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L 출범 직전까지 배틀그라운드는 다양한 포맷의 국내외 대회들을 실험적으로 진행하면서 시청형 e스포로서도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경기가 극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보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를 긴장케 만드는 것은 배틀그라운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반면 아이템 파밍에 치중하는 초반 10분에서 15분 사이는 다소 지루하다는 평가도 많다. 하지만 몇 달 간 치러진 대회와 온라인에서 지속된 연습 경기들을 통해 각 팀마다 '랜드마크'라는 것이 생겨났다. 랜드마크란 각 팀이 특정 지역을 첫 파밍 장소로 고수하는 것을 말하는데 앞으로는 이 랜드마크 전략이 초반의 보는 지루함을 달래주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줄 것이라 본다.
랜드마크 전략을 구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초반 교전을 피하고 안전한 아이템 파밍을 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연습된 루트대로 이동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 장소이기도 하다. 랜드마크를 한 곳만 고집하는 팀도 있고,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팀도 있다.
대부분 팀들의 랜드마크가 다르다보니 경기 초반에는 파밍에 집중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지루하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간혹 랜드마크가 겹치는 팀이 나타날 경우엔 초반부터 긴장감 넘치는 교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랜드마크 교전은 제 3자의 개입이 적은 팀 대 팀의 대결이기에 후반의 난전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자존심을 위해 끝까지 버티느냐, 살기 위해 도망치느냐라는 선택지를 두고 펼쳐지는 묘한 신경전이 백미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예전 스타리그 조 지명식에서 '명예'와 '실리'를 두고 고민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회나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연습 경기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각 팀 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e스포츠 역시 이야깃거리가 많을수록 재밌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배틀그라운드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랜드마크를 두고 라이벌이 생길 수도 있고, 천적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인기 있는 팀의 랜드마크로 향해 악역을 자처해 대회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릴 수도 있다. 초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초반부터 상대를 물어뜯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팀은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을 물론이고 팬들에게 팀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전 인터뷰를 통한 심리전도 걸 수 있다.
최근 루마니아에서 열렸던 PGL 스프링 인비테이셔널에서는 대회 4일차에 중국의 LGD 게이밍이 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위권 입상에 실패하자 우승후보 페이즈 클랜의 랜드마크로 들어가 그들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페이즈는 우승을 놓쳤고, LGD는 대회의 '빌런'이자 다른 의미의 '킹 메이커'가 됐다. 만약 다음에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LGD와 페이즈가 다시 만난다면 두 팀의 복수혈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랜드마크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쌓인다면 날이 갈수록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를 보는 재미는 더해질 것이다. 랜드마크를 단순한 초반 전략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배틀그라운드에서만 볼 수 있는 랜드마크 전략은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각 팀들의 흥미 넘치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