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스타크래프트2 KeSPA컵 2016 아프리카 프릭스 조지현과 진에어 그린윙스 조성호의 8강전 4세트에서는 스타크래프트2 역사를 통틀어 가장 처절한 엘리전이 펼쳐졌다.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조성호와 조지현의 병력이 갈렸고, 서로 수비 대신 공격을 선택하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엘리전 양상을 보였다. 서로의 건물을 대부분 파괴한 뒤 유닛 간 교전이 벌어졌고, 암흑기사를 보유한 조성호가 탈출을 감행하던 조지현의 탐사정과 마지막 관측선을 파괴하며 승리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진 조성호가 성급한 수비를 시도하다 교전에서 가진 병력을 모두 잃었고, 최후에 남은 것은 암흑기사 2기뿐이었다. 조지현이 가진 병력은 집정관 2기와 추적자 1기, 사도 7기와 분광기 1기.
조성호는 암흑기사 1기로 수비를, 또 다른 암흑기사로는 상대의 건물을 공격하며 끝까지 경기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경기 종료 직전 조지현에게 남은 유닛은 점멸 추적자 1기였고,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황혼의회만 부수면 되는 상황. 반대로 조성호는 인공제어소와 차원관문을 부숴야했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암흑기사의 공격을 받던 조지현의 마지막 점멸 추적자는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고, 조지현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서 분광기에 유닛을 실어 나르고 점멸을 사용하며 끝내 황혼의회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중계진은 목이 쉴 듯 소리를 질렀고,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지켜본 팬들은 물론 온라인으로 시청하던 팬들도 2015년 GSL 시즌2에서 보여준 어윤수와 정명훈의 경기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엘리전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세트 스코어 1대2로 밀리던 상황에서 4세트를 가져가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던 조지현은 5세트에서 다시 한 번 암흑기사 카드를 꺼내든 조성호의 과감함에 무너지면서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조지현과 조성호의 처절한 경기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근성은 팬들을 전율시킬만한 명경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의 정명훈이 그랬고, 2016년의 조지현이 그랬다.
비단 스타크래프트2뿐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e스포츠 대회가 다양해지고 접할 수 있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흐름 또한 단조로워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나오는 명경기들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매번 같은 양상의 경기를 펼치는 선수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팬들도 질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 간에 서로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맞부딪히면서 순간의 판단력과 실력이 극대화됐을 때 팬들은 전율을 느낀다. 이는 e스포츠가 가진 최고의 매력 중 하나이며, e스포츠의 인기를 오래도록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어떤 종목이든, 프로게이머들은 하루에 수십 번의 연습 경기를 하면서 자신의 유불리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불리해졌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명경기의 주인공으로 남길 바란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