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특정 인물이 생각나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위조자, 사기꾼이다. 조금 온순한 단어로 풀어 쓰자면 '속임수를 쓰는 사람' 정도. SK텔레콤 T1의 미드 라이너 이상혁에게 딱 어울리는 닉네임이다.
지난 2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2017 스프링 SK텔레콤과 kt 롤스터의 결승전이 펼쳐졌다. 이 경기에서 이상혁은 '속임수'를 쓰며 경기를 지배했다.
1세트 이상혁은 피즈를 선택해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10킬 4데스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미드 라이너가 보여줄 수 있는 공격성과 캐리력을 모두 자랑한 것. 오리아나, 라이즈, 코르키, 카타리나 등을 선택한 정규 시즌부터 피즈로 이어지는 결승전까지 이상혁의 공격적인 플레이는 빛을 발했다.
2세트에서도 이상혁이 공격적인 챔피언으로 kt를 압박하리란 예상이 다수였다. 하지만 2세트 이상혁의 플레이는 전혀 딴판이었다. 보조 능력이 뛰어난 카르마를 선택한 것이다. 대신에 '후니' 허승훈이 카밀을, '피넛' 한왕호가 리 신을 선택하며 부족한 공격력을 채웠고, 원거리 딜러 '뱅' 배준식은 트위치라는 확실한 성장형 챔피언을 꺼내들었다. 실제로 2세트 SK텔레콤은 카르마와 서포터 룰루의 지원을 받은 허승훈과 배준식의 화력으로 승리했다.
kt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SK텔레콤의 중심인 이상혁이 캐리 역할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이란 예측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3세트 kt는 피즈를 금지하며 여전히 이상혁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견제했다. 3밴을 마친 SK텔레콤의 첫 선택은 룰루와 그레이브즈. kt는 세번째 순서에 카르마를 가져오며 2세트 악몽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SK텔레콤의 세 번째 선택은 역시 트위치였다.
양 팀은 마지막까지 미드 라이너 픽을 숨겼고, kt의 '폰' 허원석이 르블랑을 먼저 선택했다. 렝가와 르블랑, 애쉬로 SK텔레콤의 주요 공격진을 잘라먹을 수 있는 조합을 구성한 kt. 이에 SK텔레콤은 마지막에 나미를 선택했고, 일찍이 뽑아뒀던 룰루를 이상혁에게 쥐어주며 맞받아쳤다.
이상혁의 룰루는 kt 조합에 대한 훌륭한 대항마였다. 그레이브즈, 트위치 등 AD 기반의 파괴적인 챔피언을 뽑은 SK텔레콤에게도 이상혁은 든든한 지원가였다.
카르마와 룰루가 공수에 모두 능했던 메타는 지나갔고, 공격력이 약화된 두 챔피언은 서포터로 활용됐다. 이상혁은 이 메타를 적극 활용해 '아테나의 부정한 성배', '불타는 향로' 등을 구매했고, 보조적인 능력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상혁의 센스있는 판단이었다.
결승을 지켜본 사람들은 SK텔레콤의 조합 연구와 숙련도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전략의 중심엔 이상혁이 있었다.
이상혁은 팀의 요구와 플레이에 따라 제 역할을 달리했고, 그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수행했다. SK텔레콤은 다채로운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이상혁을 앞세워 다양한 조합과 전략을 구상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무궁무진한 연구 가능성을 확인했다.
로밍 능력이 좋은 미드 라이너, 라인전 혹은 교전에 강한 미드 라이너. 한 명의 미드 라이너를 평가할 땐 플레이를 특정지을 수 있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이상혁에겐 그 어떤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혁은 그냥 '페이커'다.
이상혁이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인 이유. 그것은 이상혁이 언제든지 적을 속일 수 있는 다재다능한 '페이커'이기 때문이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