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전의 들뜬 기분과는 별개로 선수들의 승패에서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당연히 진출할 것 같던 선수들이 상위 라운드 진입에 실패하고,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 대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개막전에 펼쳐진 여그래플러 미러전과 단체전 풀매치를 리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상 초유의 여그래플러 미러전, 김창원 vs 김태환
그동안 수없이 언급해드린 것처럼 미러전은 선수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 승리에 대한 간절함, 심리적인 압박감 등이 한 데 어우러져 평소와는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기가 다반사이죠. 동직업전이기에 상대의 모든 타이밍과 스킬 판정을 알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양 선수의 공방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합니다. 금강쇄, 질풍각, 분신. 단 세가지 스킬로만 타이밍 싸움을 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단순함이 심리전과 얽히고 설킬 때 그 변수는 무궁무진해집니다.
경기 내내 금강쇄는 무즈어퍼 카운터에 효력을 잃었고, 질풍각 역시 함부로 쓸 수 없는 스킬이었습니다. 결국 두 선수 모두 거리의 압박을 통해 상대의 스킬을 모두 빼 놓는 데에 주력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의 큰 변수는 퀵스탠딩이었습니다. 보통 여그래플러가 타 직업과 대결할 때 상대가 퀵스탠딩을 사용하면 바로 잡기 심리전을 들어가게 되는데, 이번 경기에는 그 심리전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무턱대고 심리전을 걸 경우 본인이 역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차이점은 개인전 패자조 경기인 김태환 vs 이찬혁의 경기와 비교하면 더욱 잘 드러납니다.
김창원은 강점인 기본기와 운영을 통해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김태환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손이 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역시 테크니션에 가까운 김태환의 플레이는 빠른 연타가 가능해지는 경기 후반에 더 큰 강점을 보이며, 단기전에 약한 허점 역시 동시에 노출한 경기였습니다.
◆빛 바랜 풀매치 올킬, 그리고 제왕의 몰락
이번 개막전 최고의 장면은 역시 한지훈의 4:4 풀매치 올킬이었습니다. 남그래플러의 넓은 잡기 판정과 강력한 데미지의 와일드캐넌 스파이크를 유감없이 활용하며 Nomercy 네명의 선수들을 모두 제압한 것이죠.
특히 Nomercy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여런처 김상재를 가볍게 잡아내는 모습에서는 관객들 모두의 탄성을 이끌어냈습니다. 거침없는 금강쇄 활용을 통한 돌격과 스턱마저 계산한 잡기 콤보, 남아있는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한 데 모여 완성한 올킬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세트 에이스결정전이었습니다. 이병채지훈 팀은 올킬을 달성한 한지훈 대신 전 시즌 개인전 챔피언인 인파이터 김형준을 투입했습니다. 이 날 김형준은 1세트 대장전에서 1킬도 하지 못하고 잡히며 부진한 상태였죠.
손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데다 에이스결정전의 중압감에 굳어버린 김형준의 멘탈은 여런처 김상재를 맞아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올킬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한지훈이 에이스결정전에 등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올킬 후 탈락이라는 잔인한 결과를 마주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다만 아직 김형준에게는 복수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2주차 개인전 B조에서 김상재와 같은 조에 속해 있기 때문이죠. 만약 이번 주 김형준이 단체전 패배의 아픔을 극복하고 상위 라운드 진출에 성공한다면 무너진 자신감과 자존심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김형준, 김창수, 김도훈, 김상재의 개인전 원데이 듀얼 토너먼트 B조의 경기와 천붕쇄 대 광폭화의 단체전 경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개막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기를, 그리고 기존 강자들이 여전히 강력한 경기력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준 해설 위원
정리=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