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피파온라인3 EA 아시아 챔피언스컵(이하 EACC)은 2016년을 집대성하는 피파온라인3의 마침표와도 같았다. 1년 동안 활약했던 각국 선수들이 총출동했으며 마지막에 웃는 자는 한 시즌을 대표하는 얼굴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열기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결국 최종장에 이름을 올린 건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한 아디다스 A팀과 B팀이었는데 출전한 두팀이 모두 결승전에 올랐다는 건 크나큰 족적이며 대견스러운 성과임이 분명했다.
다만 해피엔딩을 위해 내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실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감정뿐만 아니라 리그와 연습 경기를 통해 서로의 경기력과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부분도 그렇다. 어찌됐든 참 얄궂은 운명이다.
특히나 각각 A팀과 B팀의 에이스인 김정민과 강성훈은 피파온라인3 아디다스 챔피언십 2016 시즌2 결승에 이어 또다시 우승컵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분명 개인전이 아닌 팀전으로 진행됐지만 이 두 명의 선수가 얽힌 지난 국내 대회 결승전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을 리 만무했다.
당시 강성훈을 셧아웃으로 끝냈던 김정민은 '누가 전설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려주기 위해, 김정민에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던 강성훈은 와신상담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EACC 결승전 무대에 섰다.
팀전이든 개인전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선봉 싸움이다. 결승전같은 큰 무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되기에 1세트를 잡으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고 물리적으로도 상대보다 여유있는 위치에 선다. 그 중요한 사명을 완수하고자 A팀의 김승섭과 B팀의 이상태가 나란히 출격했다.
챔피언십 우승 커리어까지 보유한 김승섭과 이번 시즌 신예돌풍의 한 축이었던 이상태의 경기는 시종일관 박빙의 형세를 그려나갔다. 다만 집중력에서 패기가 경험을 눌렀다. 이상태는 김승섭 특유의 리듬감 있는 공격을 잘 방어해냈고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한 컷'을 놓치지 않았다. 아디다스 B가 우승에 한걸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A팀은 에이스 김정민을 곧바로 내보냈다. 김정민과 이상태는 지난 챔피언십 시즌2 4강에서도 한번 격돌했던 관계. 이상태는 그 당시 다전제에 대한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김정민에게 결승 진출 티켓을 넘겨주고 말았었다. 특히 허점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한 가지 포메이션만 고집해서 중계진의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랬던 이상태가 달라졌다. 김정민이 나타나자 곧바로 미드필드 숫자를 줄이고 공격진을 채우며 맞불 작전에 돌입한 것.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김정민에게 먼저 공격으로 승부수를 던진 이상태였다.
'용기내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상태의 선택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변화였고 그 효과는 상당했다.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인 이상태는 상대 골키퍼의 실책을 틈타 리바운드된 공을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선취득점했다. 순조로웠다. 여기서 상대팀 에이스를 끌어내릴 수 있을 만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정민은 김정민이었다. 끌려가던 분위기 속에서도 중원 지역을 끝내 내주지 않았고 문전 앞 드리블은 더욱 날카로워져만 갔다. 그리고 세트피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 집중력도 있었다. 코너킥에 이은 헤딩 한 방이 거침없던 이상태의 분위기에 찬물을 부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기 직전 김정민의 대각선 방향으로 향하는 공간 패스가 또 한 번에 찬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공이 몇 번 튕긴 후 선수들끼리 얽히며 혼란스러운 상황. 이 극적인 상황을 끝낼 수 있는 클러치 능력이 김정민이란 슈퍼스타에겐 있었다. 범인의 경우 슈팅을 때리기에 급급할 법한 상황에서 유유자적 상대 수비수를 벗겨내고 결승골을 넣는 침착함을 보여준다. 결국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상태에 이어 등장한 B팀의 두번째 주자는 송세윤이었다. 이상태와 마찬가지로 지난 시즌 신예 돌풍의 핵심인 선수다.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과 영민한 플레이를 무기로 많은 선배들을 격침시켜 왔다.
그러나 앞선 경기 승리로 인해 기세를 타버린 김정민은 송세윤이 채 손을 풀기도 전에 의미가 큰 한 골을 선사했다. 교과서적인 측면 크로스에 이은 헤딩 골. 시간은 딱 5분이 걸렸다. 골을 먹는 건 어쩔 수 없었으나 그 시간이 너무 나빴다. 경기석에 앉자마자 한 골을 내준 송세윤은 정신을 다 잡으려 애썼다. 자신의 장기인 A패스를 이용한 역습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노력했다. 김정민의 드리블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쇼타임이었다. 속도 조절을 통한 방향전환 드리블이 정확히 3번 들어갔고 그 움직임에 3명의 수비수가 무용지물이 됐다. 결승전 현장이 가장 뜨겁게 열광했던 순간이었다. 이후 송세윤이 한 골을 만회하긴 했으나 경기 시간의 대부분을 지배한 김정민은 다시 한번 강성훈을 불러냈다.
결승전의 하이라이트이자 양 팀 에이스의 대결이었다. 또한 現 피파씬 최정상인 두 선수의 격돌이기도 했다. 챔피언십 시즌2 결승전의 재현 혹은 복수라는 팬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키워드도 있었다. A팀의 마지막 주자인 강성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2016년 최후의 대결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매치업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진수성찬인 명승부가 펼쳐졌으니 도입부터 결말까지 그야말로 '대박'이었던 셈이다.
김정민과 강성훈은 태생이 드리블러다. 이런 선수들의 강점은 89분 동안 경기가 풀리지 않더라도 남은 1분 안에 번뜩이는 개인 전술로 얼마든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는 부분이다. 때문에 이런 선수들 간의 격돌은 아주 미세한 심리전에서 승부가 크게 벌어지곤 한다.
지난 챔피언십 시즌2 결승전 1세트 최후의 순간에 김정민에게 골을 허용한 강성훈이 남은 세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졌던 원인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는 공포감은 이후 심리전에서 명확한 답을 도출해내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성훈은 억지로라도 경기 초반, 김정민의 골문을 열어야 했다. 상대에 대한 공포심을 빠르게 끊어내는 것이 강성훈에게는 우선과제였다. 김정민의 공격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협력 수비가 붙어 빠르게 공을 차단하고 종패스만을 이어 나갔던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으리라.
강성훈이 적극적인 압박과 빠른 패스 연결로 초반부터 경기 템포를 높이자 김정민의 실수가 나왔다. 커트 해낸 공을 돌린다는 것이 그만 위험지역에서 상대편에게 헌납한 꼴이 됐다. 강성훈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로빙패스와 헤딩 리바운드가 정확히 물 흐르듯 이어졌고 공이 떨어지는 곳에는 강성훈의 공격수가 있었다. 지체 없이 연결된 강력한 슈팅은 골망을 흔들었고 강성훈이 전반 10여분 만에 김정민에 대한 공포심을 완벽하게 깨버렸다.
이후 두 선수의 경기는 창과 창이 맞붙는 국면으로 돌입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이어졌지만 결국 최후의 수비수들은 침착했고 드리블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져갔다. 꼭 대량 득점이 아니어도 충분히 명경기로 남을 수 있음을 이 경기가 증명했다. 다만 김정민에게 아쉬웠던 점은 끌려가는 상황에서 반전에 필요한 도전적인 승부수를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정민의 앞선 두 경기를 바로 앞에서 관전하며 당일 컨디션과 포메이션을 체크한 강성훈은 짜놓은 듯한 예측 수비로 김정민의 공격을 보다 쉽게 무력화시켰다. 경기는 1-0 강성훈의 승리로 끝이 났고 승부는 최종 5세트에 돌입했다.
이제 마지막 주자들의 대결, 강성훈은 김정민에게 승리하며 지난 챔피언십 시즌2 결승전에 대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달랬지만 사실 진정한 복수는 강성호까지 이기고 우승컵을 들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강성호는 강성훈의 복수를 쉬이 허락지 않았다. 회심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지만 끝까지 세컨드볼을 밀어 넣은 강성호의 집중력과 집념은 대단했다. 다만 그 공까지 수비수의 몸을 맞고 튕겨져 나왔을 때는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모두가 이 장면 이후 분위기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강성호는 끝까지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대 골키퍼가 문제였다. 강성훈의 골키퍼 조 하트가 '슈퍼 세이브'를 연달아 기록하며 강성호의 의지를 꺾었다.
축구는 분위기와 흐름을 많이 타는 경기다. 한 쪽의 분위기가 내려갈수록 틈이 생기고 상대는 그 틈을 노리며 분위기를 가져온다. 강성훈은 이 흐름이 자신의 쪽으로 오고 있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그러자 여유가 생겼고 레반도프스키를 이용한 선취득점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강성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 골키퍼가 컨디션이 좋아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레프 야신의 재림'처럼 플레이한다면 골을 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될 것이며 강성훈의 수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탄탄해져 슈팅찬스를 만들기 힘들다면 좋은 위치에서 파울이라도 얻어내면 된다.
물론 이론은 이렇지만 이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식의 근성을 보여줄 선수는 드물다. 그러나 강성호는 어떻게든 페널티박스 내에서 상대 파울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았던 조 하트였을 지라도 페널티킥은 확률상 방어하기 힘들었으며 강성호는 경기를 동점까지 몰고 갔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에서 멋진 시저스킥으로 한 점을 추가한 강성훈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B팀은 우승후보 0순위라고 평가받은 A팀을 3:2로 아슬아슬하게 물리치고 2016년 피파씬의 최종장을 장식했다.
김정민과 강성훈의 관계 그리고 한국팀들간의 경기, 시즌을 마무리하는 대회 등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던 EACC에 걸맞는 매우 수준 높은 엔딩이었다. 선수들은 몰라도 지켜보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는 눈이 호강하는 행복한 내전이기도 했다.
마무리가 좋았다면 새로운 시작도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다. 2017년, 한 해를 수놓을 피파온라인3의 행복한 경기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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