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기가 쓴 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ahq 코리아라는 팀이 생겼고 노 모씨가 감독 역할을 하면서 "챔피언스 대회에서 대기업 팀에게 지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나오지 못하는 제재를 받는다"라고 거짓말을 했으며 천민기는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컨트롤을 하거나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 방법으로 고의 패배했다는 것이다. 승부 조작을 강요한 노 모 감독은 불법 베팅 사이트를 통해 ahq 코리아 선수들이 패배한다는 쪽에 돈을 걸었고 졌을 때 배당금을 받았으며 이 돈으로 팀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ahq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본사인 대만의 ahq에서는 "감독의 요청에 의해 이름 사용권과 유니폼, 장비 지원을 하긴 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팀을 꾸린 것도 사기성이 짙다는 뜻이다.
2010년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리그에서 승부 조작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검찰의 수사 결과 밝혀지면서 e스포츠 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기업들이 프로게임단을 해체했고 후원사들은 떨어져 나갔다. 더 중요한 사실은 모든 팀의 선수들이 수사선상에 올랐으며 네임드였던 일부 선수들이 가담한 사실이 수사 결과 확실해지면서 팬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4년 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승부 조작이 발생했지만 이번 안은 스타1 때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상하 관계를 이용한 강압이 있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노 모 감독의 공갈과 협박으로 인해 천민기는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 자발적인 승부 조작 또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고의 패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천민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 단순히 승부 조작에 대한 양심 고백이 아니라 팀의 사정과 가담하게 된 계기 또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적었기에 팬들도 천민기에 대해 질타하기 보다는 감독의 행태에 대해 분노를 보이고 있다.
사정을 들여다 보면 스타1과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도 스타1처럼 승부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배후에는 e스포츠를 활용한 불법 베팅 사이트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스포츠는 승부 조작이 가능하다. 100의 기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 7~80의 기량만 발휘하면 소속 팀은 진다. 축구의 골키퍼, 야구의 투수 등 핵심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을 매수하면 원하는 쪽으로 승부를 만들 수 있다. 이기지는 못해도 지게 할 수는 있다. 지는 쪽으로 조작이 가능하지만 선수들은, 특히 프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명예와 자부심으로 이러한 유혹을 이겨낸다.
그렇지만 불법 베팅 사이트를 통해 거액의 자금이 지원된다면? 선수들은 흔들릴 수 있다. 몇 년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이 한 번의 조작을 통해 들어온다면 동요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선수들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처럼 프로게이머들에게 기본급이 주어져야 한다. 1년 이상의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고 급여 수준도 일반 사무직 이상으로 형성돼야 한다. 게임단을 운영하는 기업과 협회와 같은 경기 단체들은 복지는 물론, 마인드 교육을 통해 승부 조작의 유혹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또한 볼법 베팅 사이트의 근절에 나서야 한다. 2010년 스타1의 핵심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관여했다고 밝혀졌을 때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들의 인성, 즉 게임을 했기 때문에 세상 물정 모르는 마인드, 또는 돈만 밝히는 속물 근성을 지적했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불법 베팅 사이트의 존재였다. 불법적인 스포츠 도박을 하는 베팅 사이트 자체가 없었다면 승부 조작의 유혹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민기 사태 또한 노 모 감독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작하라는 공갈협박이 가해져 발생했다.
천민기 사태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감독에게 협박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져야하는 선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착목해야 한다.
2010년 e스포츠 업계는 스타1이라는 훌륭한 소를 잃었다. 4년에 걸쳐 외양간을 고쳤고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소를 다시 샀다. 천민기 사태가 가진 특수성으로 인해 크게 번지지는 않겠지만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서는 안된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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