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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프로와 팬 사이에 '갑을'은 없다

[기자석] 프로와 팬 사이에 '갑을'은 없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합니다"

프로 선수와 인터뷰를 하면 의례적으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 그럼 의례적으로 팬들에 대한 감사가 돌아온다. 의례적으로. 팬들의 응원과 성원에 대한 감사는 응당 치러야하는 의식처럼 굳어졌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팬을 빼놓고는 e스포츠를 얘기할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부터 방송으로 경기를 챙겨보는 시청자, 직접 경기장을 찾는 관람객 모두 e스포츠의 팬이자 주요 구성원이다. 게임단과 프로 선수가 e스포츠의 공급 주체라면 팬은 소비 주체. e스포츠 내의 산업과 문화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다.

e스포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선수와 팬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팬들은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닌 응원과 애정을 표현하고, 선수는 경기력과 승리, 팬서비스로 보답한다.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에너지를 교환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평이 무너지고 한 쪽에 '갑의 힘'이 주어지면 관계는 변색된다. '갑'이 '을'의 존재를 낮춰 보고, 욕망을 강요할수록 점점 일그러진다. 최근 오버워치팀 루나틱 하이의 '이태준' 이태준과 '딘' 금동근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팬심과 호의라는 감정을 이용해 '갑질'을 했기 때문이다.

이태준의 경우 한 사례는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두 선수가 여성 팬들과 동시 다발적으로 연락을 취했고, 연애 감정을 꾸며내 농락했다는 주장이 일부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됐다. 특히 금동근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여성팬들의 제보가 트위터(https://twitter.com/donggeunvictim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이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어 비난의 화살이 거세졌다.

이에 루나틱 하이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두 선수의 행실에 대한 사과문과 징계 내용을 공고했다. 오버워치 에이펙스 시즌2 잔여 경기에 출전을 금지하며 두 달간 팀 내 모든 활동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준은 개인 방송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고, 금동근 또한 은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징계로도 충분한데 은퇴는 섣부른 판단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저 남녀관계에 있어 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뿐, 은퇴까지 이어질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다만 그 도의에 어긋나는 행위가 팬과 선수라는 관계에서 벌어졌고, 기저에는 팬심을 이용한 악의성이 깔려있다는 것이 문제다. 팬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팬을 '나를 따라다니는, 좋아해주는, 하자면 하는' 식으로 여겼기에 갑의 입장으로 올라선 것이다.

프로팀에 소속되거나 프로 리그에 출전하는 사람을 프로게이머라 명명한다. 하지만 프로 게이머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그 이름이 불릴수록 빛을 발한다. 바로 팬들에게 말이다.

팬을 괄시하고, 감정의 을로 폄하한 사람에게 프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스스로를 갑이라 생각하는 프로들은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름을 불러줄 그이가 없다면, 그저 하나의 몸짓이 됨을 알아야 한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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