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김태일이 속한 페네르바체는 윈터 시즌(터키는 한국의 스프링 시즌 기간을 윈터라고 불렀다) 초반에는 하위권에 머물렀고 중반 정도 지났을 때 서서히 손발이 맞으면서 간신히 포스트 시즌에 올라갈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인터뷰(◆관련기사[피플] '페네르바체의 심장' 김태일 "잊혀지지 않는 선수 되겠다") 내내 김태일은 '아쉽다'와 '롤드컵(공식 용어로는 월드 챔피언십)'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페네르바체가 팀을 꾸린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이 있었고 시즌 동안에 주전을 교체하면서 손발이 맞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드컵을 언급한 이유는 페네르바체가 선수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윈터 말미에 전략 코치를 새로 영입하면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태일은 "공식 경기를 뛸 때에는 선수이지만 연습할 때나 복기할 때에는 코치처럼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연습 때에는 다른 포지션까지 맡으면서 게임 실력으로 알려주고 있다"며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전했다. 그는 또 "서머에는 상위권 성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나가고 롤드컵까지 갈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또 인터뷰하러 한국에 오겠다"라고 약속했다.
롤드컵이라는 목표를 완수하면 다시 인터뷰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희망 사항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윈터 포스트 시즌에 봤던 페네르바체의 경기력은 롤드컵까지 노릴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터키 리그가 서머에 돌입했을 때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리프트 라이벌스 기간에 러시아와 터키가 대결했고 페네르바체가 4전 전승을 챙긴 뒤 결승전에서도 베가 스쿼드론을 3대0으로 완파했다는 결과를 본 뒤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쿼드가 바뀌긴 했지만 러시아에는 지난 2016년 롤드컵에서 8강까지 올라가며 이변을 만들어냈던 M19(그 때에는 알버스 녹스 루나)가 속해 있었지만 페네르바체는 리프트 라이벌스를 전승으로 마무리하며 터키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터키 리그로 돌아온 페네르바체는 4승2무로 무패의 페이스를 이어갔고 전통의 강호인 슈퍼매시브를 정규 시즌 2위로 밀어내면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더욱 놀라웠다. 한국인 2명이 뛰고 있는 크루 e스포츠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페네르바체는 뒷심을 자랑하면서 3대0으로 승리했다. 세트 스코어로는 완승이었지만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은 경우가 더 많았다. 슈퍼매시브와의 결승전에서 페네르바체는 탄력 받은 경기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 세트 모두 10킬 이상의 차이로 벌리면서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김태일은 14킬 1데스 30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KDA 44를 달성했고 결승전 MVP로 선정됐다. 롤드컵 출전권도 획득했다. 페네르바체는 창단 첫 롤드컵 출전의 영광을 안았다.
김태일은 약속을 지켰다. 머나먼 이국 땅,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터키 리그에서 롤드컵 진출이라는 꿈을 이뤘다. 이제 기자가 약속을 지킬 시점이다. 김태일이 어떤 종류의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지 듣고 전할 때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