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즌을 한창 치르고 있는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 역시 대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일부 팀에서 여전히 대리 게이머를 선수로 기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각 팀들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다.
평소 오버워치를 즐기는 팬들 역시 대리 게이머에 의한 피해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고, 오버워치 리그와 컨텐더스를 운영하는 블리자드 측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블리자드 측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한 프로게임단 감독은 "블리자드가 대리 게이머를 잡아내려는 의지가 없다. 대리와 관련된 징계에 대해 명확한 기준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다른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대리에 관한 명확한 처벌 기준이 마련돼 있다. 대리 게임으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다 보니 프로게이머의 경우 수년 전에 연습용 계정을 타인으로부터 빌렸던 사례까지 적발해 팀들이 자체 징계를 내릴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e스포츠 후발 주자인 배틀그라운드 역시 대리 게이머 문제가 불거지자 처벌 기준을 세우고 자진 신고를 받거나 소명 기회를 제공해 선수들에 징계를 내리고 있다. 벌써 10명에 가까운 게이머들이 과거 저지른 대리 행위로 인해 3개월에서 1년 사이의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징계를 받은 선수들 대부분은 오버워치에서 대리 게임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버워치가 대리 게이머를 수출하고, 배틀그라운드가 이를 정리하는 꼴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여전히 자체적인 징계위원회를 꾸리거나 처벌 기준을 세우고 있지 않다. 적발된다 하더라도 처벌 기준이 제각각이다. 필라델피아의 김수민은 30경기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손민석은 겨우 4경기에 그쳤다. 겨우 2주만 쉬면 그만이다. 유저들을 괴롭히고 있는 대리 게이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행적에 대해 쉬쉬하던 대리 게이머들은 실력만 좋으면 오버워치 리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됐다.
대리 업체들은 사이트에 버젓이 연락처와 주소, 사업자 등록증까지 드러내놓고 영업 중이지만 블리자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핵 개발사에 대해선 고소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블리자드지만 대리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둘 모두 게임 내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지만 대응하는 잣대가 다르다.
대리 게이머들이 제재를 받지 않고 대회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자 오버워치 리그나 컨텐더스 팀들을 응원하던 팬들은 힘이 빠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베타 테스트 때부터 오버워치를 즐겨왔고, 오버워치 e스포츠를 열심히 취재하던 기자 역시 대리 게이머들이 활개 친다는 소리에 맥이 빠진다.
"이게 기사냐"는 욕까지 먹어가며 오버워치 팀들을 소개하던 '오팀소' 코너나 오버워치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OW STAR' 코너를 컨텐더스 개막에 맞춰 다시 진행하려 했지만 당분간 오버워치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리 의혹을 받는 선수들이 많은 상황에서 자칫 인터뷰를 진행한 선수가 대리와 관련됐을까 우려돼서다. 떳떳한 다른 선수들에게도 인터뷰 기회가 가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기자가 나서서 대리 게이머를 홍보해주는 지뢰를 밟고 싶지는 않다. '괜히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평을 듣기엔 이미 이전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선수 중 일부가 대리 행위로 적발됐다.
양심을 팔아 쉽게 돈을 버는 선수들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시간을 쪼개 힘겹게 아르바이트와 연습을 병행하는 선수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블리자드가 대리 문제를 계속 방관한다면 떳떳한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노력을 다하던 선수들도 대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아르바이트로 수십만 원을 버는 것과 게임으로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수백만 원을 쉽게 버는 일은 그 결과물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리 사실이 적발돼도 겨우 몇 경기 쉬면 그만이니, 선수들이 대리를 마다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미 많은 해외팀들에겐 실력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마인드가 깔려있다. '선수의 기본 자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블리자드가 대리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근절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대리 게이머들의 오버워치 컨텐더스나 오버워치 리그 진출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종국에는 '오버워치는 정정당당함과 거리가 먼 e스포츠'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희는 게임 내 부정 행위를 항상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으며, 이는 오버워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블리자드는 공정한 플레이를 강조하는 “Play nice, Play fair.”를 회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여기며 게임 제작 과정 그리고 출시 이후 게임을 지원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를 항상 마음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위 문장은 오버워치 공식 홈페이지 토론장에 게재된 '오버워치 내 부정행위에 대해'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이다. 하지만 최근 오버워치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위 문장에 대한 진정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리 게이머가 오버워치를 대표하는, 자칭 최고의 e스포츠 무대에 이름을 올린 지금, 'Play fair'라는 문구는 무색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