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마다 공을 차는 습관과 스타일에 따라 공의 속도와 궤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멋지고 다이내믹한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응원하는 팀에 출중한 프리키커가 있다는 것은 팬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요소다.
팬들을 설레게 하는 유명한 프리 키커들을 살펴보자. 현재는 육아에 열중하고 있는 데이비드 베컴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프리 키커가 아닐까 싶다. 현역 시절 정확한 킥을 구사하며 스탠딩 윙어의 교과서적 플레이를 했던 베컴은 소속 클럽과 대표팀 경기를 가리지 않고 그림 같은 프리 킥으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한 선수였다.
또 얼마 전 AC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한 세르비아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도 90년대 유럽을 호령하던 프리 킥의 마술사였다. 미하일로비치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베컴을 지도했던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이 "베컴은 훌륭한 프리킥 능력을 지닌 선수지만, 미하일로비치와 비교하는 것은 그에 대한 실례다"라고 평가할 만큼 선수 시절 말로 설명하기 힘든 프리킥 능력을 줄곧 선보였다.
1999년 이탈리아 세리에 A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프리 킥으로만 해트트릭(3골)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그 기록은 현재까지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그 밖에도 리옹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주니뉴 페르남부카누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우승의 주역이었던 안드레아 피를로도 가장 정적인 순간을 지배했던 선수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른다.
◆ 손으로 공을 가장 잘 차는 선수
시각을 조금 돌려 피파 온라인 챔피언십 무대를 보자. 여기 고건영이라는 선수가 있다. 2013년 대회 최연소로 챔피언십에 출전해 MVP를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천재', '태생부터 호랑이' 같은 애칭이 잘 어울리는 선수다.
그리고 또 하나. '고건영의 프리 킥=골'이라는 공식을 설립했고 꾸준히 증명하는 중이다. 물론 실제 발보다는 손을 움직여야 하는 피파 온라인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고건영이 보여주는 프리킥 능력은 가히 사기적인 수준이다. 그야말로 손으로 공을 가장 잘 차는 선수다.
고건영은 일단 거리를 가리지 않는다. 실제 축구에선 골대와의 거리에 따라 담당 선수가 따로 있을 만큼 프리 킥은 거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보통 폭발적인 킥력으로 미사일 같은 슈팅을 쏘아대는 선수들이 중장거리 프리 킥을 맡고 공을 깎아서 회전시키는 등 정확하고 세밀한 킥을 구사하는 선수들이 짧은 거리에서의 프리 킥을 도맡는다. 1m~2m 차이가 큰 영향이 있는 프리킥 상황에서 당연한 흐름이다.
◇고건영의 프리킥 스페셜 영상.
하지만 고건영은 거리를 바탕에 두긴 하되 본인 만의 리듬을 유지한다. 때로는 비교적 먼 거리에서도 유연한 감아 차기로 골문 구석을 노리고, 골대 바로 근처에서도 낮게 깔리는 슈팅으로 시원한 골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고건영은 각도 또한 가리지 않는다. 측면에서의 데드볼 상황. 고건영은 정확한 '택배 크로스'로 헤딩 골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그를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피파온라인3 아디다스 챔피언십 2015 시즌1 12강 C조에서 안천복을 상대로 고건영은 측면 위치에서 그대로 슈팅을 때려 넣었다. 이 골은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건영이 자신의 성공적인 복귀를 자축하는 골이었고, 결국 시즌 1 베스트 골로 선정되었다. 거리와 각도, 이 두 가지를 자신의 흐름으로 풀어내는 선수를 ‘데드볼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대담함은 프리 킥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종합해보면 고건영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신감과 대담함이다. 미세한 실수로도 자신이 생각했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프리 킥에서 괴물 같은 성공률을 기록한다는 건 그만큼 조작 실수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모두가 긴장하는 데드볼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대담하게 즐길 수 있는 선수라는 것.
그런 측면에서 지난 시즌 장동훈과 벌인 8강전은 고건영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승부였다. 사실 고건영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프리 킥과 함께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색깔 있는 플레이로 주목받는 선수다. 하지만 상대가 '상성' 수준으로 나빴다. 상대 스타일을 치밀하게 연구해 맞춰가는 장동훈의 유연한 완급 조절과 능구렁이 같은 전술 변화에 1세트부터 흐름을 내주면서 경기다운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했기 때문이다.
◇고건영과 장동훈의 경기.
고건영의 조급함은 패스 미스를 양산했고, 단조로운 중앙 공격을 고집하면서 상대에게 번번이 차단당하고 말았다. 2세트를 어렵사리 가져왔지만 3세트에서는 골대를 맞추자 급격하게 무너져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데드볼 상황처럼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던 고건영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담함은 어쩌면 프리킥보다 전술과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를 줄 때 더욱 필요한 능력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오고 행해왔던 전술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추세는 장동훈, 박준효와 같이 분석을 통해 상대를 잡아먹는 식에 맞춤 전술을 짜오는 선수들이며, 고건영이 다음 시즌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이 선수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전술과 플레이 스타일의 과감한 변화를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고건영이 대담함의 날개를 펼치고 전술 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의 멋진 골 장면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데일리e스포츠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