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블리자드가 하스스톤:워크래프트의 영웅들의 새로운 대전 방식 정규전을 공개했다. 정규전은 2년 내에 출시된 카드들로만 덱을 꾸려 등급전을 치르는 방식인데 이 발표를 보자니 어쩐지 TV에서 본 비버와 사육사가 생각났다.
정규전을 도입한 블리자드의 설명은 이렇다. 이용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고 역동적인 메타를 구축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좋은 시도다. 그간 하스스톤은 몇몇 개의 고정적인 덱에 머물러 있었다. 수수께끼의 도전자와 비밀 카드를 사용하는 '비밀 성기사'는 항상 최고의 덱으로 주목을 받았고, '템포 법사', '미드 드루이드', '방밀 전사' 등 특정 덱들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너도 나도 따라하는 단계에 그친 상태였다.
그 뿐일까. 새로운 카드팩이 등장해도 일부 카드를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았다. 고블린 대 노움 카드에선 박사 붐만이 필수적으로 여겨졌고, 대마상시합 카드팩에선 심판관 트루하트와 연합용사 사라이드만 필요 카드로 인식됐다. 이런 상황이니 기존의 카드 사용을 제한하고, 새로운 카드를 추가해 메타를 변화시키겠다는 블리자드의 설명은 그럴 듯 하게 느껴진다. 고인 물에 흐름을 주지 않으면 썩어가기 마련이다.
다만 좋은 시도에도 무너진 집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비버가 생각나는 이유는 블리자드가 정규전 도입을 급하게 공개했으며, 여타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존 카드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야생 모드'를 별도로 뒀지만 사용해온 카드를 한 순간에 잃은 이용자들을 위로하기엔 부족했다.
더욱이 하스스톤 대회들을 정규전으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은 암묵적으로 정규전에 힘을 실어주는 것과 같다. 정규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모험과 카드팩의 구매를 제한하는 것 또한 신규 이용자들을 자연스레 정규전으로 이끄는 행보다. 결국 정규전에 무게를 두면서 만족스런 보상이 없으니 기존 이용자들의 불만이 증폭된 것이다.
정규전의 도입에 대해 새로운 카드팩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냔 비판이 따랐고, 빛 폭탄을 사용할 수 없는 사제나 치유 로봇이 빠진 도적, 흑마법사 이용자들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용자들의 불만은 생각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환불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환불에 대한 후기와 문의글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갑작스레 무너진 집에 누군가는 발길을 돌렸다. 이미 집을 무너뜨린 블리자드에게 새롭게 주어진 과제는 비버들에게 다시 집을 지을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정규전 도입과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카드팩일 것이고, 앞으로 이어질 블리자드의 소통과 노력일 것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새로운 카드팩이 이전 것의 대체품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카드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카드라면 결국 과금 유도의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메타를 주도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카드들을 개발하기 위한 블리자드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블리자드가 주장했던 집을 무너뜨린 명분.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