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이란 프로게이머가 피파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10년간 선수 생활을 지속해온 베테랑이자 다수의 대회에 참가해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경기장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팬들과 취재진을 몰고 다니는 말 그대로 ‘피리 부는 사나이’다. 2016 피파 온라인3 챔피언십 시즌2는 그런 김정민이 성남의 등번호 7번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첫 국내 대회였기 때문에 당연히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비단 대중과 취재진뿐만 아니라 김정민 자신에게도 이번 대회는 특별했다. 사람에게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자신이 왜 '최초'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지를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했고, 자신을 영입한 것이 왜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를 성남에게 증명해야 했다. 그가 성남 입단식에서 밝힌 "후배들을 위해 선구자 역할을 하고 싶다"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 시작점. 조별예선에서 김정민은 김병권, 최성은, 양진모를 만났다.
◇노련함을 보여준 김병권과의 경기.
첫 경기는 지난 7월 EA 챔피언스 컵에 함께 한국 대표로 출전한 바 있던 김병권과의 대결. 이 경기는 김정민이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한 골이 승패를 가른 승부였지만 스코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련함이었다.
김정민은 전반 초반 너무도 간단한 과정을 통해 득점에 성공했다. 그 과정을 보자. 김정민의 미드필더들은 상대 문전 앞에서 패스 연결을 통해 공을 사수한 뒤 오버래핑 올라오는 풀백을 기다린다. 전담 수비가 채 붙지 않은 풀백은 짧은 크로스 연결을 통해 보다 정확한 크로스를 차올린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높이 뛸 수 있는 스트라이커의 헤딩. 매우 교과서적인 과정이지만 한 단계마다 그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베테랑만이 선보일 수 있는 득점 루트였다.
이 경기의 백미는 득점 이후였다. 김병권은 한 골을 만회하기 위해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 점유율을 높여가는 공격 작업을 택했다. 하지만 급할 게 없던 김정민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최대한 자신의 진영에서 공을 돌리며 시간을 최대한 보냈고, 미드필더 라인부터 김병권의 패스를 차단하며 위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틈을 봐놓은 이후 날카롭게 시도하는 역습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었다. 공격에 많은 투자를 했던 김병권보다 김정민이 시도했던 1~2차례에 역습이 더 강렬했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최성은과의 경기.
최성은과의 두 번째 경기는 김정민 본래 스타일인 공격성이 무섭도록 드러난 경기였다. 상대 최성은은 김정민을 만나기 전까지 다득점과 클린시트를 기록하고 있었던 이번 대회 최고의 신예였기에 김정민이 다시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승부하리라 예상됐지만 그는 그런 전망을 보기 좋게 뒤엎어 버렸다. 무서운 신예에게 맞서 한 수 가르쳐 주는 듯한 김정민의 공격력에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고 있던 최성은의 기록지는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경기는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정민만이 구사할 수 있는 드리블과 그것을 바탕으로 효과를 내는 개인 공격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을 분석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었다면 '축구의 신(神)' 리오넬 메시도 지금까지 잘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정민의 이날 컨디션과 경기력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 이외에 더 붙일 말은 없다.
김정민이 이렇게 경기력 자체가 대단한 선수이기 때문에 양진모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경기 내용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안일한 마음’과 ‘방심’이 아찔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김정민은 이날 4점 차 대패만 하지 않으면 8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분명 여유로운 부분이 많았다.
이런 여유로운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향은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다양한 전술의 시험이다. 하지만 김정민은 그저 안일한 태도로 이 경기 자체를 방관했다. 보통 게이머가 아닌 프로팀에 입단한 최초의 선수가 펼쳐서는 안될 태도였다.
‘물론 김정민은 이날 경기 뒤 인터뷰에서 본인의 경기력과 태도를 스스로 질책하고 반성했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경험은 베테랑 김정민에게 또다시 무언가를 느끼게 한 모양이다. 김정민은 전경운, 강성호, 강성훈과 함께 모인 8강 B조 듀얼토너먼트를 깔끔하게 통과하며 4강에 진출했다.
그가 성남의 일원으로 처음 맞이한 대회에서 최고의 첫 인상을 남길 시간도 이제 머지 않은 모양이다. 교훈을 크게 얻고 정신차린 지금의 경기력과 기세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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