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된 것은 주초에 시작했던 '프로리그 위기' 기획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예고했던 기사를 끝까지 출고하지 못하게된 점, 독자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기획 중단을 결정하게 된 것은 데일리e스포츠 기획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의도와 달리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자들은 이번 기획을 통해 '프로리그 위기'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으나 이해 당사자인 한국e스포츠협회는 이를 다르게 이해한 듯합니다. 협회는 3월12일자 반론보도를 통해 우리 매체가 진실을 왜곡하고 업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위기'라는 메시지를 들으려하기보다 몇몇 숫자에 대한 해석이 협회 입장과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대응에, 더이상 기획을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편집국장으로서 기획을 중단하는 것은 무엇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데일리e스포츠 또한 업계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프로리그의 위상을 지키려 애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번 기획을 진행하기 한달전 데일리e스포츠는 신임회장으로 취임한 전병헌 의원실을 방문해 협회와 블리자드의 협상이 프로리그의 위상에 맞지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만해도 의원실은 협상 내용의 중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리그의 미래가 걸린 협상이었음에도, 게임단을 운영하고 있는 협회 이사사들과 전략위원회 맴버들은 무슨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지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문제제기 직후 상황을 인지한 의원실은 블리자드코리아 대표를 국회로 불러 좀더 투자할 것을 종용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습니다. 물론 협회장 주도로 진행된 재협상이 얼마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블리자드와 '비밀유지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과거 블리자드와 저작권 협상을 벌이던 당시에도 협회는 비밀유지계약을 맺었지만, 당시 협회는 이사사들과 협상 내용을 공유하며 협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략위원회' 의견에 따라 협상에 나섰습니다. 기사화만 되지 않았을 뿐, 협회 사무국과 소속 게임단 모두가 함께 협상에 나섰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엔 무슨일인지 협회 사무국이 알아서 협상을 하고 이사사들과 전략위원회에는 결과만 전달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진 협상 내용 뿐만 아리고 과정까지도, 프로리그의 위상에 걸맞는 결과로 받아들이기엔 힘들다고 판단했기에 공론화를 고민했습니다.
3월 초에도 우리는 전병헌 회장과의 저녁 자리에서 협회와 프로리그의 위상에 대한 몇몇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근래 들어 e스포츠 시장에 기업들의 참여가 줄면서 종목사들이 리그를 주도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 위상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씀도 전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니 협회와 프로리그에 대한 데일리e스포츠의 관심과 기우가 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열심히 경기기사만 쓰면 될 일을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취재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 e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인프라를 '프로게이머'라고 알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발굴 육성하는 기업과 후원사가 필요하며 기업과 후원사들은 안정적인 투자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프로리그와 같은 단체전 성격의 리그가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협회와 프로리그의 성장을 위해 매체의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과거 블리자드-그래텍과의 저작권 분쟁에서도 프로리그의 위상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협회, 온게임넷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며 앞장서서 대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e스포츠 팬들로부터 협회를 두둔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감수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지금은 업계 갈등을 유발한다는 오욕을 받고 있지만 현장을 지키는 우리 기자들 모두 각 사업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블리자드나 라이엇게임즈는 자사 입장에 걸맞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 온게임넷 역시 더 이상 스타리그 후원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 협회 사무국 또한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까지.
다들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최선을 다한 것이니, 국으로 조용히 있어야 할까요? 지금의 결정이 향후 시장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어떤 일로 확대될 수 있을지,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기획기사가 나간 이후 협회의 주장을 들어보니 알려진 것과 달리 많은 지원을 받아 냈다고 합니다. 블리자드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프로리그도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프로리그가 위기가 아니니 우려도, 문제제기도 필요 없는, 쓸데 없는 기우라는 것이겠지요.
잘 알았습니다. 이제와 이들에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고 상황을 인지하라 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비판과 문제제기의 목소리를 귀담지 않으려는 협회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부끄럽고 안타깝지만 데일리e스포츠는 이번 기획을 중단하면서, 오랫동안 협회에 가져왔던 관심과 기대도 함께 접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이런 결정을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없지 않지만, 앞으로는 e스포츠 전문매체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데일리e스포츠를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택수 편집국장 libero@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