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프로리그의 마지막 경기였던 2016년 9월 3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숲 속의 무대에서 열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6 결승전에서 함께 중계에 나선 네 사람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스포티비 게임즈가 프로리그의 추억을 함께 하기 위해 11월4일 넥슨 아레나에 마련한 '굿바이, 프로리그'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채민준 캐스터, 유대현 해설 위원, 고인규 해설 위원, 이현경 아나운서가 프로리그에 합류한 날은 각각 달랐지만 마지막을 함께 하는 자리는 같이 했다. 이제는 추억이 될 마지막 자리를 같이 한 네 명을 만나 프로리그의 추억을 들었다.

프로리그는 놀이터였다. 스포티비에서 야구, 축구, 농구 등 정통 스포츠를 중계하던 나에게 e스포츠라는 새로운 영역, 특히 프로리그를 준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스타1을 좋아하던 내게 꼭 듣고 싶었던 지시였다.
2014년 처음으로 임무가 맡겨졌을 때 비중은 크지 않았다. 김철민 캐스터가 이틀 동안 중계하고 나는 하루만 맡았지만 넥슨 아레나를 오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나에게 프로리그 중계는 업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놀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2014년 결승전에서 선수들의 시상을 맡았던 나는 2015 시즌부터 전 경기에 투입됐고 e스포츠 팬들로부터 인지도를 쌓아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이 있었지만 팔로우를 하기만 했던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잊지 못하는 순간은 2016 시즌 결승전을 모두 마치고 팬들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프로리그 차기 시즌이 들어갈지 확실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팬들과의 대화가 너무나도 소중했고 이야기를 주고 받던 과정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면서 위기를 느꼈다. 내가 여기서 울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았기에 눈물을 참으면서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경기들이 소중했고 기억에 남지만 이병렬이 맹독충 드롭으로 김준호와의 대규모 교전에서 이겼던 장면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e스포츠 팬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무대였던 프로리그이기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스포츠계에서 프로리그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은 몇 명 없다. 내 기억에는 삼성 갤럭시의 송병구 플레잉 코치와 SK텔레콤 T1의 최연성 감독 정도다. 최연성 감독의 경우 군에 갔던 시기가 빠지긴 하지만.
프로리그에서 첫 승을 거두던 날을 잊지 못한다. 2005년 5월이었는데 윤종민 선배와 팀플레이에서 이기면서 첫 승을 기록했다. 당시 팀플레이는 모든 선수들이 꺼려하던 분야였지만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꾸준히 연습한 덕에 기회가 왔다. 이후 팀플레이에서 개인전으로 영역을 확대시켰고 주전이라는 자리 또한 꿰찼다.
그리고 하루 더 있다. 2006년 광안리에서 열린 전기리그 결승전 MBC게임 히어로와의 대결에서 '아카디아' 맵에 출전했던 내가 박성준 선배를 꺾으면서 4대1로 팀의 우승을 확정시켰고 결승전 MVP를 탔다. 그 날도 잊을 수 없다.
SK텔레콤 T1을 떠나 공군 에이스에 입단했을 때에도 나는 프로리그에서만큼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꾸준히 기회가 왔고 나는 5할을 넘기면서 공군 소속으로5할을 넘긴 몇 안되는 선수였다.
해설자를 처음 시작한 것도 프로리그였다. MBC게임이 폐국되면서 신도림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로리그에서 마이크를 잡은 뒤로 2016년 마지막 결승전까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다. 이 기간 동안 진행된 모든 경기들이 아직까지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연습생 시절에는 꿈의 무대였고 선수 시절에는 지고 싶지 않은 무대였으며 해설자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프로리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MBC게임에서 프로리그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던 나는 방송국이 문을 닫는 바람에 설 자리가 없었다. 방황하던 나에게 한승엽 해설 위원이 전화를 했고 다시 함께 하자고 제안한 무대가 프로리그였다. 그래서 프로리그는 나에게 수정탑과 같은 존재다. e스포츠와의 인연이 끊어졌던 내게 프로리그가 수정탑이 되어 다시 동력을 불어 넣어줬기 때문이다.
처음 신도림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무대가 너무나 작고 관중들이 불편하게 계셔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을 처음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을 먹었고 다시 온 기회를 살리기 위해 더 열심히 중계했다.
프로리그 중계를 다시 하면서 두 명의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됐다는 점에서 자극도 받았다. 선수 시절부터 '이 선수는 해설자를 하면 정말 잘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고인규가 함께 호흡을 맞춰주면서 공부하게 만들었고 채민준이 중계진으로 합류하면서 원석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둘 다 나에게는 스팀팩 같은 역할을 해줬기에 재미있게 중계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경기 외적으로는 고병재가 경기하던 중에 모니터가 무너지면서 e스포츠 최초의 '부상'을 당한 일이 기억이 남는다. 또 하나는 스타1 시절 프로리그에서 승자 연전 방식으로 진행된 위너스리그에서 SK텔레콤에게 0대3으로 끌려가던 kt의 이영호가 자기에게 카메라가 오자 씩 웃으면서 경기석에 앉았고 4대3으로 리버스 스윕을 하던 경기가 떠오른다. 홍진호가 공군에 입대한 이후 김택용을 상대로 '단장의능선'에서 승리하면서 팬들이 환호했던 기억도 난다.

첫 방송이 프로리그 무대는 아니었지만 프로리그는 항상 함께 하고 싶은 무대여다. 2015 시즌 3라운드부터 현장 인터뷰와 리포팅을 담당하면서 합류했는데 나에게는 중요한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2016년 결승전이 끝나고 나서 유대현, 고인규 해설 위원, 채민준 캐스터와 함께 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 앞에 있던 팬이 울먹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눈물이 터졌다.
프로리그에 합류해서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경기의 시작과 중간, 끝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채민준 캐스터, 유대현, 고인규 해설 위원이 중계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관객이 된 것처럼 즐거워진다.
프로리그는 팬들과 선수, 중계진 모두 함께 울고 웃고 즐기는 콘텐츠인 것 같다. 가족처럼 함께 해준 여러분 덕분에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이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