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은 서머 시즌에서 출전하는 족족 승리를 거두고 있다. 11세트에 출전, 10승1패로 승률 91%를 기록하면서 소속팀인 SK텔레콤 T1의 6전 전승 행진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단순히 승률만 높은 것이 아니다. 이상혁은 11세트를 치르면서 똑같은 챔피언을 고른 적이 세 번밖에 없다. 삼성과의 3세트에서 빅토르를 썼고 아나키와의 1세트, CJ와의 1세트에서 빅토르를 사용한 것이 전부다. 11세트에서 9명의 챔피언을 사용하면서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챔피언을 썼다.
이 중에는 상식을 초월하는 챔피언도 많았다. 나진 e엠파이어와의 5월29일 경기에서는 바루스를 선택했다. 스프링 시즌 유럽 지역 결승전에서 유니콘스 오브 러브가 쓰면서 화제를 모았던 미드 바루스는 이상혁을 통해 재발견됐고 이후 여러 팀들이 꺼내면서 핵심 챔피언으로 떠올랐다.
KOO 타이거즈와의 6월3일 경기에서는 이렐리아를 꺼내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석 안에서 벌어지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오프 더 레코드'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상혁이 이렐리아를 고르자 KOO 타이거즈 선수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X친 거 아냐? 소환사 주문은 뭘 들어야되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충격을 줬다.
12일에 열린 CJ 엔투스와의 2세트에서는 미드 라이너용 챔피언으로 마스터 이를 선택해 또 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일반 이용자들이 자주 선택하는 챔피언이긴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공식전에서는 2년반 만에 선택된 마스터 이로 이상혁은 가장 많은 킬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이상혁이 여러 챔피언을 꺼내 들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롤챔스를 보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꿈 속에서나 볼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챔피언들을 공식전에서 쓰고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이상혁의 이런 페이스라면 티모, 피오라 같이 잊혀진 챔피언들도 쓰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상혁이 매 경기마다 보여주는 신세계에 세계 유수의 언론들도 깜짝 놀라고 있다. ESPN 더 매거진은 최신호를 e스포츠 특집으로 꾸리면서 이상혁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불사신(Unkillable Demon King)'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기사에서 ESPN은 "e스포츠 영역에 있어 10년 이상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한국에서 이상혁과 같은 영재가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동구권에서 훌륭한 체조 선수가 나오듯 게임 신동을 배출한 것"이라며 데뷔 전 '고전파'라는 소환사명으로 엄청난 실력을 선보여 많은 관심을 받던 시절부터 CJ 블레이즈와의 데뷔전, 시즌3 롤드컵 우승, 수많은 팬들의 관심, 주변 관계자들의 평가까지 한 명의 유명 스포츠 스타로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소개했다.
그동안 한국의 LoL e스포츠는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식전에서 최고의 효과를 얻기 위해 성능이 좋은 챔피언만을 쓰려 했고 그로 인해 지루한 경기가 양산되면서 팬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혁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앞장 서서 새로운 챔피언을 연구하고 팀과 동료들이 뒷받침해주면서 좋은 성적과 함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이상혁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다른 팀들도 참신한 챔피언을 연구하면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상혁이 보여주고 있는 신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것.
한국이 주도하는 e스포츠의 진면목은 이런 점이다. 북미와 유럽에서 메카닉이라 불리는,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 능력이 최강인 한국 선수들이 앞장 서서 글로벌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일이 바로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이 세계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