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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승부에 대한 예의

지난 23일 판도라TV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윈터 C조 경기에서 다크 선수들이 보여준 와드 심기. LOL에서 전형적인 트롤 플레이로 꼽힌다(사진=온게임넷 방송화면 캡처).
지난 23일 판도라TV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윈터 C조 경기에서 다크 선수들이 보여준 와드 심기. LOL에서 전형적인 트롤 플레이로 꼽힌다(사진=온게임넷 방송화면 캡처).
'우리 모두가 당했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 판도라TV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윈터 2013-14 16강 C조 삼성 갤럭시 오존과 아마추어팀 다크의 경기를 지켜본 한 e스포츠 관계자의 말이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삼성 오존과의 1세트에서 패한 다크는 2세트에 들어가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챔피언 금지, 선택 과정을 보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조합을 택했다.

챔피언 금지 과정에서 갱플랭크, 갈리오, 가렌 등 가나다 순서로 앞쪽에 배치된 챔피언 세 개를 금지했다. 선택 과정에서는 스카너, 아무무, 마오카이, 쉔, 트런들 등 정글러 전용 챔피언을 선택했다. 소환사 주문 또한 세 명이 강타를, 두 명이 유체화를 택했다.

다크가 특이한 챔피언을 고르면서 팬들의 기대가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조금이라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챔피언 조합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공식 대회를 준비하면서 아마추어 팀이 새로운 뭔가를 들고 나온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렇지만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데에는 불과 9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크는 이길 생각이 없었다. 삼성 오존의 기지 깊숙히 파고 든 다크는 상대에게 발각됐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걸었다. 다크 선수들이 들고 있던 소환사 주문 가운데 상대 챔피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싸웠고 3킬을 내줬다.

이후 다크의 움직임은 장난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강타를 3명이나 들고 있었기에 2분30초에 탄생하는 드래곤을 사냥한 것이 그나마 최고의 성과였다. 드래곤 사냥 이후 펼쳐진 전투에서 3킬을 헌납했고 이후에는 삼성 오존 선수들에게 무의미하게 킬을 내줬다. 6분경 중앙지역 외곽 2차 포탑까지 파괴되자 갖고 있던 아이템을 모두 팔고 와드만 구매한 다크 선수들은 본진 넥서스 주위에 와드를 심기 시작했다.

다크가 보여준 플레이는 LOL을 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트롤링'이라 불리는 행위다. 게임 전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상대 팀에게 고의적으로 잡히면서 게임을 '던지는' 플레이다. 라이엇게임즈는 신고창을 만들어 경기 중에 이와 같은 플레이를 한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도록 시스템까지 갖춰 놓았다. 일반 경기에서도 마땅히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 방송 대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열리는 LOL 대회 가운데 가장 권위있다고 인정받고 있는 챔피언스 대회에서 트롤링이 발생했다.

다크는 경기가 끝난 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고의로 지려고 한 것은 아니며 해설자인 이현우를 위한 '클템픽(얼마 전 LOL 선수에서 해설자로 전향한 이현우가 선수 시절 자주 사용하던 챔피언들만을 골라 경기에 임하는 것)'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크는 고의 패배를 부정했지만 이 경기를 본 99%의 사람들은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길 생각도 없었다. 공식 대회에서 프로를 상대로 '클템픽'을 하는 것부터가 이기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LOL 경기의 특성상 챔피언을 선택하고 금지하는 일은 팀의 자율에 맡겨진다.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 공식전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챔피언이라고 할 지라도 전략적으로 들고 나와서 승리를 이끄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시즌3 월드 챔피언십 조별 풀리그에서 SK텔레콤 T1 K의 이상혁이 리븐을 선택해서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23일 보여준 다크의 플레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챔피언 금지와 선택 모두 장난스럽기 그지 없었고 운영 또한 트롤링 이상도 아니다.

다크는 e스포츠계의 여러 구성원에게 피해를 입혔다. 가장 큰 피해는 다크를 상대한 삼성 갤럭시 오존이 입었다. 손쉽게 승점 3점을 얻었지만 경기 내용에 만족하기 어렵다. LOL 공식 대회에서 역대 최단 시간 승리 기록을 만들어냈지만 오히려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되어 버렸다.

두 번째 피해자는 온게임넷이다. 다크 선수들이 챔피언 금지, 선택을 하는 동안 중계진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이해하고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트롤링이었다. 이길 생각이 전혀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전파에 실어 각 가정의 TV로 실어나르고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려고 대회를 만든 것이 아니다.

세 번째 피해자는 시청자다. 아마추어 다크의 선전을 기대하며 그 시간에 TV와 모니터, 휴대전화로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은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다. LOL을 플레이하면서 트롤링이 나오면 신고를 누르던 사람들이 유사한 플레이를 방송으로 중계되는 공식 대회에서 봤다는 사실보다 더 큰 실망은 없다. 다크에 대한 기대 뿐만 아니라 대회에 대한 권위와 신뢰까지도 무너졌다.

앞서 말한 LOL의 특성상 이와 같은 플레이를 제지할 방법은 없다. 챔피언의 금지와 선택은 팀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선수들, 팀에게 성심성의껏 경기를 치러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최선이고 전부다.

그렇다면 팀과 선수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회에 나온 이유가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력을 검증하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우리 팀의 경기를 보면서 LOL에 대한 흥미를 갖고, 응원하는 팬들을 생각한다면 공식 대회에서 대놓고 트롤짓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가 23일 2세트에서 보여준 행동은 승부에 대한 예의가 결여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스포츠가 아름다운 이유는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지향하는, e스포츠의 대표 종목이 된 LOL에서도 공식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프로게임단이 아닌 아마추어팀인 다크라 할지라도 스포츠맨십이라는 예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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