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게 되자 1년 전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에서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로 바뀌던 격변기가 떠오르더군요. 이 때도 선수들의 혼란은 지금 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스타2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선수들은 프로게이머를 그만 뒀죠.
팬들에게 아쉬움을 크게 남겼던 선수들은 CJ 엔투스 삼총사였습니다. CJ의 귀염둥이이지만 실상은 최고령에 주장으로 통했던 신상문과 여성 팬의 혼을 사로잡는 볼살을 가졌지만 경기력으로는 멘탈을 무너뜨리는 실력을 보여줬던 이경민, 그리고 훤칠한 키, 약간 허술한 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윤철까지 연달아 은퇴를 선언하며 CJ 팬들을 패닉으로 몰고 갔었죠.
1년 남짓 흐른 지금 선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10대와 20대를 승부의 세계에서 살았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은퇴 후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수들은 의외로 금방 사회에 적응했습니다.
◆신상문 "구두 박사라 불러주세요"
신상문은 e스포츠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선수였습니다. 인터뷰도 성실하게 임했고 사진을 찍을 때도 최대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무리하게 귀여운 표정을 요구해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웃어주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프로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연습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했습니다. 게임 실력은 타고 나는 것이라며 연습을 게을리하던 일부 선수들과 달리 연습 시간에는 한눈을 팔지 않았죠. 물 마시러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선수들의 증언이 있을 정도로 신상문은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였습니다.
신상문이 CJ에서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는 스타크래프트2에 대한 열정과 흥미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테란에서 프로토스로 종족을 바꾸면서 애정을 가져보려 했던 신상문은 최선을 다할 마음이 없어졌을 때 은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고 하네요.
고향인 부산에 내려간 신상문은 가업을 물려 받기 위해 구두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동료들이 "신상문은 취미로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던 것이 생각 나네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네요.
얼마 전 신상문은 장윤철이 일하는 커피숍에 놀러 왔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잘 웃고 여전히 긍정적인 신상문은 조만간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라네요. 신상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미소천사' 이경민 "필승!"
팬들에게도 관계자들에게도 이경민은 '미소천사'라고 불렸습니다. 20대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은 아이 같은 순수함이 트레이드 마크였던이경민은 천진난만한 미소로 많은 사람들을 녹여버렸습니다. 이경민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자도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그런 이경민에게도 스타크래프트2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CJ 엔투스가 프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결승전에서 이경민이 1승을 따내던 바로 그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경민은 두 배의 충격을 견뎌야 했습니다. 평소에 워낙 긍정적이고 쾌활하던 이경민이었기에 그가 겪어야 했던 아픔은 두 배, 세 배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경민은 이후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네요. 온라인에서 그의 사진을 본 한 선수는 "여전히 귀엽지만 약간 까맣게 탔더라"며 근황을 전해줬습니다. 주위마저 환하게 만드는 그의 미소는 아직도 그대로인 모양이었습니다.
얼마 전 장윤철과 통화한 이경민의 목소리는 여전했다고 합니다. 군대에 입대한 후에는 조금 변하지 않았을까 예상했던 장윤철은 순수하고 쾌활한 이경민의 여전한 성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네요.
씩씩하게 군 생활 잘 하고 있는 이경민. 제대하면 가장 먼저 데일리e스포츠가 찾아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변장' 장윤철의 수능 도전기
화려한 컨트롤과 견제로 주목을 받았던 장윤철이지만 스타크래프트2와는 잘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종족까지 테란으로 바꿨지만 장윤철은 스타크래프트2의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세세한 컨트롤을 좋아했던 장윤철은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하네요.
은퇴를 결심했지만 장윤철은 e스포츠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막상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 나니 생각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네요.
'대학생으로 변신을 앞둔 장윤철(이하 대변장)'은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커피숍을 그만 두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장윤철은 은퇴 후 대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는데요. 게임을 그만두자마자 장윤철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바리스타가 왠지 해보고 싶었다고 하네요.
장윤철은 생각보다 성실하게 일했나 봅니다. 커피숍 사장님이나 직원들이 그가 그만둘 때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장윤철은 원 없이 바리스타를 경험한 뒤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대학생 신분으로 인터뷰를 하자며 환하게 웃던 장윤철.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장윤철이 내년에 캠퍼스를 누비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