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우, 프로비우스 같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꾸준히 추가되고 '시공좋아'를 외치면서 홍보를 자처하는 유저들 덕택에 PC방 점유율도 20위권 내에 안착했다. 히어로즈 대회가 열릴 때면 트위치TV에는 수 천 명의 시청자가 모인다. 관계자들도 예년에 비해 시청자가 증가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세계 최고 지원가로 손꼽히는 MVP 블랙의 '메리데이' 이태준이 오는 6월에 있을 미드 시즌 난투를 끝으로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MVP 블랙은 최근 HGC 이스턴 클래시 시즌1에서 L5를 꺾고 우승하며 왕좌를 되찾았기에 이태준의 은퇴 소식은 의아했고, 팬들은 더욱 큰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최정점에 서있는 선수가 갑작스레 은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왜일까. 이태준은 학업과 군입대 등을 은퇴 이유로 들었지만 프로게이머로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히어로즈 프로게이머로서 불안감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회의 상금 규모에 있다. 슈퍼리그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출범한 HGC KR이 1부와 2부를 나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하위권 팀에게도 상금 지급이 보장되면서 선수들은 안정적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상위 팀이 가져갈 수 있는 상금은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MVP 블랙은 2016년 1월부터 4월초까지 슈퍼리그 시즌1 우승(7천만 원), 파워리그 시즌1 우승(1천만 원), 스프링 글로벌 챔피언십(15만 달러) 우승으로 약 2억 4천 5백만 원을 벌어들였다.
2017년에는 같은 기간 동안 HGC KR 시즌1 1라운드 2위(2만 7천 5백 달러), 이스턴 클래시 시즌1 우승(3만 달러)으로 수입이 약 6천 3백만 원에 그쳤다. 만약 HGC KR 시즌1 1라운드에서 1위를 했다 치더라도 상금이 3만 5천 달러기 때문에 총 수입은 약 900만 원이 증가해 7천 3백만 원 정도가 될 뿐이다. 동기간대 상금 3분의 2가 줄어든 것이다.
지역 대회와 글로벌 대회를 모두 우승했을 때 상금을 비교해보면 2016년과 2017년의 상금 격차는 더욱 커진다.
한 팀이 2016년에 슈퍼리그 3회(2억 1천만 원), 글로벌 챔피언십 3회 우승(60만 달러)을 했다면 약 8억 7천만 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에 HGC KR에서 4번의 라운드 우승(총 14만 달러)과 이스턴 클래시 2회 우승(총 6만 달러), 미드 시즌 난투와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을 경우엔 총 60만 달러(약 6억 6천만 원) 정도를 얻을 수 있다.(미드 시즌 난투의 총 상금은 25만 달러이며 우승 상금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우승 상금이 통상적으로 총 상금의 3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고 최대치로 반영해 10만 달러로 책정했다. 그랜드 파이널은 2016년 기준 총 상금 100만 달러, 우승 상금 30만 달러인 것을 반영했다.)
모든 대회를 우승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상금이 전년도에 비해 2억 원 이상 줄어든 것이다. MVP 블랙은 2016년에 중국에서 열린 골드 리그에 참가해 약 10만 달러를 추가로 벌어들였지만 올해 골드 리그는 중국 HGC로 편성되면서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파워리그 역시 사라지면서 국내나 해외에서 별도의 히어로즈 대회가 열리지 않는 이상 추가 수입은 없을 전망이다.
히어로즈와 비슷한 다른 종목에서 세계 최강의 팀이 가져갈 수 있는 상금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진다. 2016년 도타2 디 인터내셔널은 우승 상금만 100억 원이 넘었고,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도 우승 상금이 23억 원에 달했다. 지역 및 다른 글로벌 대회들을 제외하고 매년 가장 큰 행사의 우승 상금만 책정해도 히어로즈에서 모든 대회를 우승해야 가져갈 수 있는 상금의 최소 3~4배 수준이다.
MVP 블랙 같은 강팀이라 하더라도 모든 대회를 우승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고, 이 상금을 다섯 명이 나누고 추가로 팀이나 코칭스태프와 나누면 실제 받는 액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금 문제는 최강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HGC KR에서 1위는 3만 5천 달러, 2위는 2만 7천 5백 달러로 약간의 격차가 있지만 3위부터 8위까지는 2만 5천 달러로 순위에 따른 차이가 없다.
순위가 낮아도 상금이 같다면 동기부여가 약해지기 때문에 경기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글로벌 대회에 못나가더라도 승격강등전을 피할 수 있는 4~6위의 순위만 유지할 수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관계자는 1라운드 중반 이후부터 중위권 팀들의 경기력이 떨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상금 문제로 인해 최상위 레벨의 선수들은 은퇴를 고려하고, 중위권 팀들은 '고인물'이 돼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단 상금만 문제는 아니다. HGC KR이 온라인으로만 중계를 결정하면서 선수들은 팬들과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열정 넘치는 몇몇 팬들이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장을 찾지만 OGN e스타디움 현장에 있으면서도 복도나 로비에서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시청해야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선수나 팬 모두 안타까운 현실이다.
블리자드는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18년 시즌을 위한 개선안을 내놔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 상금을 늘리는 것이 부담된다면 다른 종목의 대회들처럼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현실과 동 떨어진 정책을 바로 잡지 않으면 히어로즈 e스포츠에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블리자드는 게임은 잘 만드는데, e스포츠는 못한다'는 오명. 이제는 벗을 때가 됐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