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트라이더 리그 해설위원 정준입니다.
15차 리그도 이제 어느덧 마지막 그랜드파이널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S2로의 변화, 흔들리는 ‘빅3’, 레전드의 귀환, 그리고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까지 이번 15차 리그는 지금껏 치러졌던 그 어떤 리그보다 볼거리가 많고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리그가 시작되면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선수들은 또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겠지요.
한 시즌 동안 카트라이더(이하 카트) 팬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애정, 응원에 감사 드리면서 오늘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리그 동안 벌써 8명의 선수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렸네요. 우연의 일치인지, 경기가 있는 날 스카우팅 리포트를 썼던 선수들이 모두 경기력이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근거 없는 뿌듯함에 혼자 기뻐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조 1위를 달성하거나, 대 역전극을 이뤄낸 선수들이 그들이었죠. 항상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꾸준한 성적을 보여줬음에도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는 아주 재미있는 선수를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소리 없이 강한, '정열맨' 박정렬 선수입니다.
◆화려한 등장, 아쉬운 성적
박정렬 선수는 12차 리그에 첫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조별 예선과 패자조, 패자부활전을 거쳐 데뷔와 동시에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었죠. 비록 그랜드파이널에서 최하위의 성적으로 리그를 마감했지만, 문호준, 유영혁, 전대웅, 김택환, 박인재 등 스타급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던 그의 주행은 신인 중에서도 돋보였습니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몸싸움 때문에, 빅3마저도 박정렬과의 근접전은 피할 정도였죠.
박정렬은 상당히 유동적인 빌드를 운용하는 선수입니다. 사고를 피하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고, 그때문에 무리한 인코스 진입보다는 안전한 아웃코스를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센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타임어택에서도 최고 기록에 집착하기보다는 사고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하면서 가장 안전한 라인을 찾아갑니다.
12차 리그의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13차와 14차에서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간신히 조별예선을 통과해서 패자조-탈락의 순서를 밟기 일쑤였으니까요. 중요한 순간마다,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이기 때문에 한번 위기에 몰리면 극복이 어려운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번 리그에서도 D조 2위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승자조에서 8위, 패자부활전에서 4등으로 턱걸이 통과하며 아직까지는 큰 관심을 못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승자조 전반전 종료 시점까지는 누적 3위를 기록 중이었는데, 휴식 이후 페이스가 흔들려 8위까지 떨어진 장면은 본인도 크게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박정렬이 이번 리그에서 3위 이상의 좋은 성적을 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안정감과 긴장해소가 첫 번째 과제겠네요.
◆'힐러' 박정렬
사실 그동안 개인 리그에서 박정렬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조 1위를 달성하거나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사건도 일으키지 못했죠. 본인 역시 경험이 쌓일수록 떨어지는 자신의 존재감에 걱정을 표할 정도니까요. 오히려 박정렬의 진가는 팀전과 이벤트전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팀전으로 치뤄졌던 '카트라이더 팀 스피릿'에서 전대웅, 강진우, 조성제와 'First'라는 팀을 이뤄 준우승까지 해 냈으니까요.
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심은 최강의 투 톱 라인인 전대웅-강진우에 맞춰져 있었지만, 사실 이 강력한 두 명의 멤버를 제대로 서포트하며 팀워크를 다졌던 것은 박정렬의 공이 큽니다. 강진우나 전대웅 같은 최강레벨의 선수들은 그들만의 프라이드와 고집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팀워크를 다지는 과정에서 붙임성 좋고 부드러운 박정렬만의 친화력이 플러스 요소로 작용했죠.
◇'정렬맨' 박정렬
두 팀으로 나뉘어 서바이벌 매치를 펼쳤던 '2011 이벤트 매치'에서도 박정렬은 완벽한 팀플레이로 스피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대웅과 문호준을 각각 서포트 하면서 상대 팀 선수들을 블로킹하고, 특히 순위가 떨어지는 선수를 파악하면서 어느새 미들 라인을 휘어잡았던 박정렬. 경기력 뿐만 아니라 경기 전과 후에도 밝은 웃음으로 팀원들을 격려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결국 이 승부에서 박정렬이 속한 '8WD' 팀은 전원이 생존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파티 플레이'를 예로 설명해 볼까요. 문호준이라는 탱커와 전대웅이라는 딜러가 아무리 방어력 좋고 데미지 딜링을 쭉쭉 뽑아도, 힐이나 버프 없이는 1분도 못 버팁니다. 전멸한 파티는 서로를 탓하면서 금세 와해되겠죠. 그런데 이 '무식한(?)' 파티에 박정렬이라는 힐러가 들어갑니다. 이리저리 힐 주고 버프 주고, 인간성까지 좋은 힐러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하겠죠.
박정렬은 이런 '힐러'에 가까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벤트 매치가 끝난 후 상대 팀장인 김대겸 해설위원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문호준 전대웅 없이는 이겨도 박정렬 안기준 없이는 졌겠다.”
◆'사륜'에 빠지다
이번 그랜드파이널 멤버들의 카트 바디 상황을 체크하다, 아주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7명의 선수가 모두 2바이크-2사륜 체제인 데 반해, 박정렬 혼자만 3대의 4륜 카트를 타는 것인데요. 그 중 한대인 세이버 z7은 32명의 본선 진출자 중 박정렬만이 유일하게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몸싸움에 자신이 있다 보니, 바이크 트랙에서 세이버를 활용하는 작전을 생각해 낸 것이죠. 세이버 z7의 경우 HT급 바디에 비해 속도와 부스터 성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몸싸움이 좋고 바이크보다 가속이 뛰어난 장점이 있습니다.
박정렬이 바이크를 반드시 타야 하는 트랙은 '대저택 은밀한 지하실'과 '광산 꼬불꼬불 다운힐'. 만약 이 두 개의 트랙이 연속으로 나온다면? 분명히 바디 순서가 꼬이게 되겠죠.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니 두 개의 트랙이 연속으로 선택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대저택 은밀한 지하실'의 경우 선수들이 바이크를 먼저 소모하기 위해 5경기 이전에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광산 꼬불꼬불 다운힐'은 변수가 많다 보니 최대한 나중에 선택하니까요. 보통 9,10경기에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박정렬의 바디 순서가 꼬여버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박정렬은 HT급 바디의 뛰어난 성능에 매료되어, 이번 리그에서 흑룡 HT와 블리츠 HT 두 종류를 모두 들고 나왔습니다. 4륜 트랙이 연속으로 나와도 HT 바디를 탈 수 있고, 대저택과 광산에서 나머지 두 개의 바디를 소모하면 되기 때문에 HT 주력의 경기 운영이 가능합니다. 물론 첫 경기에는 가장 무난한 흑룡 HT를 타게 되겠네요. 강화는 윈드엣지와 세이버에 C타입, HT에는 E타입을 적용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랜드파이널 진출자 중 박정렬의 아군은 없다는 점. 오존게이밍이 2명, 트리플퍼펙트가 3명 진출했기 때문에 팀원들의 바디순서와 트랙선정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지만, 박정렬은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다른 선수들이 연속으로 바이크 트랙을 선택해버리면 박정렬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일 테니까요.
◆남들은 미친 존재감, 나는 미천한 존재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리그에서 활약했음에도 박정렬의 존재감은 이상하리만큼 떨어집니다. 박정렬과 비슷한 성적을 냈던 박현호, 조성제에 비한다면 의아할 정도의 존재감이죠. 그렇다고 몸싸움을 피해 조신한 소녀 레이싱을 펼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몸싸움과 거친 주행을 선호하는 박정렬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명료합니다. '아직 기회가 안 왔을 뿐'. '뚝심'의 박현호도, '동방명주' 문명주도 이번 리그에서야 자신들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박정렬에게는 그랜드 파이널이라는 최고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인 역시 이번 리그 가시적인 목표는 입상이지만, 그랜드파이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폭발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경기력 뿐만 아니라 등장부터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끌 만한 충격적인 계획을 구상 중이라네요. 과연 얼마나 대단한 '비주얼 쇼크'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이 기다려집니다.
빅3, 최강의 쌍둥이, 돌아온 레전드, 동방명주와 치열한 레이싱을 펼칠 박정렬의 한판 승부. '정열맨'에게 쏟아질 많은 응원과 박수를 기대하겠습니다.
온게임넷 정준 해설 위원
정리=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