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문장의 주어는 모두가 연상하다시피 장재호다. 중국 쿤산시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WCG 2013 그랜드 파이널의 주인공은 단연 장재호였다.
장재호의 주력 종목인 워크래프트3는 올해를 끝으로 WCG의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다. WCG는 2012년 중국에서 그랜드 파이널을 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워크래프트3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중국에서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워크래프트3를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WCG는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중국에서 2년 동안 그랜드 파이널을 열기로 했으니 2013년 WCG 그랜드 파이널에서 워크래프트3의 마지막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WCG는 워크래프트3의 대표 선수인 장재호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이례적으로 국가 대표 선발전을 따로 치르지 않고 팬 투표를 통해 장재호를 한국 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 뽑았다.
중국에 도착한 장재호는 자기가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멋진 경기력으로, 가장 오래 살아 남아서 개인의 숙원이자 팬들의 바람인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었다. 현역 워크래프트3 선수 가운데 WCG에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로서 종목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일이 장재호의 역할이었다. 워크래프트3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장재호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중국 선수들에게 연거푸 패하면서 첫 날 2패를 안았다. 6명 중에 4위 안에만 들면 4강에는 갈 수 있었긴 하지만 자칫하면 탈락할 수도 있던 상황. 장재호는 스타 플레이어답게 집중력을 살렸다. 엄효섭을 잡아내고 분위기를 탄 장재호는 중국 대표 저우시시와의 대결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전략을 꺼내 중국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4강에 진출한 장재호는 WCG 2013 그랜드 파이널이 자신을 위한 대회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듯 환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장재호의 결승이 확정되자 중국 팬들은 난리가 났다. 장재호를 연호했고 아이디인 'MOON'이 적힌 치어보드를 서로 높이 들고 응원했다. 경기를 마치고 빠져 나오는 장재호의 뒤로 100여 명의 팬들이 따라붙어 운영 요원들이 장재호를 특별 경호하기도 했다.
결승전이 열린 1일. 쿤산 국제 컨벤션 센터에는 무려 6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 사람들이 전부 장재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팬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절반 이상은 장재호의 이름을 알았다. 오후 3시30분 장재호의 결승전이 열리자 A관은 난리가 났다.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인의 장막, 구름 관중이라는 단어가 언제 씌여야 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관중이 모이면서 WCG측은 A관으로 인원이 더 유입되는 것을 막았다. 자칫하면 인사 사고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상 초유의 경기장 폐쇄 사태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팬들은 장재호의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들어가려 했고 중국 공안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입구를 틀어 막고 대치했다.
장재호는 우승하지 못했다. 1세트에서는 멋진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2, 3세트에서는 중국 대표 후앙시앙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5년만에 올라간 결승, 금메달을 눈앞에 뒀지만 파도처럼 사라져버리자 장재호도 허탈했는지 경기장의 천장만 쳐다봤다. 관객들은 우승자인 후앙시앙보다 장재호의 이름을 부르며 위로했다.
결승전 경기가 끝난 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WCG 그랜드 파이널에서 워크래프트3 부문 우승자들의 영상이 잔잔하게 흘러 나왔다. 그 안에 장재호는 없었다. WCG 측에서는 2013년 장재호가 우승하면서 영상이 아닌 실제 인물이 피날레를 장식하길 바랐지만 장재호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은메달의 아쉬움 때문인지, 지나간 10년 동안의 추억 때문인지 장재호는 영상이 방영되는 동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17세의 나이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해서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장재호에게 워크래프트3는 27년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WCG 2013은 장재호의, 장재호에 의한, 장재호를 위한 무대였다. 장재호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주인공은 장재호가 됐다. 비록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WCG, 워크래프트3와 함께했던 장재호였기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10년 동안 국내외, 크고 작은 대회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의 모습이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던 것 같아요. 이제 WCG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워크래프트3와 함께 했던 저의 10년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국(쿤산)=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