츠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케이블 게임 채널이 온게임넷만 남은 상황에서 e스포츠 팬들은 한정된 즐길 거리만을 제공받게 된다. 2개였던 게임 채널이 하나로 줄어드는 것은 팬들에게 '2-1=1' 이상의 타격으로 다가온다.
경쟁 채널이 사라지면서 온게임넷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콘텐츠 분산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도 e스포츠라는 콘텐츠의 파괴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나 남은 게임 채널이라도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도록 응원하면서 더 많은 감독과 비판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온게임넷을 통해 e스포츠의 부흥을 알려 새로운 e스포츠 채널, 게임 전문 채널이 런칭할 수 있도록.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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