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사회에 유리 천장은 만연해 있다. 다만 과거에 비해 많이 깨졌다. 특히 최근엔 정치계에서 파리와 로마, 도쿄에서 최초의 여성 수장이 탄생하며 눈길을 끌었다.
갑자기 e스포츠 칼럼에 뜬금없이 사회와 정치 얘기가 나오는 거냐고 놀랄 수도 있겠다. 그저 e스포츠에도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게이머가 아마추어에서 프로 단계로 진급하는 단계에 존재하는 장벽이 있다. 물론 유리 천장과는 다르다. e스포츠에 끼워 맞추자면 '유리 부스' 정도가 적당할까. 조직 혹은 업계가 원인이 아닌 여성 게이머의 부족한 경쟁력으로 생긴 장벽이다.
유리 부스의 1차적인 원인이 여성 게이머의 경쟁력 부족이다. 하지만 더 깊게 파고들면 편견과 성각본을 마주할 수 있다. 흔히 '여성은 남성보다 게임을 잘 못 한다'라는 편견이 있다. 어느 정도 사실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프로 단계에 있는 선수들의 99%가 남성이며, 각종 게임의 상위 랭커도 남성이 다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남성과 여성의 전체 비율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전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남성 100명 중 10명이 실력자인 것과 여성 10명 중 1명이 실력자임을 가정하면, 비율은 10%로 동일하다. 절대적인 숫자가 10명과 1명으로 10배 이상 차이나 보일 뿐이다.
신체적 능력이 사실상 요구되지 않는 게임과 e스포츠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뭐가 있을까. 판단? 반응 속도? 시야? 무엇보다 확실한 건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 사회에 뿌리내린 성각본이 드러난다.
여성들과 게임은 친해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상상해보자. 남성들은 게임과 만화, 여성들은 드라마나 연예인. 꼭 정해놓은 것처럼 대화 소재가 정해져 있었다. 방과 후에도 남성들이 당구장과 PC방을 향할 때 여성들은 카페로 이동했다. 누가 법으로 정해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애가 무슨 게임이야', 'PC방은 남자애들이나 가는 곳이지'라는 말부터 시작된 성각본에 비롯한다. 흔히 프로 게이머를 꿈꾸는 나이대가 10대임을 감안하면 남성과 여성의 e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은 현저하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최근 여성들은 조금은 더 당당하게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FPS부터 AOS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이름을 알린 여성 게이머들도 등장하고 있다. 오버워치 이홈의 '아카로스' 장지수와 '게구리' 김세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콩까지마 팀의 '에즈' 천영현, 카운터 스트라이크:글로벌 오펜시브 노마드 소속의 '루미너스' 박희은처럼 말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유리 부스는 점차 깨져가고 있다. 여성이 '취미가 게임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프로 게이머를 직업으로 꿈꾸는 여성들이 많이 늘어나길 바랄 차례다.
과거 학습의 기회가 적었던 여성들의 학업 성과는 저조했다. 하지만 기회와 참여도가 높아지며 최근엔 여성이 사시, 행시, 외시의 합격자 절반을 차지하고, 사관학교 시험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등 변화가 생겼다.
게임과 e스포츠라고 다를까. 편견과 성각본을 찢고 자신만의 애드리브로 게임과 e스포츠를 즐긴다면 여성 프로 게이머는 언제라도 대성할 수 있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