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서 계속
최연성은 데뷔 때부터 파란을 몰고 왔습니다. 임요환을 스승으로 주훈 감독을 첫 사령탑으로 모셨던 그는 얼굴이 알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선수"로 지목되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데뷔 이후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연파하면서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고 7년의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박용운 감독과 함께 SK텔레콤 T1의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정명훈이라는 수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최연성의 게이머그라피를 마무리하는 4편에서는 최연성이라는 스타 플레이어, 성공한 지도자가 나오기까지 거쳐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모든 것을 알려준 임요환
최연성에게 임요환은 스승입니다. 임요환이 최연성을 발굴하는 데 클 공을 세웠고 실제로 전략에 대한 부분도 많이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연성이 임요환을 스승으로 모시는 이유는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줬기 때문입니다.
최연성은 임요환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치가 있는데 임요환은 세상이 자신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반응이 오고 저렇게 반응하면 저런 반응이 오니까 나는 이것을 활용해서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요.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자신을 알리거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연성은 임요환의 장점을 게임 안팎으로 활용합니다. 게임 안에서 최연성에게 주어진 것은 테란이라는 종족입니다. 10여 개의 건물과 20여 개에 달하는 유닛들이죠. 이를 활용해서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전략입니다. 타이밍을 재고, 테크트리를 올리고, 빈틈을 어떻게 막아내고 유닛의 이동 경로를 선정하는 다양한 일들을 구상하는 거죠. 하나의 전략을 만들 때 여러가지 변수를 설정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지요.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최연성은 인터뷰를 자주 활용했습니다. 말 한 마디에 뜻을 담았죠. 임요환이 했던 것처럼 말이죠. 임요환은 시기적절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최연성의 데뷔를 앞두고 "세상을 깜작 놀라게 만들 선수"라든지, 스타리그 본선을 눈앞에 둔 고인규에게 "(연습 때 절대로 지지 않는)넌 고인규"라든지, "상대 팀이 일반 커피라면 SK텔레콤 T1은 티오피"라든지, 스타리그 조지명식에서 후원사를 띄워주기 위해 "00은행 통장을 만들어야겠다"든지 많은 어록을 만들었습니다. 동료들의 힘을 불어 넣어 주었고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상대 팀을 비꼬고 업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들을 하는 센스를 갖췄습니다.
최연성도 이와 같은 임요환의 언변을 닮고 싶었지만 워낙 인상이 강해서인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한 이야기가 강하게 전달되면서 예의 없고, 버릇 없는 선수라는 인식을 준 적이 많은데요. 해가 지나고 커리어가 쌓이면서 최연성은 강성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캐릭터로 만들었죠. 선수 시절에는 도발적인 멘트로 상대방을 흥분하게 하는 능력을 자주 보여줬고 코치 때에는 라이벌인 KT 롤스터를 자극시키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니홈피 사진 논란인데요. KT 롤스터가 09-10 시즌 최하위까지 떨어지자 최연성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프로리그 순위표를 올리고 'ㅋㅋㅋㅋㅋ'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를 본 KT 팬들이 최연성의 미니홈피에 비난, 비판의 글을 남겼고 욕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최연성은 이 상황에 대해 "KT 롤스터가 최하위에 떨어져 있으면 안된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의 흥행을 이끌어가야 하는 팀이 꼴찌라면 리그는 흥행 참패를 맞을 수밖에 없다. 꼭 살아나라는 의미를 담은 글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성격상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남기지는 않죠. 짧고 굵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최연성은 스승인 임요환과는 다른 화법을 구사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최연성은 임요환에 대해 "내 인생이 바뀌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첫 번째 사람이며 프로 정신이 무엇인지, 경계선을 타는 방법과 세상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라이벌들
이윤열은 최연성이 동경했던 프로게이머입니다. 최연성이 아마추어 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 이윤열은 이미 각종 리그를 평정하면서 누구도 '천재'를 막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면서 최연성의 목표는 이윤열을 꺾자는 것이었죠. 우승이나 4강 같은 리그의 단계가 목표가 아니라 이윤열을 따라 잡자, 이윤열을 만나면 지지 말자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2003년 KTF EVER 프로리그에서 이윤열을 만나 승리한 최연성은 TG 삼보 MSL 본선 첫 경기를 이윤열과 치러서 패했습니다. 패자조로 내려간 최연성은 우여곡절 끝에 패자 결승에 올라왔고 이윤열을 다시 만나 3대1로 제압했습니다. 이 대회를 우승한 최연성은 바로 다음 대회인 하나포스 센게임 MSL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상대로 역전 우승을 차지합니다. 2, 3세트를 빼앗기면서 1대2로 끌려가던 최연성은 두 세트를 잡아내며 목표였던 이윤열을 제압하고 우승컵을 안습니다. 이후 국내외에서 열린 개인리그에서 최연성은 이윤열에게 한 번 패했습니다. 2006년 IEF 결승전에서 1대2로 진 것이 전부입니다.
이윤열과 비공식전까지 포함해 30여 번을 만났지만 최연성은 승률 70%를 기록했습니다. 전적으로만 따지면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연성은 이윤열을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연성이 이윤열에게 강했던 이유는 이윤열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넘고 싶은 존재, 꺾고 싶은 존재였기 때문에 이윤열과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으면 더 집중하고 더 신중하게 플레이했다는 것이 최연성의 말입니다.
이윤열과 최연성은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에는 라이벌이지만 편하게 만나면 형, 동생으로 친하게 지냅니다. 최연성이 이윤열보다 데뷔는 늦지만 나이가 많아 형 역할을 하고 있죠. 두 사람이 사석에서 만나면 최연성은 우스갯소리로 이윤열에게 '용돈'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큰 경기에서 이윤열을 많이 이기면서 연봉이 높아지고 대회 상금도 많이 타냈다는 우회적인 표현입니다. 최연성이 용돈이라고 말하면 이윤열은 "형이 쏴"라고 바로 맞받아칩니다. 그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연성의 히스토리에서 빠질 수 없는 선수가 또 한 명 있죠. 바로 저그 박성준입니다. 최연성이 저그전에서 19연승을 이어가고 있을 때 저지한 선수가 바로 박성준입니다. MSL에서 이미 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연성은 2004년 질레트 스타리그를 통해 본선에 처음 진출하면서 우승 후보로 꼽혔습니다. 첫 진출자가 우승까지 차지하는 경우를 로열로드라고 부르는데 이를 노리고 있었죠. 4강에서 박성준을 만난 최연성은 박성준의 전략적인 플레이과 공격성에 휘둘리면서 패하고 맙니다. 이전에 비공식전이지만 iTV 랭킹전 결승전에서도 패한 적이 있어 박성준은 최연성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저그로 꼽혔습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최연성에게 0대3으로 완패하면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성준은 종종 최연성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6 그랜드 파이널이 생각나네요. '아카디아2'라는 맵에서 박성준은 저글링만 뽑아서 공격을 시도했고 허를 찔린 최연성이 무너졌죠. 그리고는 MBC게임 히어로가 SK텔레콤 T1을 꺾고 그 해의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습니다.
박성준과 최연성의 라이벌 관계가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박성준이 2007년부터 1년 동안 SK텔레콤에서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MBC게임과의 계약이 불발된 뒤 웨이버 공시를 당한 박성준을 SK텔레콤이 영입하면서 두 선수의 대결을 볼 일이 사라졌죠.
◆마재윤에 대한 기억
최연성은 마재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최연성 자신이 경험한 과정을 비슷하게 겪은 선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3월 슈퍼파이트라는 대회에서 최연성은 마재윤과 경기를 치르게 됐습니다. 서로 팀이 달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던 최연성은 대기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임이최마'라 불리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본좌 라인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개인리그에서 연속 우승을 하면서 많은 연봉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2003년과 2004년 각종 대회를 싹쓸이하고 나서 2005년 최연성이 가졌던 생각과 2005년과 2006년을 휩쓸고 난 뒤의 마재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을 그 때 느꼈답니다. 좋아서 시작한 게임이지만 직업이 되고 다람쥐 챗바퀴 도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열정과 흥미, 재미가 떨어졌음을 확인했습니다.
2005년 최연성은 랜덤 선언을 하면서 여러 종족으로 대회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랜덤으로 대회를 준비하면서 죽어 있던 열정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을 만난 최연성은 종족 전환을 고민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자신은 실패했지만 마재윤이 갖고 있는 게임 센스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이야기했고 마재윤은 곰TV MSL 시즌2 32강 1차전에서 박태민을 상대로 테란을 선택해서 공식전을 치른 바 있습니다. 물론 패했지만 최연성의 조언을 마재윤이 받아 들였던거죠.
이후 시간이 흘렀고 최연성은 SK텔레콤의 코치로, 마재윤은 CJ의 선수로 활동하면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불법 베팅 사이트를 통한 승부 조작 사건에 마재윤이 연루됐음이 밝혀지면서 마재윤에 대한 최연성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e스포츠계를 이끌어갈 재목이라 생각했기에 재미를 찾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고 공감까지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업계에 해악을 입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또 집행 유예 기간에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후회나 반성, 자숙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고 괘씸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최연성은 아쉬운 선수라고 표현했습니다. e스포츠가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선수 한 명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점으로 남으면서 3~4년 동안 만들어 온 스토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김택용-정명훈을 배워라
2008년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최연성은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습니다. 2008년 말 선수 복귀를 시도하며 플레잉 코치 역할을 맡은 적도 있지만 직접 뛰는 것보다는 선수를 육성하는 것에 치중하기 위해 2009년에 다시 코치직만 맡았습니다.
최연성이 코치로 돌아서자 SK텔레콤도 안정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박용운 감독이 부임했고 김택용을 MBC게임 히어로로부터 영입하면서 라인업을 탄탄히 갖췄습니다. 당대 최고의 프로토스였던 김택용과 신인의 티를 벗어내고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던 정명훈은 최연성의 첫 타깃이었죠.
박용운 감독의 부임 이후 종족별 코치제를 완성시키면서 최연성은 테란 선수들을 주로 관리했습니다. 각자 독립된 파트가 존재했지만 같은 팀이기에 김택용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던 최 코치는 세부적인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스타 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라서는 김택용에게 화두만 던졌습니다. 단순히 게임이 좋아서 프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직업밖에 되지 않고 e스포츠 전반에 대한 책임 의식까지 갖게 된다면 슈퍼스타, 레전드까지 성장할 수 있다면서 독려했다고 합니다.
팀의 에이스를 넘어 e스포츠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있는 단계를 밟고 있는 김택용은 최 코치의 말을 이해했고 정상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정명훈과 함께 가장 많은 연습을 소화하는 성실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도자 최연성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선수는 정명훈입니다. 3편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정명훈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최 코치의 집중 트레이닝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연성이 지켜본 정명훈은 노력의 결정체죠. 기본기가 튼실하고 성실한 데다 마인드가 열려 있다고 합니다. 일부 프로게이머들은 코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스타일만 고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명훈은 자기 스타일과 코치들의 조언을 융합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최연성의 말입니다. 그리고 김택용과 마찬가지로 가장 일찍 연습실에 나오고 가장 늦게 연습실에서 나가는 한 명입니다.
◆GSL 우승자 문성원도 수제자
최연성이 눈 여겨본 테란 가운데 정명훈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선수는 현재 스타크래프트2 리그에서 임요환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문성원입니다.
2008년 하반기 드래프트를 통해 SK텔레콤 T1에 입단한 문성원은 최연성의 총애를 받는 연습생이었습니다. 정명훈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최연성이 꼽았을 정도로 게임 센스가 좋았고 기본기가 잡혀 있었다고 평가했죠.
그러나 문성원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일찌감치 군에 입대한다며 팀을 나갔습니다. 최연성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이기에 막을 수 없었다네요. 이후 군대갈 준비를 하던 문성원은 부상을 당하면서 입대일이 늦춰졌고 때마침 임요환이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면서 같은 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연성은 문성원이 스타크래프트2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답니다. 기본기가 좋은 데가 게임을 읽는 능력이 좋기에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실제로 문성원은 2011년 MLG 콜롬버스에서 우승했고 국내 대회에서는 소니에릭슨 GSL 옥토버에서 정종현을 제압하고 우승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최연성의 4회에 걸쳐 연재된 게이머그라피를 마칩니다. 다음 편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SK텔레콤과 함께하는 e스포츠 세상(www.sktele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