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수는 스타2 업계의 홍진호라고 불렸다.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에서 홍진호는 메이저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하고 이벤트전에서는 좋은 성과를 낸 선수로 유명하다. 스타1 초창기에 개인 리그 준우승을 연달아 차지하면서 임요환에 이어 2인자에 머물렀다.
2013년 GSL 시즌3에서 백동준에게 패해 준우승한 뒤 2014년 열린 GSL 세 시즌을 내리 준우승하면서 네 시즌 연속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울 때만 해도 어윤수가 '홍진호의 뒤를 잇는 선수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준우승을 차지하려면 결승까지 가야하기에 어윤수에게는 '결승전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실드'를 받기도 했다.
2016년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어윤수는 2017년 GSL 시즌1을 통해 부활의 기치를 들어 올리면서 결승에 올랐지만 김대엽에게 2대4로 패하면서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고 바로 다음 대회인 시즌2 결승에서는 고병재에게 덜비를 잡히면서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국내 메이저 대회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시던 어윤수는 연말에 블리즈컨에서 열리는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도 이병렬에게 결승에서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이 때부터 어윤수의 준우승 징크스는 관계자들이나 팬들에게는 감히 언급하기 어려운 '아픈 손가락'으로 다가왔다. 기업팀들이 스타2 게임단을 철수하면서 마땅한 후원사가 없는 상황에서 어윤수는 스타2 리그에 꾸준히 참가하는 몇 안되는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2008년 스타1 프로게이머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어윤수이기에 10년 넘도록 리그에서 뛰었으니 서서히 군에 가야할 시기도 다가왔다.
매년 리그가 열릴 때마다 군에 언제 가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던 어윤수는 2019년 2월 14일 GSL 시즌1 32강 F조에서 2승으로 깔끔하게 16강에 진출한 뒤 인터뷰를 통해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겠다"라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음을 시사했다. 관계자들도 어윤수의 생각에 동의했다. 1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했고 나이도 찼으니 군대든, 은퇴든 어윤수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어윤수가 준우승 징크스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기에 '우승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은 감히 내지 못했다.
어윤수는 자기 손으로 답답했던 부분을 풀어냈다. IEM 시즌13 월드 챔피언십 오픈 브라켓 3조를 통과한 어윤수는 24강 본선에서 간신히 살아 남았다. 테란 이재선, 프로토스 백동준, 테란 전태양에게 차례로 패하면서 3패를 안고 시작한 어윤수는 'uThermal' 마크 실라피와 'Scarlett' 사샤 호스틴 등 외국 선수들을 연달아 2대0으로 잡아내면서 2승3패, 세트 득실 0이 됐다. 이재선과 외국 선수 2명이 모두 2승3패를 거뒀고 세트 득실을 비교한 결과 어윤수가 가장 높았기에 조 3위로 12강에 진출했다. 12명의 선수들 중에 매치 기준으로 승률 5할이 되지 않았는데 살아 남은 사람은 어윤수가 유일했다.
12강에서 어윤수는 프로토스 주성욱을 3대0으로 꺾었고 8강에서는 2018년 세계 챔피언인 'Serral' 주나 소탈라를 3대2로 제압하면서 기세를 탔다. 4강에서 김준호를 3대1로 제압하며 결승에 오른 어윤수는 또 한 번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상대는 김대엽이었다. 2018년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도 결승에 갔던 김대엽은 2017년 GSL 시즌1에서 어윤수를 꺾고 우승한 경험도 있다. 어윤수는 1, 2세트를 내리 패하면서 결승전만 되면 위축되는 징크스에 발목을 잡히는 듯했지만 내리 네 세트를 쓸어 담으면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처음 들어 올리는 메이저 리그 우승 트로피였다.
우승한 뒤 방송 인터뷰에 임하던 어윤수는 그동안의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결승전에서 0대2로 밀릴 때에는 '또 그렇게 지는구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에 뒤집을 수 있었다"는 어윤수는 "준우승 밖에 못하는 선수로 남을 수 있었지만 항상 응원해준 팬들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어윤수가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전해온 낭보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10년 동안 9번의 준우승에 머무르면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설움을 안고 있던 어윤수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가고 다른 살 길을 찾았지만 스타2를 놓지 않았고 7전8기를 넘어 결국 이름 있는 국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면서도 담금질을 그치지 않은 결과이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윤수의 우승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GSL 우승을 통해 국내 팬들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를 기원한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