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학생회관 대강당에서는 인간과 스타크래프트 A.I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인간 팀에서는 프로게이머 송병구를 비롯해 세종대 재학생 2명이 참가했고, A.I 팀에서는 세종대 컴퓨터공학과에서 개발한 MJ봇과 호주에서 개발된 ZZZK봇, 노르웨이에서 개발된 TSCMOO봇, 페이스북이 개발한 체리파이(CherryPi)봇이 참가했다.
대결에 앞서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김경중 교수는 "게이머들이 플레이를 통해 터득해온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입력했다. 입력된 시나리오를 벗어나면 멍청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알파고와 같은 학습은 안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인공지능과 실력 차는 클 것이다. 래더 점수 1,100점의 하수부터 시작해 1,500점대 고수까지 테스트를 시도했는데 개발 과정에서는 계속 졌다. A.I의 능력을 조금씩 향상시켰다. 매년 스타크래프트 봇 경진 대회가 열리는데 사람과의 대결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고, 재학생인 이승현 학생을 상대로 첫 출전한 MJ봇의 테란 플레이에 관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MJ봇은 SCV로 정찰과 동시에 본진 건물 사이에 마린을 배치해 입구를 막는 영리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시즈탱크 컨트롤은 웬만한 프로게이머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상대의 다크 템플러가 가까이 다가오자 스캔을 통해 잡아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테란이 프로토스의 본진을 날리며 승기를 잡았지만 이승현 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2~3곳의 멀티를 통해 재건을 시도했고, 테란은 정찰을 소홀히 해 경기를 끝내지 못했다. MJ봇의 다수의 마린과 메딕은 서로 부대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마당 커맨드 센터가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추가로 짓거나 더 이상 자원을 채취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위기의 순간 일꾼들을 대동해 수비에 나서는 인간과 달리 A.I의 일꾼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잡혀나갔다. 결국 하이 템플러를 마련한 이승현 학생이 테란의 마린을 모두 제거하면서 승리했다.
이에 대해 김경중 교수는 "승기를 잡았을 때 인간이 GG를 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포기하지 않았고 그 이후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데이터 부족으로 인한 패배임을 밝혔다. 그러나 "당초 목표로 했던 것이 래더 1,500점대를 잡는 수준이었다.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경중 교수가 밝힌 목표대로 이어진 다섯 번의 경기에서는 인간이 모두 패했다. 하지만 ZZZK봇과 TSCMOO봇은 경기 내내 4드론 전략을 펼쳐 제대로 된 중후반 운영 싸움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A.I가 뮤탈리스크를 앞세운 경기에서는 유닛 한 기 한 기를 별도로 컨트롤 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초 우려했던 A.I의 비현실적인 APM이 감지된 것. 김경중 교수는 "APM은 최대 7만까지 올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재학생들의 경기가 끝나고 송병구가 경기에 나섰다. 송병구는 첫 상대인 MJ봇을 상대로 초반 드라군 압박 이후 셔틀을 활용한 리버 견제로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이후 ZZZK봇과 TSCMOO, 체이파이와의 대결에서는 초반 저글링 공격을 모두 질럿-프로브 컨트롤로 막아내면서 승리했다. 체리파이의 경우엔 다수 저글링으로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브가 아닌 게이트웨이를 공격해 상황 판단 능력이 한참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리를 거둔 송병구는 "세종대가 개발한 MJ봇은 정찰을 꼼꼼히 해서 사람 냄새가 났다. 하지만 섬세함에 있어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다른 봇과 진행한 3게임을 빌드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 여유 있게 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른 봇과 MJ봇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송병구는 "MJ봇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입구를 막는 것이나 셔틀에 대한 수비, 바카닉 준비까지 짜임새가 있었다. 하지만 컨트롤 면에서 사람을 따라오지 못해 승부가 갈린 것 같다. 나머지 봇들은 일반 컴퓨터가 더 나은 것 같다"고 답했다.
또 "MJ봇은 중수 정도 되는 것 같다. 개발에 프로게이머가 참여한다면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 같다. 이 자리에 프로게이머 대표로 나오게 돼 감사하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꼭 대표로 나와 계속해서 A.I를 박살내고 싶다"고 말했다.
A.I의 패배에 대해 김경중 교수는 "A.I는 다양성이 부족하다. 의사결정이 유연하지 못하다. APM이 빠르다고 해서 좋지만은 않다"며 "지금의 개발 방법으론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이상 넘어가려면 알파고처럼 학습을 해야 한다.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이 아니라 한계가 있지만 스타크래프트2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알파고에 썼던 방법대로 연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A.I 간의 대결에서 이기는 방법보다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해 더 고민할 것"이라는 각오도 덧붙였다.
광진=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