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그의 고향은 역시 카트라이더였다. 그는 긴 방황 끝에 다시 카트라이더 리그로 돌아왔다. 카트라이더를 오랫동안 쉬었건만 그는 여전히 최고였고 결국은 또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문호준 10번의 우승 순간을 돌아보고자 한다. 2006년 혜성처럼 등장해 지금까지 최고의 위치에서 e스포츠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간 문호준의 'V10' 히스토리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 보시기 바란다.
◆등장부터 남달랐던 문호준
카트라이더 정규리그에서 그가 등장한 것은 2006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4차 리그에 등장한 그는 첫 라운드부터 엄청난 실력을 선보였다. 물론 첫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어린 나이 때문인지 경험 부족 때문인지 결선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첫 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5차 리그부터 문호준은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최종 그랜드 파이널에서 정선호와의 명경기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10점차로 밀려있던 경기를 뒤집는 그의 공격적인 라이딩은 그에게 첫 우승을 안겨 준다.
그가 보여준 공격적인 라이딩이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전문가들은 그의 장기 집권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탓일까요. 상대의 도발을 참지 못해 침착하게 플레이 하지 못한 문호준은 6차 준우승, 7차 3위, 8차 리그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문호준 전성시대 하지만 리그는 하향세
참 아이러니하게도 문호준의 전성시대와 카트라이더 리그의 흥행과는 인연이 없다. 사실 카트라이더 게임이나 리그 모두 가장 인기 있었던 시절은 8차 리그까지였다. 9차 리그부터 선수들이 한가지 바디만 쓰는데다 비슷한 빌드를 보여줬고 게임 역시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로 문호준은 9차 리그부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본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9차 리그에서 V2를 달성한 그는 10차리그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들과 실력 차이가 너무나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우승은 문호준'이라는 이야기가 따라 다녔고 선수들은 리그 출전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지자 카트라이더 리그는 2008년 10차 리그를 끝으로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문호준의 전성기가 시작되자마자 리그가 2년이나 휴식기에 들어가는 비운을 겪게 됐고 초등학생 게이머 문호준은 그렇게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보였다.
◆리그의 룰을 바꿔 버린 문호준
한 선수 때문에 리그의 룰이 바뀔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문호준이 너무 많이 우승하자 리그가 개인전에서 2대2 팀전으로 바뀌는 일이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이 문호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2년의 휴식기를 거친 귀 2010년 카트라이더 리그는 넥슨이 직접 후원해 팬들을 다시 찾았다. 오랜 기간 쉬었고 그동안 후발 주자들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평가가 있었기에 승부는 알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황제'는 죽지 않았다. 문호준은 11차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해 버렸다. 12차 리그에서 카트라이더 리그가 또다시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일부러 3위를 했다는 괴담(?)이 일 정도로 문호준의 실력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12차 리그에서 잠시 쉬어가는 듯 하더니 13, 14차, 15차 리그에서 문호준은 3회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5차 리그에서 문호준은 2위와 17점 차로 우승을 차지해 버렸다. 도저히 문호준을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방증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또다시 카트라이더 리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미 '문호준을 이겨라' 리그가 된 상황에서 리그를 열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16차 리그에서 룰이 바뀌는 파격적인 개편이 단행됐다.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 아니라고 우길지도 모르겠지만 문호준 때문에 리그 룰이 바뀐 것이다. 1대1로는 승산이 없자 2대2로 룰을 바꿨고 강화 파츠 사용 불가, 핫라이더 폐지 등 문호준에게 불리한 조건들로 변경된 룰을 꽉 채웠다.
사실 이때 문호준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이 우승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못해서 자신이 우승하는 것인데 룰까지 바꿔 버리니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문호준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두 손 들고 환영하는 상황에서 문호준은 대세를 따라가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룰까지 바꿔가면서 문호준을 견제했지만 문호준은 같은 팀 선수인 신하늘의 부진에도 혼자 게임을 캐리하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어떤 짓을 해도 문호준을 견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문호준의 라이벌인 유영혁이 등장한다. 항상 문호준에 가려 2인자에 머물렀던 유영혁이 결승전에서 문호준을 제압한 것이다. 물론 문호준 개인만 봤을 때는 결승에 진출한 선수 중 가장 잘했다. 그러나 같은 팀인 신하늘의 점수가 최하위였고 유영혁의 경우 같은 팀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점수 관리를 잘했다. 결국 문호준 견제 프로젝트는 성공한 셈이다.
2013년 17차 카트라이더를 끝으로 문호준은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을 견제하는 리그에 더 이상 출전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듯 문호준은 “개인전으로 룰이 바뀌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카트라이더를 떠났다.
◆스타크래프트2 도전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잠정 은퇴를 선언한 문호준은 2013년 스타크래프트2에 도전했다. 스타테일에 입단해 스타2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최초로 두 종목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꿨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2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문호준의 전반적인 스케줄을 담당했던 문호준의 아버지 말에 따르면 스타크래프트2에는 소질이 없었다고 한다. 카트라이더와 스타크래프트2 게임이 워낙 다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카트 황제'라 해도 다른 종목은 어려웠나보다.
결국 문호준은 스타테일 탈퇴와 함께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로서의 꿈을 접었다. 이후 인터넷 방송에서 종종 전대웅 등과 카트라이더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조금씩 카트라이더 리그 복귀 조짐을 모였다.
◆단체전에서 달성한 V10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카트라이더 리그가 2015년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시작한다고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문호준이 복귀하지 않겠냐는 예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문호준은 은퇴할 때 “리그가 개인전으로 바뀌면 돌아오겠다”고 못을 박았기에 자신의 결정을 쉽게 바뀌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대2 팀전이 아닌 4대4 팀전으로 치러지는 카트라이더 리그가 문호준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나 보다. 문호준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2015년 카트라이더 에볼루션 리그에 전격 복귀를 결정하게 된다.
문호준은 한때 라이벌이었던 전대웅과 강석인을 자신의 팀으로 끌어 들였고 노장 장진형까지 합류시켰다. 그러나 '황제'에게도 공백기에 따른 적응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문호준은 라이벌 유영혁이 이끄는 팀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문호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우승 독주를 막기 위해 바뀐 룰을 뛰어 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듀얼 레이스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때 문호준은 이미 단일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인 V8을 달성하며 e스포츠 역사를 다시 썼다.
문호준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개인전이 부활하면서 문호준은 양대 우승을 노릴 기회를 잡았고 2018년 듀얼레이스 시즌3에서 개인전과 팀전 모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단번에 V10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e스포츠 역사에 기록될 '황제' 문호준
단일 리그 최단 기간 열 번의 우승 기록은 앞으로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호준이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기록이고 카트라이더 게임 특성 때문에 달성한 기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문호준이 왜 잘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기술을 분석해서 그대로 따라한다 해도 그를 넘을 수는 없다. 그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주행으로 1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전문가들은 만약 카트라이더 리그가 개인전으로 계속됐다면 문호준의 우승 기록은 열 번에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함께 리그를 뛰는 선수들 역시 전문가들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리그 룰을 바꿔 버린 사나이 문호준, 그가 가는 길이 곧 카트라이더 리그의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 앞으로 카트라이더 리그가 계속되는 한 문호준은 자신의 기록을 계속 갱신할 것이고 팬들은 그가 걸어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