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팬들에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의원들 중에는 배지를 달지 못한 사람이 있다. 19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보유하고 있던 전병헌, 김광진 의원은 배지를 달지 못했다. 선거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에서 지역구 후보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탈락했다.
전병헌 전(前) 의원의 경우 한국 e스포츠 협회 명예회장(자리를 수락할 때는 회장이었지만 겸직 금지법에 의해 명예직으로 전환됐다)과 국제 e스포츠 연맹 회장을 맡고 있었기에 e스포츠 팬들에게는 친숙한 인물이다. 2013년부터 한국e스포츠협회의 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위기에 빠졌던 e스포츠계를 살려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전 전 의원은 업계를 위해 발벗고 뛰면서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왔다.
e스포츠를 대한체육회 준가맹 단체로 승격시켰고 동호회 종목으로 전국 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으며 진에어가 프로게임단인 그린윙스를 창단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한국 개최를 이끌었고 스포티비 게임즈 개국을 도움으로써 e스포츠 전문 채널의 확대에도 기여했다.
국제e스포츠연맹의 회장으로서의 활동도 주목할 만했다. 5년 이상 열리지 않았던 e스포츠 심포지움을 부활시켰고 IeSF 월드 챔피언십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면서 e스포츠 국제 대회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스포츠 어코드나 국제 육상 연맹 등과의 교류를 이어가며 세계 스포츠 업계에 e스포츠의 존재와 성장 가능성을 알렸다. 또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세미나 등의 학술 활동도 진행하면서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전 협회장이 e스포츠 업계에서 추진한 사업들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꼽는 시선이 존재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e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뛰어 다녔기에 업계도 함께 움직였고 단기간에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내려 놓은 전 협회장의 업무 추진력은 지금부터 검증에 들어간다. 협회장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고 e스포츠 발전에 기여한다면 이전의 성과들이 국회의원 배지 덕분이라는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사들의 협조를 얻지 못하거나 갈등이 발생하면서 취임 이전과 같은 혼란이 벌어진다면 리더십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한국의 e스포츠는 여러 지역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 프로화 노하우를 갖고 밀어붙이는 미국 등이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의 e스포츠가 최고라며 10여 년 전에 만들어 놓은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지켜내는 일도 버거워 보인다.
국회의원이라는 돛을 접은 전병헌 호(號)가 변화와 성장이라는 파고를 어떻게 넘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