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정규리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김대겸과 조현준은 아이돌 못지 않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2라운드 우승으로 결승전에 직행한 조현준과 와일드카드로 어렵게 결승전에 합류한 김대겸, 팬들의 관심은 오롯이 두 명의 라이벌을 향했습니다.
◆조현준의 독주, 전반전
전반 4라운드는 조현준의 독무대였습니다. 1경기 포레스트 지그재그에서는 날카로운 라인으로 피니시 라인 직전에 역전에 성공하며 1위를 달성했고, 2경기 아이스 설산 다운힐에서는 7위에서 1위까지 올라오는 놀라운 주행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4경기 광산 꼬불꼬불 다운힐 역시 중반부터 김대겸과의 치열한 경합을 펼쳤지만, 위험구간에서 김대겸을 가볍게 따돌리며 단독 레이스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
4경기를 보시면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카트 시스템에서 얼마나 역전하기가 어려운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현준의 전반 순위는 1-1-5-1위.누적 28포인트를 획득하며 2위와의 점수차를 7포인트로 벌려 놓았습니다.
반대로 김대겸은 선두권을 유지하고도 번번이 다른 선수들과의 추돌사고에 휘말리며 선두권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전반 순위 3-4-6-3위. 단 한 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한 채 누적 20포인트를 획득, 3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워낙 조현준의 기세가 무서웠고, 온라인 타임어택에 특화되었던 김대겸의 멀티 능력은 결승전에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조현준이 가볍게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으리라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죠.
전반전 종료 후 잠시나마 휴식을 갖게 된 선수들은 대기실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김대겸은 감독과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감 가득 찬 공언을 하게 됩니다. 무대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체질인데 오히려 점수차가 벌어지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후반전에는 웬지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후반전 첫 경기(5라운드)에 1위를 한다면 나머지도 다 1위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반전 4개 라운드를 전부 1위 꼽고 오겠다'라는 자신만만한 공언이었죠. 그 상황에서 어떤 자신감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본인도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부활, 김대겸. 후반전
자신감에 불타오른 김대겸은 5경기 포레스트 지그재그에서 초반부터 1위를 선점하며 격차를 점점 벌려냅니다. 남재인, 임세선 등이 추격하며 김대겸의 라인을 위협했지만, 김대겸은 유유히 몸싸움을 피해 빠져나가며 선두를 수성했습니다.
마지막 사고구간마저 안전하게 통과하며 본인의 공언대고 후반 첫 경기에서 1위를 달성했습니다. 조현준은 3위를 기록, 두 선수의 격차는 6포인트차로 줄어듭니다. 이 경기의 영상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드리프트 2~3번에 부스터 1번. 드리프트, 커팅 등으로 무한 부스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현재의 카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경기는 아이스 설산 다운힐. 초반 하위권으로 시작한 김대겸은 1랩 통과지점에서 조현준을 따라잡으며 나란히 선두권을 형성합니다.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연속 헤어핀 구간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며 끝까지 경합을 벌이나 했지만, 조현준이 사고에 휘말리며 순위가 뒤쳐진 사이 김대겸은 2라운드 연속 1위를 달성합니다.
조현준의 순위는 4위. 이제 격차는 단 3포인트로 줄어들었습니다. 긴장감에 손이 떨렸던 전반전과는 달리, 김대겸은 차분히 심호흡을 하며 집중력을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7경기 사막 빙글빙글 공사장에서 두 선수는 초반부터 나란히 1, 2위를 유지하면서 경합을 펼쳤습니다. 중반 조현준의 드리프트 타이밍을 캐치한 김대겸은 몸싸움을 통해 1위로 치고 나갔고, 조현준 역시 빠른 사고회복능력을 발휘하며 김대겸을 추격합니다.
잔실수가 보였던 조현준과는 달리 김대겸은 실수 없이 안전하게 피니시 라인을 통과, 무려 3경기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조현준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선두권에 합류하며 2위로 결승선에 진입, 2포인트 차이로 누적포인트상 1위를 유지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가 될 수 있는 광산 꼬불꼬불 다운힐. 두 선수의 격차가 2포인트 차이였기 때문에 재경기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초기 카트리그 트랙 중 가장 사고가 많고 난이도가 높은 '광꼬'였기에 양 선수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초반부터 김대겸은 압도적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위험구간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며 빠르게 1위를 가져갔고, 몸싸움의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의 타임어택모드 김대겸은 적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번의 위협도 없이 자신의 레이스를 펼쳐 나갔죠. 반대로 조현준은 다른 선수들과의 거친 몸싸움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라인이 가로막혀 역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김대겸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채 3위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1위는 8점, 3위는 6점을 획득하는 방식이었으므로, 현재 순위가 유지되면 김대겸과 조현준의 재경기가 이뤄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김대겸이 2위로 떨어지거나 조현준이 2위로 올라가게 되면 조현준의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죠. 김대겸은 조현준의 순위를 인지하고 있었고, 조현준 역시 시야에 김대겸을 두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컨베이어 벨트 구간에서 두 선수의 운명은 엇갈렸습니다.
1차리그 선수들은 광산 꼬불꼬불 다운힐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우측-좌측으로 갈아타지 않았습니다. 속도보다는 안정성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죠. 김대겸 역시 안전한 빌드로 오른쪽 컨베이어 벨트를 타지 않고 좌측으로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조현준은 승부를 걸었습니다. 위험해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우측-좌측 갈아타기 라인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4위와의 격차가 있었기에 3위로 들어가면 재경기라는 생각이 있었을 듯 합니다. 김대겸을 잡아내지 못해도 2위만 기록하면 종합 우승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승부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라인이 어긋난 조현준의 세이버PRO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탈했고, 그 사이 1, 2위는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빠르게 사고에서 복귀하여 3위로만 진입하면 재경기 확정. 하지만 조현준은 기둥 구간에 매달려 완전히 탄력을 잃었고,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8라운드 결과 김대겸 1위, 조현준 5위. 2포인트 차이로 승부는 끝이 났습니다.
◆카트리그의 전설, 그리고 첫 번째 라이벌.
영상에서 보이는 8라운드 종료 직후 김대겸의 표정은 미묘합니다. 우승의 기쁨보다는 안도의 탄식에 가깝죠. 이유가 있습니다. 김대겸은 자신의 우승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위와 4위의 격차가 컸기 때문에 당연히 조현준이 3위로 결승선을 통과, 재경기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는 안도의 표정이었던 것이죠. 스탭들과 다른 선수들이 '앞에 봐. 니가 우승이야'라며 우승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야 김대겸은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승리를 만끽하며 눈물을 글썽거릴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도 눈앞에서 우승을 놓친 조현준은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 때의 결과가 트라우마로 남은 것인지, 4차리그까지 활약했던 조현준은 4번의 리그에서 준우승만 3회. 결국 은퇴할 때까지 우승컵을 손에 넣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팀 리그의 다양한 볼거리와 화려한 주행, 에이스결정전의 짜릿함도 물론 풍성하지만, 1차리그의 레이스에는 날것 그대로의 풋풋함과 아련한 향수가 공존합니다.
드래프트에 의한 엄청난 역전이나 게이지 회복 같은 장치들이 없음에도, 카트라이더가 가지는 레이싱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달까요. 그래서 김대겸과 조현준의 라이벌전이 더 빛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카트라이더에서는 수많은 전설과 라이벌들이 탄생하게 되겠죠. 김대겸-조현준, 문호준-유영혁, 그리고 다음 세대의 라이벌이 출현하는 날까지 카트리그 많이 사랑해 주시고, 차기 리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카트리그의 전설이자 현 해설위원인 김대겸 해설위원에게도 지금처럼 많은 사랑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준 해설 위원
정리=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