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첫 출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남그래플러로 대장전 2연속 올킬을 달성한 '맛집정복'의 민동혁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여그래플러와 남그래플러
던파리그 역사상 가장 꾸준히 활약한 캐릭터, 쉽게 말해 모든 리그에 개근한 캐릭터는 몇 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명맥이 끊긴 남레인저를 제외하면 여그래플러, 배틀메이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죠.
특히 여그래플러는 슈퍼아머 판정을 이길 수 있는 잡기 판정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소환물이나 로봇, 오브젝트 등에 무적상태로 충격파를 주는 '그랩 캐넌'을 보유해 '무상성' 캐릭터로 평가받습니다. 그래플러의 아버지라 불렸던 '초붕' 박정완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활약중인 김창원, 김태환으로 계보가 이어진, 말그대로 '족보 있는' 직업입니다.
여그래플러는 민첩합니다. 기동성이 좋은 금강쇄, 질풍각, 직선이동 평타를 보유했고, 손이 빠른 선수들은 ‘평타 4타+잡기’나 연속잡기를 이용해 전 직업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남그래플러는 묵직합니다. 잡기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다운된 상대에 대한 잡기 연계나 연속 잡기의 난이도가 여그래플러에 비해 훨씬 쉽죠. 영상에서 보여지는 민동혁의 연속잡기를 유심히 보면 이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질풍각이 제자리에서 시전되고, 평타의 이동속도가 낮아 여그래플러와 같은 돌진 플레이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민동혁은 이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상성과 타이밍에 더해진 우직한 밀어붙이기 플레이에 제닉스스톰X의 모든 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죠.
◆1세트 대장전 : 제닉스스톰X 정재운, 조성일, 이제명 vs 맛집정복 민동혁
개인전 16강 조별 풀리그에서 3전 전승을 달성하며 8강에 안착한 정재운. 지난 시즌 양대 우승부터 개인전 16강까지 이어진 기세가 첫 경기부터 유감없이 발휘됐습니다. 남스트리트파이터 이성묵과 크루세이더 정종현을 손쉽게 잡아내고 민동혁의 HP마저 60% 수준으로 떨어뜨린 상황, 민동혁이 가까스로 와일드캐논스파이크 콤보를 성공시켜 정재운을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올킬방지' 흐름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어서 등장한 소환사 조성일, 민동혁은 상성 우위를 이용해 초반부터 거칠게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예전과 달리 소환물의 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급 정령을 희생시키며 공격을 펼치는 소환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위상변화를 빠른 타이밍에 빼 놓고 피해 없이 조성일을 잡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조성일과의 경기가 끝난 후 민동혁의 HP는 경기 전보다 더 늘어난 상황이 됐죠.
마지막 선수는 베테랑 레인저 이제명이었습니다. 남레인저에서 여레인저로 캐릭터를 변경한 후 더욱 안정적이고 화려한 콤보로 주목 받아 온 선수입니다. 역시 경험 많은 선수답게 경기 초반부터 원거리 공격을 통해 민동혁의 HP를 30% 이하로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부터 민동혁의 각성이 시작됩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랜드러너에 대해 그랩캐넌을 착실히 꽂아넣으면서 3번의 콤보를 작렬, 1세트 역올킬을 달성했습니다.
◆4세트 대장전 - 제닉스스톰X 김창원, 정재운, 이제명 vs 맛집정복 민동혁
이번에는 민동혁이 선봉으로 나섰습니다. 제닉스스톰X도 에이스인 김창원을 1번타자로 배치하면서 남녀 그래플러의 미러전이 성사됐죠. 김창원이 초반 흐름을 가져오는 듯 했으나 안전하고도 확실한 콤보에 이어 질풍각 견제를 성공시킨 민동혁이 흐름을 반전시켰습니다. 착실하게 견제와 연잡을 성공시킨 민동혁이 김창원을 잡아내며 미러전 승리를 가져갑니다.
이어서 등장한 정재운은 원거리에서 투척을 이용해 민동혁의 움직임을 견제했습니다. 한번의 실수에 공중으로 뜨면서 민동혁이 아웃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재운은 특기인 그물투척 콤보를 이어가려 했죠.
하지만 연계 동작에서 중요한 넥스냅 스턱으로 인해 반격을 허용했고, 민동혁은 지금껏 대회에서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질풍각 캔슬 와일드캐논스파이크 콤보를 성공시키며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잡기가 맞물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콤보를 이어간 민동혁의 승리로, 개인전 3전 전승 선수인 김창원과 정재운이 모두 잡히고 말았습니다.
4세트 역시 마지막 주자는 이제명이었습니다. 안전하게 공격하며 민동혁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또 다시 스턱신이 강림했습니다. 바닥 콤보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단 한번의 스턱으로 인해 이제명이 반격을 허용한 것이죠. 이 때 민동혁의 HP는 5%도 남지 않았고, 이제명은 100%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의 콤보 성공 후 안전하게 권총의 춤을 사용하려는 이제명에게 민동혁은 반드시 잡는다의 슈퍼아머 잡기로 블로우 스트라이크를 성공시켰고, 이 때 이어진 와일드캐논스파이크로 이제명의 체력을 거의 동등하게 만들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원거리 견제와 랜드러너로 누적데미지 승리를 가져가려 한 이제명의 판단 미스를 파고들며 마지막 질풍각을 성공시킨 민동혁은 결국 최강의 제닉스스톰X를 2연속 올킬로 잡아내며 이번 액션토너먼트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역시 스포츠의 세계에서 속단은 금물인 듯 합니다. 미세한 가능성을 대이변의 결과물로 만들어 준 민동혁의 성장이 더욱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