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과 양진모의 16강 1경기.
보통 신인들은 공격력으로 먼저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 낸 노하우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수비력은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이 자신의 무기로 욕심을 내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공격적 측면은 예측할 수 없는 패턴과 분석당하지 않은 루트가 상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많은 신예들이 자신의 공격력을 갈고닦는데 주력한다.
또한 화려한 개인기와 다이내믹한 골로 자신의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더욱 또렷이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이 공격에 집중하는 부가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선수들의 경기는 공격 일변도 운영에 의해 난타전 양상으로 흐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축구는 공간을 지배하기 위한 숫자의 예술이다. 어떤 지역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을 배치해 수적우위를 점할 것인가는 그 팀의 기본적인 색깔과 상세한 전술을 결정짓는다. 반대로 상대보다 수적으로 열세인 공간은 적은 숫자로 얼마나 효율적이게 방어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화끈한 공격을 위해 상대 진영에 많은 숫자를 배치할수록 텅 비어버린 중원은 상대에게 약 1~2초간 더 생각할 시간을 주며(공격의 기점이 되는 선수들이 포진한 미드필더 지역에서는 이 1~2초가 경기의 모든 걸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공간을 메우고자 올라오는 수비라인으로 인해 뒷공간으로 파고들어가는 상대 공격수를 놓칠 가능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공격 일변도를 택하는 신인들이 난타전을 자주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 한 명의 신예가 공격과 수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색다른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 FIFA온라인3 챔피언십 2016 시즌2로 모습을 드러낸 신인 최성은의 이야기다.
최성은은 지난 8월 27일 양진모를 상대로 챔피언십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데뷔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운영으로 4-0 대승을 이끌어 냈다. 최성은의 무엇이 상당한 경력을 지닌 실력자 양진모를 꼼짝도 못하게 했던 걸까. 그 운영의 핵심은 바로 '포기'에 있다.
우선 최성은은 점유율을 포기했다. 보통 공을 오래 돌려가며 점유율을 높인 뒤 여러 공격 루트를 타진해보는 것이 승리를 향한 일반적인 방식이다. 어차피 축구는 공을 골대 안으로 집어넣는 경기이므로 그 주체인 공을 오래 소유하고 있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
하지만 최성은은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보다는 오로지 '공'에 집중했다. 점유율 자체는 양진모가 끌고 가는 모양새였지만 선수에 맞고 튀기는 공, 문전 앞을 흐르는 공 등은 최성은의 것이었다. 이러한 세컨볼을 잡아낸다는 것은 결정적 찬스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최성은은 '완벽한' 수비를 포기했다. 최성은의 수비진은 상대 전진패스에 두 명이 겹치며 뚫리는 아마추어적 실수도 범하는 등 약간의 불안함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 수비수를 활용해 길목만을 지키며 상대에게 결정적 찬스만큼은 내주지 않았다. 상대가 골문 바로 앞까지 전진해 들어와도 다급한 모습 없이 슛 코스 차단에만 열중했다.
때문에 공이 골대로 향할 수 있는 각도가 없어진 상대는 다시 한번 뒤로 볼을 돌렸고 이 플레이는 수차례 반복됐다. 결과적으로 최성은은 상대와 크게 치고 받지 않으면서 선수들의 체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고 수비의 핵심인 센터백만을 이용한 최소한의 견제로 효과적인 수비를 해낸 셈이 됐다.
마지막으로 최성은은 '화려한' 공격을 포기했다. 최성은의 공격은 다소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선이 굵었다. 공간을 보고 들어가는 로빙패스 그리고 같은 팀 공격수 발에 정확히 들어가는 패스 몇 번이 최성은이 보여준 공격의 전부다. 이러한 단순한 공격 전개는 오히려 역습시 최성은의 스피드를 극대화 시켰다.
여기에 그만의 결정력이 더해지자 가장 중요한 골이란 결과를 챙길 수가 있었다. 공격 스타일 자체가 대단히 화려한 편은 아니었으나 결국 첫 경기에서 무차별 골 폭죽을 쏘아댄 것은 최성은의 실리축구였다.
◇최성은과 김병권의 16강 2경기.
이러한 최성은의 독특한 운영은 지난 9월 10일 김병권과의 맞대결에서도 잘 나타났다.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김병권을 맞이해 최성은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세컨볼에 집중했고 투박하지만 간단한 전개로 역습 스피드를 극대화했으며 수비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상대에게 라스트신을 내주지 않았다. 이 경기까지 3-0으로 승리한 최성은은 2경기 연속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했으며 득점은 무려 도합 7골에 달했다. 객관적 데이터상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잡아낸 최성은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김정민전은 체급차이가 명백히 느껴졌던 경기였다. 역습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강력하지만 상대 수비가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고 압도적인 드리블 능력을 가진 상대에게 그간 보여줬던 최종수비의 집중력마저도 깨져버리는 등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그러나 이것은 8강 진출이 확정된 최성은에게는 보약이 될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알지 못하는 선수는 절대 높은 곳까지 도달할 수 없다. 보통 선수라면 시도하지 않을 법한 스타일로 조별예선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최성은이기에 또 어떤 유쾌한 방법으로 김정민이 남긴 숙제에 해답을 제시할지 큰 기대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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