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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온라인3 극장] 장동훈-박준효, 언더독의 유쾌한 한 방

[피파온라인3 극장] 장동훈-박준효, 언더독의 유쾌한 한 방
안녕하세요. 김지원 기자입니다.

지난 주 피파온라인3 극장 '장동훈-김승섭, 압박을 논하다' 편에 보내주신 관심과 지적 모두 감사 드립니다. 독자들에게 더 쉽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캐나다에서 열리는 2015 피파 여자 월드컵에 참가해 여자 월드컵 사상 첫 승과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비록 프랑스에게 패해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자랑스러운 우리 태극낭자들에게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갓'준효, 가장 까다로운 상대와 마주하다
나를 잘 아는 사람과의 맞대결은 언제나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장단점은 물론 심지어 습관까지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피파온라인3 아디다스 챔피언십 2015 시즌1 4강에서 결승행 티켓을 놓고 맞붙은 장동훈과 박준효도 그런 사이다. 같은 클럽 소속으로 활동하는 두 선수는 실제로 평소 연습 경기도 자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초 예상은 박준효의 손을 들어줬다. 그도 그럴 것이 박준효의 이번 시즌 경기력이 적수를 찾기 힘들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원창연, 정세현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으나 손쉽게 조별예선을 뚫었고 지난 시즌 결승에서 패배했던 디펜딩 챔피언 김정민에게 복수 성공하며 4강에 올랐다.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대로 '갓'준효였다.

내세울 만한 이력이 딱히 없었던 장동훈과의 4강은 거쳐 가는 관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박준효를 이길 수 있는 선수는 박준효보다 '잘 하는 선수'가 아닌 박준효를 '잘 아는 선수'라는 것을.

◆더블 볼란치의 활용
현대 축구로 접어들면서 전술적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것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기존 상대방의 패스 경로를 차단하는 단순한 역할에서 벗어나 현재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템포 조절과 빌드 업, 수비 라인 이전에 상대의 공격을 일차적으로 저지하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이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량과 개성에 따라 팀 색깔이 정해지기도 한다.




장동훈과 박준효 모두 더블 볼란치 시스템을 활용하는 선수들이다. 더블 볼란치란 쉽게 말해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배치시켜 중원 지역에서 점유율을 가져가고 수비 라인도 안정화시킬 수 있는 가장 손해 볼 것 없는 시스템이다. 보통 좀 더 앞 선에 위치해 템포 조절과 패스를 연결시키는 선수를 '앵커'라고 하며, 강한 압박으로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선수를 '홀딩'이라고 한다. 박준효는 야야 투레와 펠라이니로, 장동훈은 보드메와 마티치로 더블 볼란치를 구성했다.

같은 더블 볼란치였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박준효가 자신의 진영에서 펠라이니와 아야 투레를 활용해 원터치 형태에 빠른 패스 연계로 공격 작업을 진행했다면, 장동훈은 마티치를 활용해 먼저 수비에 임한 후 보드메의 빌드업에 의한 역습으로 점유율을 올려나갔다. 장기인 압박 수비를 지속적으로 펼쳐 완벽하게 점유율을 잡은 장동훈은 순조롭게 박준효의 진영을 잠식해 들어갔다.

◆절묘한 페이크
장동훈은 승부수를 하나 뒀다. 평소 자신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주 투입하던 호날두를 측면에 배치한 것. 평소 중앙 공격을 고집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측면에 공격 자원을 투입해 나를 잘 아는 상대에게 혼란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것조차 장동훈의 노림수였다. 장동훈은 호날두로 측면 돌파에 치중하기보다는 드리블을 통해 중앙 박스 안으로 돌파해 들어가 공격 루트를 다양화하는 컷인(Cut-in) 플레이를 펼치며 중앙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측면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박준효에게 그야말로 절묘한 페이크를 건 것이다.

◆박준효를 지우다
사실 어느 방향으로 패스를 할 것이냐, 이 타이밍에서 어떤 개인기를 구사할 것이냐라는 판단은 선수의 습관에 바탕을 둔다. 박준효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경기에 나선 장동훈 앞에서 박준효의 개인기는 무력했고, 패스는 절반 이상 중간 차단당했다.

장동훈은 공을 잡은 박준효에게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고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침착하게 수비에 임했다. 그러자 박준효는 공 한번 만지기도 힘들어졌고, 점유율을 완전히 장악 당해버리고 말았다. 장동훈이 박준효라는 거대한 존재를 그라운드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답답함을 느낀 박준효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번 시즌 최고의 기세를 탈 수 있게 만들어 준 과감함이 없어졌고 평소답지 않게 패스 미스를 연발했다. 또한 자신의 장기인 개인 전술을 살리는 플레이가 전혀 나오지 못 했다(김동완 해설은 경기 중 "국어, 영어 잘 하면 문과에 가야 한다"라는 말로 박준효의 플레이를 정리하기도 했다).

마지막 4세트 첫 골 실점에서 나온 수비 진영 박스 안 패스 미스는 박준효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여기에 키보드가 고장 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더독의 유쾌한 한 방
언더독이란 스포츠에서 우승 확률이 적은 팀 혹은 선수를 말한다. 장동훈은 완벽한 언더독이었다. 한 매체의 설문 조사에서 약 79%의 팬들이 박준효의 승리를 점쳤기 때문. 그런 장동훈이 한 방을 날린 것은 4세트 72분경이었다. 드로그바가 호날두에게 공을 연결한 뒤 전력 질주했고. 호날두에게 공을 이어받은 보드메가 상대 수비수 뒤로 돌아 들어가는 드로그바에게 절묘한 스루 패스를 선물했다.

상대 수비 라인을 깨뜨리는 멋진 삼각패스. 장동훈이라는 언더독이 그가 무난하게 패할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날린 유쾌한 한 방이었다. 결국 이 골을 마지막으로 세트 스코어 3대1 장동훈의 결승 진출이 확정됐다.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4강에서 맞붙었던 박준효(왼쪽)와 장동훈.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4강에서 맞붙었던 박준효(왼쪽)와 장동훈.

사실 장동훈과 박준효, 두 선수가 천재성이 빛나는 타입은 아니다. 김정민과의 8강을 치르기 전 경기 VOD를 수 백번 돌려봤다는 박준효나, 휴대기기에 상대의 영상을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연구에 매진한다는 장동훈 모두 노력파다.

그렇기에 유연함을 갖춰야 했다. 같이 죽어라 연습하는 사이끼리 하던 대로 하면 승부가 될 리 없다. 언더독 장동훈은 유연하려 애썼고, 관심을 받던 박준효는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선택을 과감하게 내리지 못했다.


김지원 기자 (corpulent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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