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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세 번은 안 된다

[기자석] 세 번은 안 된다
2004년 5월 3일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 스튜디오. 당시 온게임넷 스튜디오로 쓰인 이곳에서 웨이코스배 카운터 스트라이크: 컨디션 제로 리그가 개막할 예정이었다. 선수들은 일찌감치 경기 준비를 마쳤지만 저녁 8시가 다 돼가도록 경기는 시작하지 못했다.

코엑스 건물 전체를 덮친 '세사르 바이러스'의 여파로 인해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고 PC가 다운되는 등 도저히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된 것. 온게임넷 개국 4년 만에 맞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문제 해결 방법이 없자 결국 온게임넷은 중계진의 입을 빌려 사과를 전하고 양해를 구한 뒤 리그 개막을 일주일 연기했다. 제작진은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바이러스의 침투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2016년 1월 25일 저녁 8시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슈퍼리그 2016 시즌1 개막전이 곧 시작하려는 시간이었다. 앞서 장재호와 이제동이 참여하는 이벤트전까지 치렀기에 TNL과 레이브가 맞붙는 개막전은 진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하기 전 TNL 부스 한기수의 자리에서 핑이 튀는 문제가 갑자기 발생했고, 다급해진 현장 스태프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PC를 여러번 교체하고 랜(LAN)선까지 교체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스태프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10분 전만 해도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던 게임이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니 말이다. 한 스태프는 "허브가 문제라면 부스 안의 다른 선수들도 핑이 튀어야 하는데, 한 자리만 말썽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당시 한기수의 자리는 핑이 80에서 100까지 튀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저히 게임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1에서 5사이의 안정적인 핑이었다. 방금 전까지 게임을 했던 장재호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문제가 있었는데 참고 게임을 진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핑은 정상이었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기자석] 세 번은 안 된다

스태프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중계진은 시청자와 현장 관객들에게 연신 사과를 건넸다. OGN은 지친 관객들을 달래기 위해 음료와 다과를 급히 공수했다.

결국 90분이 지나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주조정실에서 사용하는 회선을 뜯어 선수석과 옵저버실을 연결해 겨우 안정적인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12년 전처럼 리그 개막을 일주일 연기해야만 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해갔다.

그러나 경기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선수가 세팅을 오래한다는 오해가 발생했고, 인터넷에선 애꿎은 한기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 사이에선 "고급 레스토랑이라 요리가 늦게 나오는 것"이라며 비꼬는 글들도 넘쳤다.

OGN에게 이번 슈퍼리그 개막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행사였다. 지난 2015년 10월 3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던 초대 슈퍼리그 결승전에서 복수의 PC에서 끊김 현상이 발생해 경기가 80분이나 넘게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로 인해 현장을 찾은 많은 관중들이 불편을 겪었고, 롤드컵 중계와 시간이 겹쳐 우승팀의 인터뷰는 전파를 타지도 못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PC 끊김 현상이 발생해 제 시간에 경기를 하지 못했던 당사자가 바로 TNL(당시 DK) 선수들이었다. 그 때문에 TNL과 한기수는 일부 팬들에게 괜한 미운털이 박혔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당시 방송사고로 인해 OGN은 많은 팬들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야했고, 기자도 [기자석]을 통해 여유롭지 못했던 방송 편성과 소홀했던 결승전 준비상황에 대해 비판을 했었다. 때문에 OGN의 제작진들은 25일 개막전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 스태프는 개막전이 열리기 전 "결승전 당시 사고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다"며 완벽한 개막전을 준비하려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가 다시 한 번 발생했고, OGN은 다시 한 번 쓴 소리를 들었다. 첫 번째가 아니었기에 분위기는 더 심각했다.

살다보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25일 발생한 슈퍼리그 개막전 지연도 사고의 인과관계가 도무지 성립하지 않는 일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랜선 귀신'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OGN 입장에선 억울할지도 모른다. 잘 돌아가던 게임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했던 여분의 PC와 네트워크 장비들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OGN에게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게이밍 전용 노트북과 WiFi 공유기 혹은 WiBro 모뎀을 구비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구매비용이 부담될 수 있지만 세계 최고의 e스포츠 방송국이란 타이틀을 지키고 싶다면 이정도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

리그 흥행을 위해 '액땜'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다. 제 아무리 '불가항력'이라 해도 같은 문제가 세 번 발생해서는 안 된다. 25일 개막전 사태보다 더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막전이 끝난 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현장에 남아 PC들을 다시 테스트한 스태프들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기자석이 출고된 후 OGN은 26일 슈퍼리그 경기에 앞서 개막전 지연 사태에 대해 "대회 용도로 제공된 계정이 타 국가 서버로 접속되며 핑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이시우 기자 (siwo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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