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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20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말, 은퇴

데일리e스포츠의 창간 9주년 특집 릴레이 인터뷰에 응해준 김태훈, 이호우, 임수라, 김준영, 최범호(왼쪽부터).
데일리e스포츠의 창간 9주년 특집 릴레이 인터뷰에 응해준 김태훈, 이호우, 임수라, 김준영, 최범호(왼쪽부터).
데일리e스포츠는 지난 주부터 창간 9주년 특집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창간 특집으로 어떤 화두를 다룰까 고민하던 편집국 기자들은 브레인 스토밍을 했습니다. 평소에 쓰지 못했던-리그 취재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시공간적 제약이 많습니다-기사 아이템들을 내놓았죠.

개인적으로는 코칭 스태프의 애환을 쓰고 싶었습니다. 2016년에 창간 8주년 기획 기사로 '프로게임단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졌고 대기업 게임단부터 중소 게임단까지 릴레이 인터뷰 또는 간담회 형식으로 기사를 내놓았던 것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2017년에는 코칭 스태프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게임단의 대회 일정이 너무나 빠듯했기에 섭외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차에 이승엽과 관련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20년 넘게 한국 야구의 대표 선수로 활약했고 삼성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을 거쳐 다시 삼성으로 돌아온 이승엽이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뉴스였습니다. 이승엽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현역 영웅이라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은퇴 이후의 삶도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야구 기자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만 대부분의 '네임드'들은 은퇴 후에도 야구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은퇴 후는 어떤 방식으로 보장되어 있을까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종목에서 선수로 뛰었던 초창기 대표 선수들의 현재 활동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임요환은 결혼 이후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고 홍진호는 방송인으로 변신해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감초 역할을 하고 있죠. 이윤열은 아프리카TV를 통해 개인 방송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박정석은 나진 e엠파이어와 CJ 엔투스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감독을 맡은 바 있습니다. '택뱅리쌍'은 공식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시니어 리그 형태의 대회에 출전하고 있고 스트리밍 방송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스포츠 업계를 대표했던 네임드들은 워낙 유명했던 덕에 e스포츠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선수들의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은퇴 후에 연락이 끊어지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연락이 닿은 사람들을 만나 은퇴 후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해서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창간 특집의 화두를 은퇴로 잡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경북도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태훈, 서울산지점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호우,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임수라, 넥슨네트웍스에서 퀄리티 어슈어런스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영, 시스템 엔지니어로 변신한 최범호 등을 만났습니다. e스포츠 업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세계도 취재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20대라는 나이에 은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서글픔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기량이 떨어져서 은퇴해야 한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종목이 인기가 없어서, 대회가 열리지 않아서, 팀이 사라져서 은퇴해야 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관심을 갖고 사랑을 주고 있는 e스포츠 업계의 현실입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큰 인기를 얻었던 종목의 선수가 금세 백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스트리밍 방송이 은퇴 선수들이 개인 방송인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수단이 되어주고 있지만 이 또한 평생의 벌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지훈 감독의 입을 빌어 프로게이머들이 은퇴 후에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인 e스포츠 지도자에 대해 소개하긴 했지만 창간 기획 특집을 마무리하는 기사를 쓰지 못했습니다.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모든 이들의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취재 과정에서 다행스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은퇴 선수를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방식까지 내놓기에는 보완할 부분이 많아서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같은 고민이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년이 채 되지 않은 e스포츠이지만 초창기 멤버들은 사회의 중추를 맡는 3~40대가 됐습니다. 은퇴 이후 시스템을 갖춰 놓는 일은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10대나 프로게이머에 대해 불안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부모들을 설득하는 기초 작업이기도 합니다.

20대에게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단어인 은퇴를 맞이해야 하는 e스포츠 업계의 고민이 심화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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