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트리그 해설위원 정 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5차 리그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네요. 특히 흔들리는 빅3와 떠오르는 문명주, 불멸의 뚝심 박현호 등 많은 선수들이 새로운 역사와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 승자조에서도 결과적으로는 빅3가 무난히 그랜드파이널에 직행했지만, 과정을 보면 그랜드파이널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다시 한번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주 패자부활전에서 결승전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궁금해지네요.
어떤 일이든지 '기대 이상'을 해 내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잘 할수록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카트라이더 리그에는 지금까지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준 선수가 있습니다. 문호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천재성과 말도 안 되는 기복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선수, 바로 '오존 게이밍의 신성' 김승태입니다.
◆온라인에서도 감추지 못한 천재성
2011년 팀 스피릿 리그가 끝난 후, 오존 게이밍(당시 AN게이밍) 팀에서는 팀 전력을 높이기 위한 인재 확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팀의 에이스 유영혁이 꾸준한 입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사실상 팀을 지탱하고 있는 박인재, 김은일, 조성제, 박현호 등의 선수가 1~2년 내에 군 입대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었죠.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이탈하더라도 팀 전력이 붕괴되지 않을 만큼 실력 있는 어린 신예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안한샘 감독과 박인재 선수는 기존 선수들보다는 실력 있는 뉴페이스를 발굴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스카우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박인재의 눈에 띈 선수가 바로 김승태입니다.
오래 경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인재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 주행능력을 보유한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영입을 결정했다고 하네요. 현재 리그에서 김승태가 보여주는 과감한 인코스 주행과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천재성을 생각하면, 단번에 그의 실력을 알아 본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기대 이상'을 해 내는 선수
사실 김승태는 연습할 때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영입 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과 팀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금 실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경험이라도 쌓게 하자는 생각으로 14차 리그에 처음 참가시키게 됩니다. 결과는 순탄하게 본선 진출. 처음 리그에 나온 선수라면 본선 진출만으로도 대단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죠.
본선이 시작되고 조별예선에서, 김승태는 전대웅과 같은 조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결과는 조 5위로 탈락. 그런데 이 선수의 예선 포인트를 살펴보니, 1차 예선과 2차 예선이 거의 4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1차 예선에서 긴장감과 적응 실패로 8포인트밖에 획득하지 못한 데 비해, 2차 예선에는 37포인트나 획득한 것이죠. 또 전대웅이 3개의 트랙에서 1위를 기록하는 동안, 김승태는 2개의 트랙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조에서 경기를 치른 전대웅, 문명주 등에 밀려 큰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점점 무대에 적응하는 모습만으로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였습니다.
이번 15차 리그에서도 팀원들은 김승태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워낙 연습경기에서 눈에 띄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리그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주행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 예선에서 안정적으로 포인트를 획득하며 점수를 쌓더니, 2차 예선에서도 초반 5경기를 4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일찌감치 상위 라운드 진출을 결정지었습니다. 고작 리그에 두 번째 나온 16살 소년의 성적치고는 분명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패자조에서의 성적.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태는 4경기만에 30포인트를 돌파하며 전반을 끝내버립니다. 비록 후반부에 조금 힘이 빠져 10포인트를 남겨놓고 6경기나 더 하긴 했지만, 노진철, 박현호, 이중대 등을 압도적인 성적으로 따돌리며 패자조 1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 6경기 동안 10포인트를 기록했다는 것은 뒷심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보면 6경기를 헤매는 동안 아무도 김승태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뛰어난 천재성…심한 기복이 단점
김승태는 경기가 시작된 이후 5경기 정도는 정말 잘 달립니다. 빅3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죠. 이 무시무시한 초반 기세는 그의 주행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몸싸움 도중 조금만 실수하면 순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는 순간에도 과감하게 인코스로 진입하고, 드리프트 도중의 몸싸움도 피하지 않을 정도로 패기가 넘칩니다. 저 역시 이번 리그 경기들을 중계하면서, 작년 이맘때쯤 유영혁이 보여줬던 과감하면서도 깔끔한 주행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천재성 덕분에 관계자들 모두가 김승태를 차세대 스타로 점칠 정도니까요.
◇오존게이밍 김승태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기복과 단단하지 못한 정신력에서 드러났습니다. 사실 5경기 정도를 연속으로 3등 안에 드는 주행이라면 나머지 경기들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한번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회복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패자조에서 보여줬던 기복에 대해 질문했더니 “같은 팀 형들이 4위 싸움을 하고 있어서 심리적으로 부담이 됐다”고 고백하더군요. 김승태가 진정한 '카트리그의 신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오존 게이밍의 '브레인'
꽤 오랜 시간 김승태와 얘기를 나누며 제가 느꼈던 것은, '참 머리가 좋은 선수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놀랐던 부분은, 신예답지 않은 분석력과 자신의 단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 김승태는 이미 리그 트랙들과 바디들에 대해 정확한 분석을 내린 상황이고, 구간별 전략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구상을 마친 상태입니다.
S2로 채널로 넘어오면서 바이크보다는 4륜이 유리한 트랙의 비중이 훨씬 높아진 것이 사실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확히 짚어 냈습니다. 현재 김승태는 흑룡-플라즈마EXT-헬로키티-윈드엣지 네 종류를 사용하고 있는데, 다시 고르게 된다면 과감하게 바이크 하나를 포기하고 블리츠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바이크가 크게 활약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판단입니다.
특히 김승태가 설명한 흑룡과 블리츠에 대한 생각에서는 저도 배울 점이 많았네요. 흑룡이 대체적으로 몸싸움이 좋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리그에서는 더 각광받고 있지만, 김승태는 해적 로비절벽의 전투(R)와 브라질 서킷에서는 블리츠가 조금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브라질 서킷의 경우 두더지 라인까지는 순위가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부스터를 여유있게 모으면서 사고를 피하게 되는데, 코너 감속에서 더 유리한 블리츠가 역전에 더 쉽다는 것이죠. 이번 주 경기에서 흑룡 대 블리츠의 대결이 펼쳐진다면, 선수들의 부스터 상황과 역전 구간을 주의깊게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김승태는 초반 스타트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직진 부스터를 사용하기보다는 선수들이 몰리는 구간을 피해 부스터를 사용하고, 초반부터 1위로 치고 나가는 작전을 선호하는데요.
사실상 지금까지의 경기에서 역전극보다는 1위 수성이 더 많이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역시 김승태에게는 초반 올인 작전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사상 초유의 각축전이 될 '패자부활전'
이번 패자부활전 멤버는 그 어느때보다 화려합니다. '악동' 박인재, '추격자' 장진형, '최강의 쌍둥이' 이중대와 이중선, '부활의 아이콘' 박현호 등 언제든 입상까지 노릴 수 있는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 이 경험 많은 실력자들 때문에 김승태 역시 조금은 긴장된 모습입니다.
특히 패자부활전에 오존 게이밍 선수들이 4명이나 속해 있기 때문에, 4위 자리를 노리고 '팀킬'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꽤 높습니다. 김승태에게 만약 팀 동료들과 진출을 놓고 다투거나, 트랙 선정에서 바디가 꼬이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니 “저부터 살아야죠”라고 쿨하게 대답하네요.
박인재와 장진형, 박현호는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치게 생겼습니다.
지난 주 방송에서 제가 약간의 과장을 보태 “20경기 갈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었는데, 20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15경기 정도는 무난히 걸릴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만큼 서로의 실력 차이가 별로 없는데다 경기 자체가 언제나 진흙탕 싸움이 되는 '패자부활전'이기 때문이죠. 박인재나 장진형이 초반에 많은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거나, 박종근과 박정렬이 오랜 침묵을 깨고 질주를 시작하게 된다면 더욱 볼만한 경기가 펼쳐지겠네요.
어떤 선수가 올라가게 될지는 전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패자부활전이 절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김승태가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딱 두가지. '초반 러쉬'와 '기복 줄이기'. 과연 쟁쟁한 실력자들 틈에서 신인의 패기를 다시한번 보여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새로운 세대를 열 '신성'
김승태는 충남 온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회가 있는 목요일은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출전하는 상황인데요. 온양에서 서울을 오가는 것만도 힘이 들텐데, 학교 외에도 하루에 5시간씩 학원을 다니고 카트 연습도 병행하고 있는 부지런한 선수입니다. 그러면서도 학교 성적과 카트 성적 모두 상위권이라고 하네요.
아직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김승태는 천부적인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선수입니다.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군 입대를 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문호준, 유영혁, 문명주, 김승태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겠죠. 그때가 되면 지금의 빅3를 능가할 최고의 선수가 되어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차근차근 경험과 자신감을 쌓고, 꾸준한 연습으로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김승태. 오늘의 김승태보다 내일의 김승태가 더욱 기대됩니다.
온게임넷 정준 해설 위원
정리=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