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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페이커'의 심호흡

[기자석] '페이커'의 심호흡
강철인 줄 알았던, 마냥 든든했던 선수가 긴장되는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반복되는 호흡. 무겁게 내려앉는 숨에서 막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SK텔레콤 T1의 '페이커' 이상혁이 프로게이머 이전에 22살 청년이라는 것을 이 때 깨달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2017 결승 티켓이 걸린 4강전이었고, 불리하던 스코어를 가까스로 따라 잡은 뒤 치른 마지막 세트였다. 전략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밴픽 중이었지만 짧게 잡힌 이상혁의 심호흡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상혁은 롤드컵 2017 매 경기에서 분전했다. 16강에선 킬 관여율 91.2%를 기록했을 정도. 로밍에 특화된 챔피언을 주로 다룬 것도 아닌데 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16강 이후에도 인상적인 경기들이 이어졌다. 이상혁은 8강 4세트에서 라이즈를 선택,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상대 딜러진을 진영에서 분리시키고, 완벽한 궁극기로 뒤를 잡는 플레이는 '이상혁 캐리다'라는 말을 절로 자아냈다. 그렇게 이상혁과 SK텔레콤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4강 무대를 밟았다.

4강에선 '갈갈갈갈갈'을 선보였다. 다섯 세트 연속 갈리오를 선택해 완벽한 팀플레이를 보여준 것이다. 이상혁은 순간이동과 갈리오의 궁극기를 활용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 다녔다. 그의 위치를 따라다니는 것이 벅찰 정도. 다른 라인에 힘을 실어주는, 특히 원거리 딜러에게 안정적인 공격 기회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상혁다웠다.
SK텔레콤 T1의 '페이커' 이상혁이 심호흡을 하고 있다. (사진=롤드컵 중계 캡처)
SK텔레콤 T1의 '페이커' 이상혁이 심호흡을 하고 있다. (사진=롤드컵 중계 캡처)

사실 조금은 무뎌졌을 줄 알았다. 이상혁의 출전 및 수상 경력이 워낙 다채로우니 말이다. 롤드컵에서도 이미 세 차례나 우승했는데 얼마나 긴장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상혁은 여전히 긴장했고, 가까스레 억누르며 경기에 임했다. 매 경기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이상혁의 무기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타공인 최고의 LoL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고 경기 하나의 승패에 따라 찬양과 비판의 평가가 극명히 갈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 관심과 기대는 온전히 부담이 되고 이상혁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리고 그 짐을 버텨내는 것은 이상혁의 몫이 됐다.

22살이 견뎌내기엔 무거운 짐. 하지만 프로이기에 받아들이는 무게감. 이상혁의 심호흡으로 시작된 5세트에서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그가 최고의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모든 면에서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선수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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