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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레전드 파워를 키우자

[기자석] 레전드 파워를 키우자
미국은 프로 스포츠의 본고장이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미국에서 열리는 몇몇 프로 스포츠는 전세계 팬들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실시간으로 전파를 탄다. 미식축구리그의 결승전인 슈퍼볼 행사에 TV 광고를 하나 넣으려면 수천억원을 들여야 한다는 기사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다.

미국이 프로 스포츠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권위를 얻고 천문학적인 마케팅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리그에 대한 권위를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놓아 경쟁을 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월급을 주는 것만으로는 세계 최고의 프로 스포츠를 운영한다고 볼 수 없다. 누구나 뛰고 싶은 리그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스타 플레이어들을 탄생시키고 새로 유입된 선수들에게 레전드가 될 수 있다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한국도 세계 최고의 유사 스포츠 콘텐츠를 갖고 있다.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주장했을 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콘텐츠가 바로 e스포츠다.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10여년 동안 최강국의 자리를 유지했고 한국의 리그에서 탄생한 우승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타크래프트2가 도입된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마다 한국 선수들은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월드 챔피언십의 각 지역별 결승전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다른 종목이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또한 한국 지역은 게임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 1일 아이템베이 소닉 스타리그의 결승전에 스타1 시대의 인기 플레이어였던 홍진호와 박정석이 초대됐다. 레전드 매치라는 이름의 이벤트로 진행된 경기에서 홍진호와 박정석의 인기는 여전했다. 전성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에 팬들은 환호성을 보냈고 경기 안에서 나누는 채팅 한 줄, 유닛 움직임에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경기를 마친 이후에는 팬들의 사인 공세와 사진 요청에 일일이 응하는 모습도 프로다웠다.

홍진호와 박정석이 스타 플레이어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력과 매너라는 개인적인 요소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한창 인기를 얻었던 시절, 두 선수가 속한 게임단은 다양한 이벤트를 펼쳐 팬들과의 접점을 늘렸다. 또 방송이나 인쇄매체들도 기사들을 쏟아내며 대중들에게 이들을 알렸다. 단지 경기 기사 뿐만 아니라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까지 기사로 쏟아져 나오면서 팬들과의 친화도를 높였다. 전성기를 지난 이후에도 홍진호와 박정석은 인기를 이어갔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한국이 e스포츠의 강국이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체계적인 선수 관리 시스템이 주효했다. 기업이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면서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게임 실력을 키우는 데만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또 다양한 리그가 상시적으로 열리면서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방송 콘텐츠와 전문 매체들까지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수들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e스포츠 스타 플레이어들을 여럿 탄생시켰다. e스포츠를 처음 알리는데 1등 공신이 된 '황제' 임요환을 비롯, '폭풍' 홍진호, '영웅' 박정석, '천재' 이윤열 등은 4대천왕이라 불리면서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다. 그 뒤를 이어 '택뱅리쌍'이 만들어지면서 e스포츠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의 인기가 하락세를 걸으면서 스타 플레이어들의 인기 또한 하향세를 걸었고 뒤를 이을 스타들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초창기보다 더 많은 기업들이 e스포츠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향후 스타크래프트2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통해 한국의 e스포츠 인기를 이어갈 홍진호, 박정석과 같은 레전드들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력 좋은 선수를 키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택뱅리쌍 이후로 무려 5년 동안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증거다. 프로게이머가 게임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 경기가 많아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편협한 선수 보호, 이긴 날에만 시행하는 팬 서비스 등은 팬들을 늘리고 인기를 얻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게임단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적극적인 선수 알리기 작업, 스타가 되기 위한 선수 개개인의 프로로서의 마인드, 방송이나 매체 등을 통한 팬들과의 교감 등 삼박자가 맞아야만 레전드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레전드가 배출되지 않는 프로 스포츠 종목은 하향세를 맞이하며 사라진다.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레전드는 후배들에게 꿈을 제공하고 팬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한다. 꿈과 추억이 바로 레전드 파워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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