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 야외 결승전은 당연한 행사였다. 2000년 건국대학교 새천년 기념관에서 결승전이 열리면서 스타1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등 결승전은 외부에서 열리는 것이 당연시됐다. 올림픽공원, 해운대 백사장, 킨텍스, 서울 광장, e스포츠의 성지가 된 광안리 해수욕장, 중국 상하이(비록 경기를 하지는 못했지만)까지 엄청난 장소들에서 결승전이 열렸다.
스타2로 종목이 바뀐 이후에도 야외 결승이 열렸지만 언제부터인지 야외 결승전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팬이 적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현실은 대회 운영의 문제였다. GSL이나 스타리그가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의 일환으로 진행되면서 시즌 결승전은 그리 중요한 행사가 아닌, 포인트를 배분하기 위한 과정으로 치부됐다. 전체 대회를 운영하는 블리자드 입장에서도 시즌 결승전보다는 11월에 열리는 블리즈컨이 가장 빛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스타2에서 야외 결승전이 열린 마지막 대회는 핫식스컵이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핫식스컵 2014 대회가 열린 것이 끝이었다. 프로리그는 세빛섬에서 치러지면서 호평을 받았고 1년을 정리하는 핫식스컵 또한 결승전만 치른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스튜디오를 벗어나서 대회를 치렀다.
스포티비게임즈가 주최하는 스타2 스타리그는 지난 시즌2부터 야외 결승전을 추진했다. 시즌2 결승전이 세빛섬에서 열린다고 공지하기도 했지만 메르스 사태로 인해 스튜디오로 장소를 바꿔야 했다. 시즌3 또한 세빛섬 개최를 추진했지만 서초구청과의 마찰이 발생하면서 어린이 대공원으로 선회했다.
상황이 어찌됐든 스포티비게임즈는 스베누 스타2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을 야외에서 진행했고 호평을 받았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진행되는 결승전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팬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8,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장소에 3,500명 정도가 모였으니 집객에 있어서도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다.
스포티비게임즈가 야외 결승전을 추진하는 데에는 후원사인 패션 브랜드 스베누의 공이 컸다. 시즌2부터 시즌3까지 2회 연속 후원사로 나섰던 스베누는 야외 결승전을 해보겠다는 스포티비게임즈의 의사를 존중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시즌2 결승전을 야외에서 하지 못했을 때에도 스베누가 적극적으로 다시 추진하라고 힘을 실어줬다. 스포티비게임즈도 세빛섬에서 시즌3 결승전 개최가 어려워지자 곧바로 장소를 물색해 야외 결승전에 대한 열의를 이어갔다.
주위에서 노력한 결과 오랜만에 스타2 야외 결승전이 성사됐고 가장 만족한 사람은 선수들이었다. 우승을 차지한 김준호는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회에서 정상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에 경기석에서 밖을 보니까 관중들이 엄청나게 많으셔서 더 우승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프로는 돈으로 먹고 살기도 하지만 팬들의 인기를 얻으면 더 힘을 낸다. 야구나 축구, 농구 등 프로화가 잘 되어 있는 다른 스포츠에서도 관중이 많을수록 질 높은 경기들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준호의 말 속에는 스타2 선수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런 무대가 더 많이 열어 달라는 뜻이고 선수들이 더 힘을 내서 경기를 준비한다면 더 많은 팬이 생길 수 있다는 선순환의 의미다.
올 초 인기를 끌었던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김준호의 바람, e스포츠의 현실과 결부시킨다면 '환경이 문화를 만든다'라고 바꿔도 좋을 듯하다. 야외 결승전과 같은 무대가 늘어나면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지고 팬들이 모이면서 e스포츠의 문화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