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PC방에서 잘한다고 소문이 난 게이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른 PC방으로 원정을 다니며 이른 바 '간판 깨기' 같은 대결을 펼쳤고, 이들 중에서도 특출 난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와 판을 키웠다. 지방 출신의 프로게이머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데뷔했다.
한국에선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를 바탕으로 e스포츠가 시작됐고, 현재의 한국이 e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는 초석이 됐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최근 '공인 e스포츠 클럽' 출범을 발표했다. 협회의 공인 e스포츠 클럽 사업은 지난 7월 전병헌 협회장이 재취임하면서 공언했던 'e스포츠 4대 비전' 중 하나였다. 수개월 간의 준비를 거친 이 사업은 지난 10월 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는 PC방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약 한 달 뒤 전국 49개 PC방을 공인 e스포츠 클럽으로 선정했다.
사실 공인 e스포츠 클럽이라고 해서 거창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e스포츠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있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PC방의 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e스포츠 대회를 위해 PC방을 섭외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각 게임이 문제없이 돌아가야 하는 최신 사양의 PC와 주변 기기들이 갖춰져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주변 교통 여건도 따져야한다. 무엇보다 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업주는 단골손님들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장소 대여를 꺼려한다.
하지만 대회 개최에 협조적인 공인 e스포츠 클럽에선 이런 걱정을 할 필요 없이 대회를 열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예선을 진행해야하는 아마추어e스포츠대회(KeG)나 리그 오브 레전드 대학생 배틀, 직장인 토너먼트 등의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매번 발품을 팔아 대회가 가능한 PC방을 섭외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PC방들이 클럽 시스템을 갖춰 아마추어 게이머 발굴에도 힘쓸만한 상황이 된다면, 십 수 년 전 스타크래프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 PC방을 거점으로 재능 있는 게이머들이 모여들 테고, 이는 진정한 한국의 'e스포츠 풀뿌리'가 될 것이다.
축구 강국들이 모인 유럽에는 수많은 축구장들이 있고, 야구 강국인 미국과 일본엔 수많은 야구장이 있다. 해당 국가들이 특정 종목에서 성적을 내는 것은 인프라 규모와 전혀 무관치 않다. 이런 점에서 공인 e스포츠 클럽 사업은 한국이 앞으로도 e스포츠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힘이 될 것이다. 아직 많은 점이 부족하지만 꾸준한 개선을 통해 e스포츠 공인 클럽 사업이 확대대길 기대해본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