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야 어찌 됐건 기자는 수많은 예비군 중 한 명에 불과했고, 무탈하게 훈련이나 잘 받고 가자는 생각으로 내무반 안에 붙은 일정표를 확인했다. 둘째 날 훈련 프로그램 중에는 시가지 모의 전투가 있었는데, 페인트볼 서바이벌을 제대로 해본 적 없던 기자 입장에서는 기대되는 훈련 중 하나였다.
하지만 훈련 당일 경험했던 페인트볼 전투는 실망 그 자체였다. 가스가 부족하거나 관리가 소홀해 페인트볼 발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총들이 수두룩했고, 발사된 페인트볼은 10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BB탄처럼 휘어버려 도저히 목표물을 맞힐 수가 없었다.
또 다른 훈련에서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총도 쏘지 않고 훈련장만 이리저리 왕복했고, 조교는 입으로 '빵야빵야'를 외쳤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2017년에도 훈련이 이렇게나 부실하다니, 내가 이러려고 교통비 1만 7천 원을 받고 예비군에 왔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실망한 부분은 사격훈련 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용 수류탄 투척과 크레모아 폭파 훈련 때에도 수량이 부족하단 이유로 제대로 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집에서 배틀그라운드 스쿼드 게임을 한 판 더 하는 게 분대 전투 경험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중에 예비군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2015년 기사 중 레이저 광선을 활용한 마일즈 장비를 전국 모든 사단에 도입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예비군 훈련을 받는 지난 몇 년 간 마일즈 장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심각한 수준의 훈련 환경을 겪고 나니 어떻게 하면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효율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이 떠올랐다. 'VR을 활용하면 실감나는 훈련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최근 일부 훈련장에는 스크린 사격 시설도 마련됐다는데, 이보다 뛰어난 VR이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VR 뿐만 아니라 포켓몬GO를 통해 잘 알려진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과 둘을 합친 MR(Mixed Reality, 복합현실) 기술을 활용하면 더 뛰어난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실제 특공대원들이 훈련하며 촬영한 360도 영상을 통해 침투 작전 등을 간접 체험할 수도 있고, 야간 보행 훈련이나 폭발물을 다루는 훈련, 전차 탑승 훈련 등에도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9월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가상?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 육성을 위해 '디지털콘텐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도 과기부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 VR을 활용한 군사훈련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며, 앞으로는 예비군 훈련에도 도입해 교육 효과를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VR은 게임업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공들이는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크게 관심 있어 하는 사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가 주도하는 4차 산업과 VR, 게임은 서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마침 최근 출범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블루홀 장병규 의장이 임명되기도 했다. VR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임업계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기회다.
이럴 때 게임업계가 나서 뛰어난 군사 훈련용 VR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중독 탓이라는 누명을 쓰고 일부 몰지각한 단체와 언론들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데, 이를 역이용해 뛰어난 군사 훈련용 VR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오히려 게임이 국방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같이 국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기에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게임에 대한 이미지 제고, 예비군 훈련 개선, 국방력 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